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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 주교 복장을 한 노인이 먼저 요르단강의 물을 손으로 집어 신자들에게 뿌린다. 이어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줄줄이 흙탕물로 뛰어든다. 나이든 할머니부터 청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들은 각자 세 번씩 얼굴을 흙탕물 속에 집어넣는다.


이곳은 요르단강의 ‘베다니(Bethany)’.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성경과 비잔틴, 중세 문헌을 통해 알려진 곳이다. 1996년에 이곳에서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함께 성지 순례자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유명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연주하기도 한 가스펠송 ‘People Get Ready’의 가사엔 이런 대목이 있다. “요르단 행 열차에 탈 승객들은 세계 각지에서 올 거예요. 믿음이야말로 승객들을 받아들일 열쇠죠.”


이 가사에서처럼 기독교에선 요르단을 천국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요르단이란 국명은 요르단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요르단강’에서 유래했다. 요르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이 나뉜다. 성경에서는 요르단강을 ‘요단강’이라고 표기했지만 원래 지명은 요르단강이니 여기선 요르단강이라고 적자.



모세의 ‘출애굽’에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생활했다는 광야가 바로 요르단이다. 이삭의 에서가 정착했던 곳이 페트라, 불에 타버린 비운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곳은 사해 근처다. 세례 요한의 실제 체류지는 요단강 동편 텔 알 카르라르, 즉 엘리야 언덕 사이의 장소라고 한다.


암만에서 남쪽으로 45분 거리에 위치한 베다니는 요르단의 군사지대에 속해 있다. 이곳으로 가려면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세례 장소로 가는 길은 꽃길로 잘 단장되어 있었다. 허허벌판 속에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멀리 보이는 황금색 지붕의 돔을 가진 교회. 요르단강에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지은 기념교회 5개의 유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 교회도 그중 하나다.



요르단강이라는 표지판이 적힌 문을 넘어 가자 마침내 요르단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맑은 성수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뿌연 흙탕물이다. 폭이 좁아 열 걸음이면 닿을 거리에 이스라엘 땅이 보인다. 그곳엔 세례를 받기 위해 수십 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들은 예식을 마친 뒤 한 사람씩 흙탕물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머리를 세 번 물속에 집어넣는다.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어 바지만 걷고 물속에 들어가 보았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속에 들어가니 미끈한 진흙이 발가락에 만져졌다. 함께 간 가톨릭 신자는 성스러운 물에 발을 담그고 기도를 했다. 나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성지에 온 만큼 영험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 그대로 따라해 보았다.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은 대부분 이스라엘 쪽에 있었는데 요르단 쪽에도 세 명이 있었다. 그중 우크라이나에서 온 남녀 한 커플은 나란히 물속에 얼굴을 담갔다. 피부색이 다 드러날 정도로 흰 가운이 흠뻑 젖었다.


이곳은 국경지대이기도 한 만큼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서고 있다. 요르단 군인에게 살짝 물어보니 강을 건너면 즉시 발포한다고 한다. 엄포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성스러운 지역이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요르단강은 사해로 흘러들어간다. 해발 마이너스 400미터에 위치한 베다니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육지이기도 하다. 창세기에서 신은 사해 주변 요단강 골짜기를 ‘여호와의 동산’으로 지칭하는데 신학자들은 바로 이곳에 에덴 동산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베다니는 예수가 세례를 받은 뒤 3일간 머무른 곳이기도 하다. 예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했고, 첫 제자들인 시몬, 베드로, 안드레, 빌립, 나다니엘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요르단강, 느보산 등 초기 기독교 순례길의 일부를 구성한다. 마다바 소재의 6세기 성지 모자이크 지도에도 등장한다. 이 지역의 아랍식 명칭은 세례 장소를 뜻하는 ‘알 마그타스(Al-Maghtas)’다.



지난 2000년 3월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베다니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의 흔적이 베다니로 가는 길에 모자이크화로 남아 있다. 이곳은 느보산, 무카비르, 텔 마르 엘리아스, 안자라와 함께 카톨릭 교회의 2000년 중동 순례지로 지정됐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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