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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웜홀을 지나 또다른 지구를 찾아서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은 물리학자 킵 손이 맡았습니다. 천문학을 대충만 아는 저도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학자인데 특히 일반상대성 이론과 중력파, 블랙홀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공동 저술한 [중력]은 과학도들의 교과서로 통해 현대 과학자들이 대부분 이 책을 읽으며 일반상대성 이론을 배웠다고 합니다. 정재승 박사는 영화의 제목이 킵 손의 1988년 논문 제목 'Warmholes in Spacetime and Their Use for Interstellar Travel (웜홀을 인터스텔라 여행에 활용하는 가능성 연구)'에서 가져왔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애초 가제는 <플로라의 편지>였죠. 이 글에서는 <인터스텔라>가 구현한 우주와 과학이 실제로는 어떤지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 웜홀을 통한 우주여행은 정말 가능할까요?


영화 속에도 설명하고 있지만 웜홀의 원리는 두 곳에 구멍을 뚫은 후 종이를 포개 단축통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끈 이론의 코니폴드 변환을 통해 증명됐지만 실제 발견된 사례는 없습니다. 웜홀로 들어가는 입구를 블랙홀, 나오는 출구를 화이트홀이라고 합니다. 블랙홀은 우리은하에만 1억 개 넘게 관찰됐을 정도로 많지만 화이트홀은 발견된 적도 없고 존재 가능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선 화이트홀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블랙홀은 한마디로 말하면 질량과 밀도가 엄청나게 큰 천체입니다. 질량이 크면 시공간이 왜곡돼 빛조차 탈출하기 힘들어집니다.


블랙홀의 크기는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블랙홀은 초극미량으로 작고 우리은하 중심부의 블랙홀은 지름이 태양-지구 거리만큼 될 정도로 큽니다. 태양과 지구도 압축시켜 질량을 극대화시키면 블랙홀이 될 수 있는데 이때 태양은 반지름 3km, 지구는 반지름 8.8mm의 천체로 쪼그라들 것입니다.


블랙홀의 중심부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하고 반지름을 계산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슈바르츠쉴트 반경이라고 합니다. 슈바르츠쉴트 반경이 끝나는 지점에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있습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중력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지점이어서 이 선을 넘어가면 누구도 돌아나올 수 없습니다. 지구는 탈출속도가 11.2km/s 인 반면 블랙홀은 탈출속도가 30만km/s 를 넘어가기에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어 블랙홀인 것입니다.


시공간을 휠 정도의 웜홀을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중력이 필요합니다. 또 불완전해서 대부분 수초 이내에 붕괴되어 버립니다. 가설상의 통로는 우주선은커녕 입자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작습니다. 인간이 이 공간을 통과하려면 입자 단위로 쪼갰다가 다시 합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웜홀을 누군가 인간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함으로서 논란을 피해갔죠.


영화 속에서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웜홀을 통해 1억 광년 떨어진 은하로 이동합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시간도 1억 년이 흘렀을까요? 그러나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지구의 시간과 웜홀 내부의 시간은 다르게 흐릅니다.



둘째, 인간이 블랙홀로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 인간은 블랙홀의 경계가 시작되는 지점인 사건의 지평선 너머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이나 영화에서 종종 미지의 세계를 나타내는 곳으로 그려왔죠.


블랙홀의 중력은 거리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데 몇 cm 차이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정교합니다. 선 채로 발부터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머리와 발끝이 받는 중력이 다릅니다. 발끝은 더 빨리 들어가려 할 것이고 머리는 상대적으로 느릴 것입니다. 따라서 몸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를 스파게티화라고 합니다. 즉, 스파게티처럼 몸이 길게 늘어져 결국 파편으로 쪼개질 것입니다. 그러나 블랙홀은 어둠의 공간이기에 인간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블랙홀에 빠진 쿠퍼가 살아있는 것은 미지의 존재가 보호해주고 있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블랙홀로 빨려들어간 물체는 엄청난 중력에 의해 자유낙하하게 되는데 사건의 지평선에 들어간 인간은 시간이 멈추면서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블랙홀을 빠져나온다면 그는 블랙홀로 들어가자마자 나왔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셋째, 블랙홀 근처 행성에서는 정말 시간이 느리게 갈까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상대적으로 다루는 물리 이론입니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공간은 더 강하게 휘어지고 시간은 더 천천히 흐릅니다. 지구도 태양 중력의 영향을 받지만 공전을 통해 그 힘을 상쇄합니다. 만약 행성이 블랙홀 근처에 있다면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의 영향을 받아 시공간이 휘어질 것입니다. 블랙홀이 거대할수록 중력의 영향도 크겠죠. 이때 시간이 비대칭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블랙홀은 일종의 타임머신 기능을 합니다. 과거로는 갈 수 없고 미래로만 갈 수 있는 타임머신입니다. 영화 속에서 블랙홀을 지나온 쿠퍼가 할머니가 된 머피와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은 이같은 상대적인 중력 때문에 가능합니다.



