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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자카 히로시의 라이트 노벨 [All You Need is Kill]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옮겼다. 일본의 대중소설을 영어권 영화로 만든 것인데 기본 구성 뿐만 아니라 주인공 이름도 케이지와 리타 브라타스키로 그대로 살렸다. 줄거리는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단촐하다. 죽어도 하루를 무한반복해 살 수 있게 된 주인공이 외계인에 맞서 싸운다는 것.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사랑의 블랙홀>의 아이디어와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원래 그것이 외계인의 능력이었다는 것으로 표절 의혹을 피해갔다. 소설에서는 도쿄 남쪽 가상의 섬이 배경이었지만 영화의 무대는 유럽이다.


'내일의 경계'라는 뜻인 영화의 제목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원작 소설의 제목과 비교해보면 각색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원작은 죽음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제목인 반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시간을 지배하는 외계인을 '오메가'라고 부른다. 오메가는 고대 그리스어의 마지막 단어로 '끝'을 의미한다.


영화는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 우선, 장점은 재치있는 아이디어와 리드미컬한 편집이다. 반복되는 하루를 비슷하게 보여줬다면 지루했을텐데 인물의 감정 변화에 맞춰서 필요한 부분만을 잘라서 임팩트 있게 보여준다. 단점은 단조로운 스토리다. 오메가의 거주지를 찾아가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일 만큼 단순하다. '전장의 암캐' 리타와의 러브라인은 '썸'타는 정도로 끝나는데 두 사람 외에 비중 있는 다른 배역조차 없다. 인상적인 배역이 없으니 특별히 더 나올 이야기가 없고 갈등도 없다. 심지어 다른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문어 스타일의 외계인조차 전혀 새롭지 않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톰 크루즈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오블리비언>의 또다른 버전처럼 보인다. 에밀리 브런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는 <오블리비언>의 신예 올가 쿠릴렌코보다도 덜 매력적이다. 이건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각본의 문제처럼 보인다. '전장의 암캐'로 건강한 체력의 소유자이자 케이지에겐 사랑스런 여성이어야 했는데 영화는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쌓이려는 순간 그를 죽여 리셋해버린다. 영화가 사랑의 감정을 절제하려 했다면 반대로 그녀의 전투 능력을 강화했으면 됐겠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엄연히 톰 크루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케이지 뒤를 졸졸 따라다닐 뿐이고 막무가내로 헬기를 타다가 죽어버리기까지 한다. <영 빅토리아>의 매력적인 빅토리아 여왕은 사라져버리고 어정쩡한 '민폐 캐릭터'만 남아버린 셈이다.


(* 지금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파리 침공을 앞둔 순간 케이지는 수혈로 신비한 능력을 잃는다. 주인공이 죽어도 다시 살려내서 게임을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하트나 동전이 다 떨어져서 마지막 판을 하게 된 기분인데, 아쉬운 것은 이 순간부터 영화도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지하로 뚫고 들어가 아주 쉽게 오메가를 박살내는 엔딩이라니. 어느 게임도 이렇게 허무하게 왕을 깨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시간 이야기를 해보자. 케이지는 미국인 장교다. 그는 영국의 연합사령관에 의해 이병으로 강등돼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올해가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여기에서 두 개의 스타팅포인트가 발생한다. 하나는 케이지가 히드로 공항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서 눈을 뜨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런던에 도착하기 전 헬기 안에서 눈을 뜨는 장면이다. 오메가의 능력을 덮어 써 시간을 리셋할 수 있게 된 케이지는 왜 두 개의 지점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죽기 24시간 전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지점에 태그를 해놓은 것처럼 딱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왜일까? 앞서 언급한 <사랑의 블랙홀>은 주인공이 죽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야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식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두 지점에 스타팅포인트가 형성된 이유는 그 지점이 케이지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설정된 지점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말하자면, 오메가가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객관적인 단위의 '시 분 초'에 의한 시간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그때 그 순간 그 시절' 같은 단위인 것이다. 케이지는 연합사령관에게 체포된 순간 충격에 빠진다. 단 한 번도 전방에 전투병으로 투입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그다. 인생에서 강한 충격을 받은 순간은 깊게 각인되지 않던가. 그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르게 했을텐데 하며 자책하다가 결국 트라우마로 남곤 한다. 영화에 드러나지 않지만 케이지에게 두 개의 스타팅포인트는 아마도 후회하며 자책하던 그가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하던 순간이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똑같은 삶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씩 깨달으며 위기를 돌파해 나아간다. 결국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무수히 반복되는 시간을 통해 인생의 커다란 충격을 극복해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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