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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를 본 관객이 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우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웜홀, 상대성이론, 중력방정식 등 천문학 수업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들이 오르내리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과학적 사실과 오류에 대한 갑론을박 논쟁이 한창이다.


<인터스텔라>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의 영화가 그리지 못했던 가장 사실적인 우주를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화 중 상대성이론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한 영화”라는 물리학자 킵 손의 말처럼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이 영화의 과학적 정확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인터스텔라>는 영화 한 편이 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흥미로운 사례다. 이 영화로 인해 2030년 인간의 화성이주 계획을 세운 엘론 머스크가 다시 주목받고 있고 물리학자 킵 손은 영화제작 과정을 바탕으로 한 논문을 준비중이라고 하니 영화 한 편이 과학기술의 대중화에 미친 영향이 실로 놀랍다. 교육적 기능이 강해 성인에게보다는 어린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영화이기도 한데 <인터스텔라>를 보고 자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는 향후 우주를 상상하는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과거 SF 영화들 중에도 <인터스텔라>처럼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과학기술의 변화를 이끈 영화들이 있었다. 그 사례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SF 영화의 금자탑이라 일컬어지는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돌아가보자. 인간종의 탄생부터 인공지능에 의한 반란까지 수만 년의 시간을 다룬 광대한 스케일의 이 영화는 인간이 우주를 상상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가깝게는 1969년 아폴로 11호 발사에 영향을 미쳤고, 멀게는 영화 속 우주정거장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 디자인과 화상 전화의 상용화에 모델로 참조됐다. 영화 속 우주선 이름인 ‘디스커버리’는 1984년 NASA가 우주왕복선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웜홀을 여행하는 스타게이트가 수 분 동안 지속되는데 지금봐도 전혀 유치하지 않게 우주여행의 신비를 자극한다.



<스타트렉> 시리즈 역시 SF와 과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1966년 첫 TV 시리즈가 방영된 이래 여섯 시즌의 TV 시리즈와 12편의 영화로 제작돼 미국에선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를 이어 <스타트렉>의 팬인 ‘트레키’가 된 경우도 많다. <스타트렉>은 웜홀, 블랙홀은 물론 안드로이드, 외계인, 우주전쟁, 광속여행, 타임머신, 워프 공간이동, 입자가속기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과학기술의 집합체다. 실제로 미국에선 <스타트렉>을 위한 과학백서가 발간되기도 했고 많은 천문학자와 NASA의 연구원들이 어릴 때부터 <스타트렉>을 보고 우주과학자의 꿈을 키웠다고 고백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원전사고를 예견한 영화도 있다. 제인 폰다,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1979년작 <차이나 신드롬>은 방송기자가 원전사고를 은폐하는 기업의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의 제목인 ‘차이나 신드롬’은 ‘멜트다운’ 원전사고로 녹아내린 핵연료가 지구를 뚫고 중국까지 갈 수 있다는 뜻을 담은 단어인데 당시 서양의 입장에서 원전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해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 개봉 후 불과 몇 주 뒤에 펜실베니아주 스리마일섬에서 원전사고가 터져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드러난 원전사고 은폐 과정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반면교사로 언급되면서 또 한 번 주목받았다.



1980년대 들어서 과학기술의 발달과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전략으로 인해 과학을 소재로 한 SF 영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SF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는 과학기술의 보물창고 같은 영화다. 우선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가 이 영화의 원작소설 제목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이름을 따왔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 LA의 화려한 금빛 스카이라인은 21세기에 지어진 두바이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이야기할 때 항상 비교되고, 영화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하는 홍채기술은 십여년 후 실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 역사상 최초의 CG가 사용된 1982년작 <트론>은 당시로서는 허무맹랑한 공상에 불과했던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스토리를 처음으로 전면에 부각시켰다. 천재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스스로 컴퓨터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컴퓨터 속에 들어가지만 컴퓨터에 먹혀버린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컴퓨터 내부에서 가상의 전사 트론과 힘을 합쳐 메인 컴퓨터와 전쟁을 벌인다. 이 파격적인 영화는 당시 애니메이션 사업이 부진해 침체기에 빠져 새 활로를 모색하던 월트 디즈니가 과감하게 제작을 맡았지만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향후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SF 영화의 모델로 남았다.



1983년작 <위험한 게임>은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처럼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영화다. 세계는 3차대전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였는데 정작 이를 조종하는 자는 영문을 모른 채 이것이 단지 컴퓨터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섬뜩한 스토리로 흥행에 성공한 <위험한 게임>은 1991년 걸프전쟁이 TV로 생중계될 때 다시 한 번 조명받기도 했다.



1983년작 <필사의 도전>은 우주비행사의 개척정신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린 영화다. “미래는 우주를 아는 사람에게 열려 있다”라는 대사처럼 마하의 벽을 깨는 속도경쟁, 우주로 떠나는 탐험가들의 이야기가 3시간 1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꼼꼼하게 담겨 있다. 원작자인 톰 울프는 현역 NASA 파일럿과 우주비행사들을 심층 인터뷰해 책을 썼는데 영화는 실제 미국 공군과 NASA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에드 해리스, 샘 셰퍼드, 스콧 글렌, 바바라 허쉬, 데니스 퀘이드 등 명배우들의 경연장이기도 한 이 영화는 이후 우주비행사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꼭 참고하는 ‘필견작’으로 남았다.