넷째, 지구와 닮은 행성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는 성경에서처럼 12명의 나사로 선발대가 웜홀을 통과해 세 개의 행성으로 떠났습니다. 밀러 행성은 거대한 파도가 치는 물로 가득한 곳이었고, 만 행성은 얼음 덩어리였으며, 에드문드 행성은 마지막 장면에 살짝 등장해 정체를 뚜렷하게 알 수 없었으나 지구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와 닮은 행성은 어디에 얼마나 발견됐을까요? 우선 태양계에서 지구와 닮은 행성은 화성 하나 뿐입니다. 다른 곳은 태양에서 너무 가깝거나 멀어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합니다. 목성과 토성은 기체로 만들어진 행성이라 애초 불가능합니다. 다만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은 메탄 바다와 대기를 갖고 있어서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태양계 밖으로 눈을 돌리면 지구와 닮은 행성은 꽤 많이 발견됐습니다. 우선 지난 2월 NASA가 지구에서 6400만km 떨어진 곳에서 찾은 '케플러-296'은 태양의 절반 크기에 5% 수준의 밝기를 가진 항성 주위를 돌고 있어 지구와 가장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7월엔 호주 연구팀이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진 곳에서 지구의 5.4배 크기의 '글리제 832c' 행성을 찾았는데 표면 온도와 밀도가 닮았습니다. 외계행성이 지구와 유사한 정도를 0에서 1사이 숫자로 나타내는 '지구 닮음 지수(Earth Similarity Index)'가 있는데 '글리제 832c'는 0.81점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항성 주위를 36일에 한 번씩 돈다고 하니 여기서 살면 1년이 1달 만에 지나가겠네요.



다섯째, 머피가 풀어낸 중력방정식으로 뭐가 달라질까요?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죽기 전 플랜A는 불가능했다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를 통해 머피는 브랜드 박사가 중력방정식을 이미 풀었지만 실행을 위한 구체적 변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모든 물리법칙을 총괄하는 중력방정식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후대로 내려오면 양자역학의 대통일장 이론과 결합해 초끈이론이 됩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엔 우주상수(그리스어 람다 λ로 표시)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싫어했고 우주도 팽창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그러면서도 중력방정식은 제대로 만들었으니 신기합니다. 우주상수는 뉴턴의 만류인력 상수이기도 한데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블랙홀로 빨려들어간 타스 로봇은 블랙홀의 중심부인 특이점에서 변수를 계산해서 쿠퍼에게 전달합니다. 특이점은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 등이 응축된 후 사라지는 아주 작은 점으로 모든 물리법칙이 무용지물이 되는 곳이죠. 절대적인 무(無)이면서 동시에 전부인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곳의 관측 데이터는 모든 우주에서 통용될 수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영화 속에서도 타스가 블랙홀에 들어가면 변수를 구할 수 있다는 대사로 암시되기도 하죠.


쿠퍼는 이것을 5차원 공간에서 3차원의 중력제어를 통해 모르스 부호로 변환해 머피에게 전해줍니다. 5차원은 상대성이론의 4차원 우주에 시간 개념을 더한 것으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입니다.


블랙홀에 빠진 긴박한 상황에서도 시계 초침으로 교감한 쿠퍼와 머피는 놀랍습니다. 아마도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공간이 멈춘 블랙홀에서 오감이 아닌 미지의 감각을 통해 결국 소통을 이루어내니까요. 결국 사랑은 시공간을 뛰어넘은 교감이라는 것이죠.


머피는 반쯤 해결된 방정식에 모르스 부호를 통해 얻은 정보를 대입해 중력방정식을 풀어냅니다. 그 결과 플랜A가 작동하게 됩니다. 중력의 원리를 알게 됐으니 우주로 나가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중력을 역이용하면 되니까요. 애초 NASA 기지는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 있었습니다. 인간은 우주에서 쿠퍼 스테이션을 만들고 새로운 식민지 건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쿠퍼 스테이션이 여전히 원통형으로 설계돼 원심력을 중력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중력방정식을 풀었다고 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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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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