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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는 스승의 혹독한 지도 아래 손에 피가 나도록 스틱을 잡았고 매일밤 연습을 거듭했다. 그의 목표는 오직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꿈을 접었다. 세상에는 드럼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그는 영상학을 전공한 뒤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영화 감독 데미언 차젤의 이야기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위플래쉬>는 뜨거운 영화다. 한 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장을 남기는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해 미국의 평단은 열광했고 로튼토마토의 신선도 지수는 무려 95%에 달하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등 다섯 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있는데 최소한 남우조연상과 음향편집상을 주지 않는다면 아카데미가 실수하는 것이다.


“악기가 무기로 변하고 내뱉는 말들이 총만큼 난폭하지만 그 배경은 전쟁터가 아니라 리허설룸이나 무대인 갱스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차젤레 감독이 설명한 이 기획의도는 영화 <위플래쉬>로 들어가는 열쇠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취향이나 미적 감각, 스타탄생 등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객관적 수치로 평가할 수 있도록 계량화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 강의실은 순위가 매겨지고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는 전쟁터로 돌변한다. 악보에 템포가 400이라고 적혀 있다면 그 숫자에 맞게 정확히 연주해야 하는 게 음악이다. 그게 기본이고 그게 실력이다. 폭군 같은 선생 테렌스가 있고 그에 못지 않게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은 학생 앤드류가 있다. 선생은 학생이 따라올 때까지 지도하고 학생은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한다. 그 과정에서 마치 갱스터영화처럼 욕설이 난무하고 유혈이 낭자한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위대한 예술혼의 절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방해하는 주입식 강압교육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할 것이다. 어떤 교육이 맞는 것인가, 정답은 없다. 길이 다를 뿐이다. 폭군 선생으로 분한 J.K. 시몬스는 영화의 후반부에 앤드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만하면 잘 했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말이야. 그런 말을 들었다면 전설의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한 가지에 몰두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쓸쓸히 사라지는 게 좋은 삶인가 혹은 적당히 격려하면서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게 나은 삶인가. 영화의 막바지에 이젠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앤드류는 마찬가지로 더 이상 선생이 아닌 테렌스 앞에서 영혼까지 쏟아내는 드럼 솔로 연주를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이 두 사람은 뼛속까지 예술지상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순수하게 아름답고 그 열정에 관객들의 심장도 뛴다.


영화의 제목인 ‘위플래쉬(Whiplash)’는 영화 속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 곡의 제목이다. 중간 부분 드럼 파트의 ‘더블 타임 스윙’ 주법으로 독주하는 부분이 강렬하다. 이 단어의 원 뜻은 ‘채찍질’로 폭군 선생의 교육법을 비유적으로 담았다. 3월 12일 개봉.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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