1986년작 <플라이>는 과학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프랑스의 기자 조르주 랑글란이 1957년에 쓴 단편소설을 195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화했는데, 영화 속에 분자를 분해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합성하는 공간이동 장치가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공간이동 장치를 구현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해 1997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의 안톤 젤링거 연구팀이 최초로 빛을 1km 떨어진 곳으로 공간이동시키는 실험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는 인간이 파리와 합성된다는 끔찍한 설정으로 과학기술 만능주의를 경고하고 있다. 당시 제작비 대비 7배 가까운 수익을 올린 화제작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 SF 영화는 과학을 좀 더 용기 있게 포용했다. 과학을 통해 영화는 먼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을 복원시키기도 하고 미래에 다가올 위협을 해결하기도 했다. 1991년작 <터미네이터 2>는 당시 새로운 아이디어의 집합체였다. 강철 합금과 액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이보그,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과 기계가 결국 대전쟁을 벌이게 될 거라는 경고는 이후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을 양산했다. 무엇보다 터미네이터의 시점샷에 등장하는 각종 디지털 정보들은 이후 스마트 글래스 등 웨어러블 기기 제작에 응용됐다.



1993년작 <쥬라기 공원>은 CG 기술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SF 영화였다. <트론> 이후 CG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11년 만에 공룡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화석에서 DNA를 체취해 공룡을 복원한다는 원작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아이디어는 당시 생명공학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도 생명공학에 대한 열기는 지금 우주과학에 대한 호기심 이상이었다.



1997년작 <콘택트>는 우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SF 영화다. 대중을 위한 천문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 박사가 직접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외계로부터 교신을 받았다고 믿는 여성 과학자의 열정을 다뤘다. 엘리 박사(조디 포스터)는 외계의 신호를 조합해 블랙홀을 생성시킬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데 영화 속에서 단 5초간의 순간이동으로 표현된 이 장면은 웜홀 여행을 표현한 영화 중 가장 시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1998년에는 혜성충돌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개봉했다. 그중 <딥 임팩트>는 <아마겟돈>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았으나 과학자들로부터는 더 사실에 부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SF 재난영화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인우주선을 혜성에 보내 핵폭탄을 터뜨린다는 영화의 아이디어는 10여 년 뒤 인간이 보낸 무인탐사선 로제타호가 혜성 착륙에 성공하며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당시 두 편의 영화가 연달아 개봉한 이후 혜성 충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급증해 미국 정부는 NASA의 혜성 관측 예산을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우주에 셀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혜성의 궤도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999년엔 <매트릭스>가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시뮬라크르를 영상으로 구현한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SF 영화사를 다시 쓴 혁명과도 같은 영화였는데 과학기술의 측면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우선 <매트릭스>는 세계가 ‘커넥티드’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첫 영화였다. 이전에도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트릭스> 만큼 적나라하게 이를 시각화한 영화는 없었다. 또, 이 영화는 가상현실의 실체를 파고들어 인공지능이 대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실제 현실은 가상 현실을 통제하는데 인간의 기억은 매트릭스 프로그램에 따라 입력되고 삭제된다. 인간과 기계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는 요즘 더 시사점을 갖는 작품이다.



2002년작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신기술이 나왔다 하면 자주 예제로 호출되는 영화다. 그만큼 이 영화가 그리는 2054년의 미래에는 인간이 갖고 싶어하는 기술이 많이 등장한다. 우선 범죄를 예측해 범인이 될 자를 미리 검거하는 최첨단 ‘프리크라임’ 시스템이 있다. 영화 속에선 예지력을 갖춘 자들이 범죄를 예측해내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최근 현실에선 이를 빅데이터로 구현한다. 뉴욕, LA, 런던, 서울 등 대도시들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범죄예방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범죄예상 지역을 중심으로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존 앤더튼(톰 크루즈)이 허공에서 손가락 만으로 투명한 모니터를 조작하는 장면 역시 이 기술이 조금씩 발전될 때마다 TV 뉴스에서 자료화면으로 볼 수 있다. 모션 센서와 에어 라이팅(Air-Writing)을 결합한 제스처 인터페이스 기술은 현재 많은 IT 기업들이 연구중이니 조만간 현실화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밖에 홀로그램 광고,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사물인터넷 등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공학자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한 ‘잇 아이템’들의 보고였고 속속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다.



2004년작 <투모로우>는 기후변화를 예견했다. 영화는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대재난을 다뤘다. 개봉 당시엔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을 비롯해 지구 온난화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주목받았고, 최근엔 이상고온, 홍수, 폭설 등 기상이변이 현실화하면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 때문에 미국 정부는 기후변화 관련 예산을 2011년 2배 이상 늘리기도 했다.



2008년작 <아이언맨> 역시 웨어러블 컴퓨팅이 발전할 때마다 많은 뉴스들이 예로 드는 영화다. 백만장자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하이테크 철갑수트를 만들어 입은 뒤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갖게 된다. 만화 속 다른 슈퍼 히어로들이 선천적인 초능력을 갖고 있는데 반해 토니는 평범한 인간임에도 특수 장비를 입을 때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공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이 90kg의 짐을 짊어지고 시속 12km로 구보할 수 있는 보행제어 로봇 `헐크'를 만들었고, 구글 글래스를 응용한 군사용 헬멧도 실험 단계에 있다. 한국에선 LIG넥스원이 80kg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입는 로봇 `렉소'를 12월 공개를 목표로 4년째 개발중이다.



이밖에 많은 SF 영화들이 과학기술의 변화와 함께 했다. 2007년작 <트랜스포머>는 동심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로봇에 대한 관심을 성인들에게까지 촉발시켰고, 2009년작 <아바타>는 3D 혁명을 주도해 가전 메이커들이 3D TV를 만들어 보급하게 했으며, 2012년작 <그래비티>는 화려하지 않은 진짜 우주를 간접체험하게 함으로서 인간에게 우주를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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