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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카바(Aqaba)에 입성했다. 입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유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아랍의 독립을 꿈꾸던 토마스 로렌스가 그토록 점령하기 원했던 땅이 바로 아카바이기 때문이다.


“아카바! 아카바!”


나는 홍해 바다를 항해하는 크루즈 위에서 피터 오툴이라도 된 것처럼 소리 질렀다. 하지만 오늘날 아카바는 특별경제자유구역으로 요르단에서 가장 개방된 곳이기에 누구나 갈 수 있다.


아카바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잇는 관문 도시로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대륙이 여기서 만난다. 이집트,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암만에서 차를 타면 4시간이 걸린다. 이집트에서 크루즈를 타고 오는 방법도 있다.



말이 나온김에 특별경제자유구역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사막이었던 두바이를 순식간에 국제도시로 만든 U.A.E.가 부러웠던 요르단은 이를 벤치마킹해 아카바를 2000년 특별경제자유구역으로 선포했다. 이곳엔 특별경제구역청(ASEZA)이 있어서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아카바에는 세금이 거의 없다. 관세와 판매세, 부동산세는 아예 없고 법인세는 5%에 불과하다. 외국인 투자 제한이 없으며 배당금과 이익 송금도 무제한 허용한다. 아카바를 통해 입국할 땐 비자도 면제해준다. (유효기간은 1개월) 만약 암만 등 다른 곳을 통해 입국해 아카바로 왔다면 이를 48시간 내 ASEZA에 신고하면 동일한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지인들에겐 1인당 1회 200디나르(30만원) 한도로 전자제품을 제외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에 마땅한 제조업이 없는 요르단으로서는 아카바가 밀수 통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아카바를 벗어날 땐 세관 검사가 이루어진다.


개방도시인 덕분에 아카바엔 고급 호텔, 리조트, 식당 등이 하루가 다르게 지어지고 있다. 요르단 정부가 페트라에 이어 제2의 관광도시로 키우는 중이다. 내가 갔을 때도 도시 곳곳이 공사중이었다.


그렇다면 아카바에는 어떤 관광자원이 있을까? 크게 두 가지다. 홍해와 유적.



아카바는 요르단이 독립하던 1946년(정식 국명은 요르단 하심 왕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영토 분쟁을 겪던 땅이었다. 요르단은 아카바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1965년 아랍혁명의 와중에 영토분쟁이 타결되었는데 요르단은 아카바를 소유하는 대신 사막 일부를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내줘야 했다. 국토 전체가 내륙이었던 요르단은 항구도시 아카바를 통해 12km의 해안선을 얻었지만 불행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건네준 땅에선 이후에 석유가 나왔다.


마침 아카바 특별경제자유구역에서 일하는 낸시 타얀을 만난 김에 당시 그 땅에서 석유가 난 게 억울하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개의치 않아요. 우리는 유목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을 얻었잖아요.” 3면이 바다인 한국인 입장에선 바다가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싶겠지만 강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인 입장에선 홍해를 통해 인도양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니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중 누가 이득인지는 결정내리기 쉽지 않겠다.



자, 이제 홍해로 가보자. 홍해는 온화한 열대성 기후로 수온은 평균 22.5도. 여름엔 30도, 겨울엔 떨어져봐야 20도 정도다. 혹시 이름이 홍해라서 ‘붉은 바다’를 연상한 사람이 있을까? 처음엔 나도 갸웃했지만 설마 바닷물이 빨간색일 리야. 이 바다의 이름이 홍해인 데는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밀물 때 수면 가까이 자리잡은 붉은 산호초로 바다색이 붉게 보이기 때문. 둘째, 아라비아 반도의 붉은 바위산들이 바다에 비쳐서 붉게 보이기 때문. 셋째, 서양에서 아랍인들을 ‘Red people’이라고 불렀기 때문. (동양인을 ‘Yellow people’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그러나 뭐가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르단과 연결된 홍해는 넓이 27km의 아카바만이다. 아카바는 북-중-남의 세 구간으로 나뉘는데 그중 중간과 남쪽 두 지점에 해변이 있다. 이곳에선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요트, 제트 스키, 모터보트, 세일보트, 수상스키, 윈드서핑, 패러세일링 등. 그중 스노클링은 꼭 해봐야 한다. 왜냐고? 홍해엔 다른 바다에선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고기들과 보석색깔 코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비고기(butterfly fish), 비늘돔(parrotfish), 쏠배감펭(lionfish) 뿐만 아니라 아쿠아리움 다이빙 사이트에 가면 누디블랜치(spanish dancer fish)와 바닷가재를 볼 수 있다.



아카바에는 30개의 다이빙 지점이 있다. 가장 수심이 얕은 곳은 ‘파워 스테이션’이라는 조금 썰렁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스노클링이 처음인 나는 여기로 갔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마스크를 쓴 뒤 호흡법부터 배우고 물속에 첨벙! 처음엔 입으로 하는 호흡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물속의 산호초와 코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호, 이렇게 맑을 수가!


바다 깊은 곳엔 산소통을 멘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내려가고 싶었지만 지금 실력으론 무리.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물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은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한데 막상 홍해에 오니 왜 진작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을 배워두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나같은 초보자들을 위해 정보를 주자면, 아카바에는 5일짜리 초보자용 다이빙 코스도 있으니 이 기회에 다이빙을 시작해봐도 좋겠다.



다이버들은 8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난파선을 볼 수 있다. 1995년 침수된 81미터 길이의 760톤짜리 레바논 화물선이다. 이름은 ‘세다 프라이드(Cedar Pride).’ 물속에 갇힌 난타선을 팸플릿의 사진으로만 보고 있으려니 언젠가 산소통을 메고 직접 내려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아쉬운대로 스노클링 체험을 마치고 선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강렬한 태양 아래서 먹는 바비큐다. 선상에 다리를 쭉 뻗고 고기를 한 입 집어 넣으니 바닷속 추위에 살짝 떨었던 긴장감이 단번에 사라진다. 얼굴에 선클림을 발랐는지 신경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따사롭고 평온하다. 온몸이 무장해제된 기분.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지만 배는 어느새 아카바 항에 거의 당도해 있었다.



크루즈에서 내려 이번엔 아카바의 유적지로 가보자. 아카바는 7세기~11세기 이슬람 도시 아일라(Ayla)로 불리웠는데 이는 아라비안 반도 외에 지어진 첫번째 이슬람 도시였다. 지금 아카바의 호텔 구역에 당시의 벽, 문, 모스크 등 아일라의 유적이 남아 있다.


3세기에 지어진 교회,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을 위한 여행자 쉼터였던 아카바 성(Mamluk Fort), 압둘라 2세 왕의 선조인 알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의 집, 137미터 높이에서 20x40미터의 대형 국기가 펄럭이는 아랍혁명 광장, 그리고 이라크,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도자기와 동전 등을 전시한 아카바 고고학 박물관 등이 주요 유적지다. 또 이스라엘과의 갈등 지역을 평화공원으로 조성한 홍해평화해상공원도 가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아카바에 왔으면 쇼핑을 잊지 말자. 아카바는 세금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가격이 싸다. 아랍 향신료, 견과류나 요거트 같은 식료품, 모래병, 머리에 쓰는 스카프 쿠피야(kufiya) 등이 주로 살 만한 기념품 목록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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