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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습니다.


<표적>과 <끝까지 간다> 최근 개봉한 경찰이 등장하는 한국영화들의 공통점. 하나, 착한 놈이 없다. 둘, 사생활도 순탄치 않다. 셋, 비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표적>에서 유준상은 아예 대놓고 청부살인을 저지르고, <끝까지 간다>에서 조진웅은 경찰인 친구를 화물로 깔려 죽인다. 솔직히 둘 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 같지는 않지만 영화에서 잔인한 악역을 맡아도 관객이 납득할 만큼 한국 경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것은 사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시위 강경진압이나 영혼 없이 정권 눈치보는 수사는 불신을 증폭시켰다. 권력관계에 얽혀 배후의 진짜 큰 도둑은 못 잡고 눈에 보이는 도둑만 잡아들인다는 비판이 가중돼왔다. 1990년대 <투캅스>가 나올 때만 해도 경찰을 우습게 그리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곤 했는데 이제는 영화 속의 악질 경찰에 대해 영화가 심했다느니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공공의 적> 같은 영화가 등장해 강직한 형사가 권력자를 잡아 벌주는 스토리가 가능했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간 시대착오라는 놀림을 받기 십상일 것이다.


"너 경찰 처음 될 때 꿈이 있었잖아. 정년퇴직하는 꿈 말이야" <끝까지 간다>에서 반장(신정근)은 떠나려는 고건수(이선균)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처럼 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은 경찰관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사명감 이전에 국가 공무원으로서 정년보장이라는 이점 때문에 경찰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관이 '월급쟁이'라고 자조할 때, 낮은 자존감은 낮은 윤리의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오빠 경찰이잖아. 세입자 내쫓아줘. 그 자리에서 우리 가게 할게" 여동생이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미 힘의 크기에 반비례하는 경찰관의 낮은 윤리의식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연줄로 사용해 소시민을 착취하려는 여동생은 부패한 경찰 시스템이 낳은 또다른 괴물이다. 두 영화는 그래도 나쁜 경찰이 뉘우치거나 붙잡히면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부패한 권력은 시민감시가 부족한 탓에 잘 바뀌지도 않는다.



두 영화 모두 경찰청의 촬영 협조를 얻지 못해 영화에 등장하는 경찰서는 모두 세트장이다. <표적>의 세트장이 마치 홍콩영화에 등장하는 경찰서처럼 겹겹이 닫힌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반해 <끝까지 간다>의 경찰서는 여느 지방 경찰서처럼 평범한 사무실 구조다. <표적>에서 송기철(유준상)은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포섭하며 고립된 성을 쌓았지만 <끝까지 간다>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경찰관이 크든 작든 비위와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감찰반도 강력계의 비위를 적발하고도 박창민(조진웅)의 힘에 눌려 사건을 덮어버린다.


이런 차이는 영화의 만듦새와도 직결된다. <표적>은 하나의 강력한 적을 향해 직진하는 총알 같은 영화인 반면, <끝까지 간다>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러닝타임 내내 붙잡고 보는 영화다. <표적>은 일부 좋은 액션 씬으로만 기억에 남을 영화지만, <끝까지 간다>는 올해 한국 스릴러의 최고 수확 중 한 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가 쫄깃쫄깃하게 배어 있다. 뺑소니 사고를 내고 무마하려는 고건수의 기지로 사건이 가까스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던 찰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등장해 사건을 원점으로 되돌려버린다. 벌 받게될 줄 알았던 나쁜 주인공이 더 나쁜 악당을 만나 오히려 피해자처럼 보이게 된 플롯은 거대악에 대항하기 위해 허물 가진 자들이 연합하는 시대 분위기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날렵한 이선균과 묵직한 조진웅의 연기 조합은 아주 좋은데 특히 조진웅이 내뿜는 거대한 존재감은 중반부 이후 자칫 루즈해질 수도 있었을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킨 일등공신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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