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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기에 빅 아이즈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앤디 워홀의 이 말은 이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으면 빅 아이즈는 훌륭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위선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빅 아이즈의 성공 신화가 그렇다. 엄청나게 유명했으나 허무하게 잊혀졌다. 팝아트의 시초지만 정작 그림보다는 그림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더 흥미롭다. 영화가 다 보여주지 않은 실화를 파헤쳐보자.


195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여성이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정도로 보수적인 사회였다. 눈을 크게 그리는 ‘빅 아이즈’ 화풍을 창조한 마가렛은 싱글맘으로 그림 실력만 믿기엔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어느날 마가렛에게 다가온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혼남 월터 킨은 그녀에겐 구원자였다. 두 사람은 재혼했고 월터는 마가렛의 그림을 팔았다. 특유의 입담으로 사람들을 구슬렸다. 그리는 것만큼 분명히 파는 것도 재능이다. 그런데 그 입담이 너무 과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속인 것이다. 그 이후로 빅 아이즈는 월터 킨의 작품이 됐다. 무려 10년 동안.


월터는 특유의 수완으로 빅 아이즈 그림을 포스터, 엽서 등으로 인쇄해 팔았고, 캐릭터를 마트에 납품해 큰 돈을 벌었다. 당시 뉴욕타임즈 등 전통적인 매체는 이런 싸구려 행위는 예술이 아니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한 평론가는 빅 아이즈를 "취향없는 난도질"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키치 아트의 시초인 빅 아이즈는 1960년대 초반 서구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 예술 작품이자 미국 팝아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남았다.



부부관계가 계속됐다면 어쩌면 빅 아이즈는 계속 월터의 작품으로 남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명예를 빼앗긴 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역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작품을 그린 화가라면 견딜 수 없이 괴로웠을 것이다. 훗날 법정에서 마가렛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월터는 마가렛이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말할 때마다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그녀는 전남편과 사이에서 얻은 딸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팝아트 최대 스캔들 중 하나인 빅 아이즈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마가렛이 1965년 이혼을 선언하고 1970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실제 빅 아이즈를 그린 화가는 자신이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점은 미국에서 여권이 성장한 시기와도 겹친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법정 소송으로 가진 않았다. 마가렛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을 여자이기에 월터와 원만하게 관계를 끊으려 했다. 따라서 한동안 `빅 아이즈는 도대체 누구의 그림인가'는 의문 부호로 남았다.


법정 소송이 시작된 계기는 1984년 월터가 USA투데이에 “마가렛이 자신이 죽은 줄 알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다. 이에 마가렛은 월터와 USA투데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때 마가렛의 나이 56세, 월터의 나이 68세였다.


1986년 연방 법원 판사는 진실을 가리기 위해 독특한 제안을 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법정에서 빅 아이즈 그림을 그릴 것을 요청한 것이다. 영화 속에도 나오는 것처럼 마가렛은 53분만에 작은 소년의 그림을 그려내고는 제목을 `Exhibit 224'라고 짓는다. 224는 재판에 부여된 사건번호로 이 그림은 그녀의 위대한 예술적 성취로 남았다. 하지만 월터는 어깨 통증을 이유로 그림 그리기를 거부한다. 이에 배심원단은 마가렛의 손을 들어주며 그녀가 400만 달러를 배상받아야 한다고 판결한다.


법정 공방 끝에 그녀는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월터가 파산하는 바람에 돈을 받지는 못했다. 마가렛은 훗날 "그 돈을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월터는 항소를 거듭하다가 2000년에 사망했다. 법원은 마가렛의 USA투데이에 대한 소송은 기각했다. 마가렛은 이후 재혼했고 다시 미망인이 됐다. 그녀는 지금도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이 보이는 그녀의 집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두 명의 시나리오 작가가 빅 아이즈를 둘러싼 이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고 무려 10년 동안 영화를 준비했다. 감독은 몽환적 비주얼리스트 팀 버튼이 맡았는데 그는 어린 시절에 접한 빅 아이즈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곧잘 고백해왔다. 실제로 그의 초기작인 <스테인보이> <빈센트>부터 최신작 <프랑켄위니> <다크 섀도우>까지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유난히 눈이 크다. 그는 심지어 캐스팅 과정에서도 이왕이면 눈이 큰 배우를 선호해왔다고 한다.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영화 <빅 아이즈>는 기존 팀 버튼 영화와 많이 다르다.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이 사라진 자리에 부부 사이의 갈등만 남았다. 감독 이름을 지우고 본다면 팀 버튼 영화임을 알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 빅 아이즈의 모델이 된 마가렛의 딸은 시종일관 시큰둥하기만 하다. 기존의 팀 버튼이었다면 분명히 눈이 큰 아이를 좀더 입체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다행히 마가렛 역의 에이미 애덤스와 월터 역의 크리스토프 왈츠가 맛깔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아쉬움은 덜하다. 팀 버튼이라는 거장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지우고 영화를 본다면 부부관계가 팝아트 스캔들로 번지는 흥미로운 드라마를 감상하게 될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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