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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 로버트 프로스트


지나가며 바라본 들판에

눈이 내린다. 밤이 내린다. 빠르기도 하지

몇 포기의 잡초와 그루터기만을 남기고

땅은 부드러운 눈으로 다 덮여버렸다


숲은 마치 주인인 양 눈 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짐승들은 모두 제 굴에 들어 숨을 죽인다

허허한 내 마음은 따로 셈 될 수 없어

외로움은 어느샌가 나를 그 안에 끌어들인다


지금도 외롭긴 하지만 이 외로움이

덜어지기 전에 그것은 더욱 짙어지리라

아무런 표정없이, 표현한 아무것도 없이

밤의 이 눈은 백지처럼 더욱 하얘지리라


별 사이의 빈 공간이 두렵지는 않다

그곳엔 인간이 살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 속의 버려긴 공간이 두렵다

그 안에선 가까이 인간이 살고 있는 까닭이다



깎아지른 계곡 사이 붉은 사막을 질주하다


4륜구동 지프를 타고 붉은 사막을 질주한다. 모래에 선명하게 박힌 타이어 자국이 끝도없이 펼쳐진다. 사구를 만난 지프가 곡예 주행을 벌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짜릿하다.


이곳은 와디 럼. ‘와디’는 아랍어로 계곡, ‘럼’은 옛 셈족의 언어로 ‘높다’, 즉, ‘와디 럼’은 ‘높은 계곡’이라는 뜻이다. 요르단 최남단의 항구도시 아카바에서 북동쪽으로 60km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데 가장 낮은 곳도 해발 1000미터에 이를 정도로 고지대다. 사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들이 최고 1730미터(제벨 럼, Jebel Rum)까지 솟아 있어 ‘달의 계곡’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이곳의 바위산들은 3천년 전에 솟아올랐다고 한다.


잠깐, 계곡인데 사막이 있다고? 맞다. 당신이 상상하는 바로 그 사막이다. 와디 럼이 신비로운 것은 바위산들 사이에 붉은 사막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면적이 무려 720㎢에 달한다. 이곳의 모래가 붉은 이유는 이 지역의 철산화물 때문이다. 와디 럼의 베두인들은 수천년 전부터 이 사막을 떠돌며 살아왔다. 그들은 홍차와 대추야자만 먹으며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기도 한다.



베두인처럼 낙타를 타고 싶어 지프에서 내렸다. 사막 한복판에선 모래바람이 불어와 쿠피야(두건)로 얼굴을 감싸는 게 좋다. 내 모습이 그럴 듯했는지 지켜보던 베두인이 볼인사를 해준다. 왼쪽 오른쪽 뺨을 서로 맞대는 친근함의 표시다. 낙타는 먼 옛날 아라비아 상인들이 다니던 모래사막을 느릿느릿 걸어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지난다. 낙타에서 내려 걸으니 사막 한복판이라고 믿을 수 없는 바위들의 계곡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랍 독립운동에 헌신한 영국인 토마스 로렌스(피터 오툴 분)는 터키군의 요새가 있던 아카바를 함락하기 위해 와디 럼을 근거지로 삼았다. 사막 안에 이렇게 험준한 계곡이 있으니 천의 요새로 손색이 없었으리라. 영화의 유명세 덕분에 지금도 ‘로렌스의 집’ ‘로렌스의 샘’ 등 곳곳에 로렌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실제 로렌스가 아카바로 가기 위해 와디 럼 사막을 횡단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산통을 깨고 싶진 않지만 로렌스의 집이나 샘도 오토만 제국의 유적일 뿐이다.



그런데 최근 와디 럼엔 또다른 이미지가 추가됐다. <혹성탈출>(2000),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 <프로메테우스>(2012), <플래닛 바이러스>(2013), <화성인>(2015) 등 할리우드 SF 영화들의 단골 로케이션 장소가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들에서 와디 럼은 가상의 화성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과연 울퉁불퉁 솟아오른 바위 산과 붉은 사막은 사진으로 본 화성과 꼭 닮았다.



이번엔 사막에서의 일몰을 지켜보기 위해 다시 지프에 올랐다. 코르 알 아즈람(Khor Al Ajram)은 일몰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바위산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있다. 멀리 지프가 그림처럼 미끄러져 가고, 붉은 모래 사막은 태양의 강렬한 기운마저도 서서히 빨아들인다. 마이클 온다체가 한 소설에서 썼듯이 "사막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우리들도 풍경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The desert... left nothing behind. It was a place of faith. We disappeared into landscape.)



와디 럼 여행 팁


와디 럼을 여행하기 위해선 일단 방문자 센터로 가서 지프와 가이드를 구해야 한다. 와디 럼의 보호구역은 등록된 베두인 가이드 없이 다닐 수 없다. 지혜의 일곱 기둥, 나바테 사원, 선사시대 낙서의 흔적, 핀치새들이 사는 카즈알리 협곡(Khaz Ali canyon), 독특하게 생긴 와닥 바위다리(Rakahbt al-Wadak), 부르다 바위 다리(Brudah Rock Bridge)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낙타, 열기구, 초경량비행기로도 와디 럼을 즐길 수 있다. 가격은 낙타 1시간에 30디나르(4만6000원), 열기구 1시간에 130디나르(20만원), 초경량비행기 30분에 80디나르(12만원)다.


야외 캠핑장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와디 럼에는 37곳의 베두인 캠프가 있다. 베두인들과 함께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요르단의 전통 요리를 맛보시라. 그날 밤 먹은 지하 깊은 곳에서 구운 양고기는 아직도 잊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다. 환대의 전통이 있는 베두인들은 당신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할 지도 모른다.


날씨가 좋으면 사막 한복판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시라. 아마 쏟아지는 별을 헤아리느라 잠들기 힘들 것이다. 나는 이날 날씨가 추워 경험해보지 못하고 아카바로 떠나야 했는데 당신은 꼭 도전해보시길.



(*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2015년 4월 27일자 B2면에도 실렸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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