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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공지능이다. 작년 <그녀> <루시> <트랜센던스>에 이어 올해엔 연초부터 두 편의 인공지능 소재 영화가 찾아 온다. 8,90년대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등으로 인기를 누렸던 이 소재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됐으나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이 점점 현실화되면서 영화 소재로 부활했다. 과거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들이 기계에 대한 공포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막연한 우려를 주요 동력으로 삼았다면 최근 인공지능 영화들은 더 현실적이고 더 진지해졌다.


이번에 한 달 간격으로 개봉하는 <엑스 마키나>와 <이미테이션 게임>은 장르나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튜링 테스트’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튜링 테스트는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것으로 64년 만인 작년 6월 영국 왕립학회에서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이 최초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공지능의 치명적인 유혹 <엑스 마키나>


<엑스 마키나>는 한 억만장자에 의해 비밀리에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한 프로그래머가 튜링 테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전세계 검색엔진의 94%를 장악하고 있는 블루북이라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칼렙(돔놀 글리슨)은 어느날 회장 네이든(오스카 아이작)에게 초대를 받는다. 요새 같은 저택에서 홀로 살고 있는 젊은 회장은 막 개발을 끝낸 인공지능 여자 로봇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를 칼렙에게 소개시켜준다.


에이바는 겉모습은 여성 로봇이지만 언어 구사, 사고 능력은 인간과 차이가 없다. 네이든이 칼렙을 통해 테스트하려던 것은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감성적인 면이었다. 프로그래밍에 의해 작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며 우연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자의식이라는 것이다. 칼렙은 에이바와 대화하면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는 칼렙에게 자신을 이곳에서 탈출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엑스 마키나>가 흥미로운 지점은 칼렙과 에이바의 대화가 우리가 실제 인공지능을 맞딱뜨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게 진행된다는 점에 있다. 진화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고 감정을 속일 수도 있다. 네이든은 칼렙에게 “결국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인간은 아프리카 원숭이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최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인공지능은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라고 경고한 것을 연상시킨다.



또 영화 속 거대 기업으로 언급되는 ‘블루북’은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저서에서 따온 이름으로 영화가 인공지능의 언어 능력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어다. 물론 이 회사는 현실 세계의 구글을 연상시킨다. 네이든은 블루북의 방대한 검색기록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의 두뇌를 만들었고 모든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해킹해 인간의 발성구조를 인공지능의 발성 기능에 대입했다. 이런 개발 과정은 공교롭게도 구글이 최근 로봇 회사들을 인수해 구상하고 있는 작업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인공지능 로봇에게 강렬한 신체 이미지를 부여해 인간의 피부와 대비하며 시각을 사로잡는다. 또 공간감과 심리적 압박을 사운드로 표현해 차분한 전개 과정에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28주 후> <네버 렛미고> 등의 각본을 썼던 알렉스 갈랜드의 연출 데뷔작이다. 1월 21일 개봉.




튜링 테스트 제안자의 실화 <이미테이션 게임>


<엑스 마키나>가 진지하게 튜링 테스트 과정을 담은 영화라면 <이미테이션 게임>은 바로 그 튜링 테스트를 고안한 인공지능의 대부 앨런 튜링에 관한 자전적인 드라마다. 영화는 그가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의 암호를 풀기 위해 인류 최초의 컴퓨터를 고안해내는 과정을 그렸다.


수학 천재 튜링은 전쟁이 발발하자 연합군에 합류해 영국 비밀정보부 MI6와 함께 독일군 암호 이니그마의 해독에 나선다. 튜링은 이니그마를 인간이 아닌 기계가 기계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동료들과 함께 컴퓨터의 초기 모델을 구상한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왕따에 시달리던 사회 부적응자인 그는 동료들과 잦은 불화를 겪는다. 영화의 제목인 ‘이미테이션 게임’은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는 튜링 테스트의 초기 개념으로 여기에선 튜링이 인간적인 면모를 습득하기 위해 연인의 행동을 따라하는 과정과 함께 중의적인 의미로 쓰였다.



영화는 정신병을 앓는 천재 수학자 존 내쉬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뷰티풀 마인드>처럼 외골수 천재가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인 드라마로 풀어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어 있기도 하다.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으로 기념할 정도로 이 분야 개척자로 평가받는 튜링은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이 영화를 통해선 그동안 몰랐던 실제 튜링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노르웨이에서 TV시리즈 ‘U’로 유명한 모튼 틸덤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만든 두 번째 영화로, 드라마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튜링 교수로 분해 셜록 홈즈 못지않은 또다른 천재 연기를 펼쳐 보이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튜링을 이해하는 똑똑하고 인간적인 여성으로 분해 교감을 나눈다. 2월 17일 개봉.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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