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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인 <바람이 분다>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보는 내내 지루했는데 이야기 구성이나 주제가 철지난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레퍼토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상 후 포인트를 짤막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1.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중 성인이 주인공인 첫 영화다. 그런데 그 성인은 비행기 만드는 것에 푹 빠져 있는 남자다. 외관상 성인이지만 사실상 소년이다.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의 꿈속에 나타난 노인이 그를 계속 소년이라고 부른다.


2. [성공시대] 같은 한국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기업가들의 성공 스토리가 등장하는데 천편일률적으로 창업자의 불굴의 의지와 업적을 칭송한다. 어릴적 찢어지게 가난했었는데 사업하기로 마음먹은 뒤 일본에 가서 몰래 기술을 배워 와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이 대박나 기업이 성장했다는 스토리. 그중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에게 기술을 배우는 장면일 것이다.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어이 몰래 혹은 억지로 배워온다. <바람이 분다>는 이 설정을 일본과 독일로 바꾼 일본판 [성공시대]다. 주인공은 미츠비시에서 '제로센'이라는 폭격기를 만들었던 호리코시 지로. 그는 항공 기술을 배우러 독일로 가는데 그곳에서 모멸감을 느껴가며 기술을 배워온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기업가들이 성공한 방식은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결과적으로 한국 기술은 일본인이 독일에서 배워온 것을 나중에 한국인이 다시 배워온 것이다.


3. 일본에서 개봉할 당시 논란이 컸던 영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가 군국주의 논란에 휩싸이다니. 어쩌면 논란 덕분에 일본에서 흥행 대기록을 세웠는 지도 모른다. 호리코시 지로는 군국주의의 상징인 '제로센' 폭격기를 만든 사람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가면 카미카제 특공대가 몰았던 이 제로센을 볼 수 있다. 그는 해군 회의에 직접 참석해 비행기를 어느 정도의 성능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조율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군대에서 폭격기로 사용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을 이 영화는 지나치게 미화했다. 낭만적인 사랑과 자신의 일 사이에서 완벽할 정도로 절제하면서 본분을 다했던 '좋은 남자'로 그려냈다. 관동대지진 때는 여자 가족을 구해주고, 다시 만난 여자가 결핵에 걸렸어도 기꺼이 결혼까지 한다.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싶은 성인군자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실존인물을 극화한 것이라고 하면 감동이 배가되는데 반해, 이 영화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오히려 판타지가 깨지면서 참을 수 없을만큼 역겨워졌다. 애니메이션의 속성상 그림으로 그릴 때 더 미화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렇게 실존인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때에는 그 인물을 더 객관적이고 으로 그려야 한다.

 


4. 감독의 질문은 "한 사람이 평생 순수한 의도로 만든 것이 나쁜 목적으로 쓰였을 때 이 사람의 인생도 그만큼 나쁜가"일 것이다.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질문임에는 틀림없으나 문제는 그 방식이다. 감독은 그 대답으로 "아니다. 나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영화를 만들었다. 분명히 양면성에 대한 논쟁이 촉발될텐데도 감독은 시침 뚝떼고 이 사람은 이만큼 위대한 사람이니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고 웅변한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아니라 주장을 듣는 영화가 됐다. 이는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꼰대'처럼 자신의 생각만을 전달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이 어딘가 모르게 핀트가 맞지 않으면 의구심은 증폭된다. 과거 미야자키 하야오는 <붉은 돼지>에서 뚜렷한 반전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자신이 그래왔으니 이 작품도 그 연장선 상에서의 고민으로 봐달라고 하는 것은 감독의 오만이다. 작품은 그 작품만으로 판단받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바람이 분다>는 한 남자의 순수한 열정을 '신파'에 의존해 담기 전에 좀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했다.


5. 그렇다고 영화에 반전 메시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로는 돌아오지 않는 제로센을 바라보며 뒤늦게 탄식한다. 지로를 응원하던 한 독일인은 나치 독일에 쫓기면서 그에게 독일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대사를 한다. 그런데 이런 장치들은 구색맞추기처럼 보인다. 지로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폴 발레리는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영화 속 지로가 딱 그런 경우다. 그는 생각하며 사는 게 아니라 사는대로 생각하는 남자다. 그가 자신이 하는 일의 세계사적 의미를 진정 몰랐다면 이는 순수함을 가장한 폭력이다. 이 영화가 제목으로 차용하고 또 대사로 응용한 프랑스 시에서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했지만 그 다음구절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살아야겠다"라고도 했다. 지로는 불어오는 바람을 보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기 이전에,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부터 구분을 했어야 했다. 이는 이 영화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그대로 해주고 싶은 말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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