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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목적은 뭘까요? 이러한 물음에 많은 필름메이커들은 '꿈'이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영화들이 많은가요? 대부분의 영화들은 우리의 꿈과 상관 없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싸우고 부수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엿보면서 대리만족하거나 감탄할 뿐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우리의 '꿈'과 '상상'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바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같은 영화입니다. 저는 이런 영화를 너무 좋아합니다. 아예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두고 싶을 정도예요. 평범한 현대인이 영화 속에서 모험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영화 말이에요. 이참에 몇 편 꼽아볼까요?


<스트레인저 댄 픽션> <카이로의 진홍빛 장미> <파이트 클럽> <라이프 오브 파이> <어바웃 슈미트> <빅 픽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1947년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입니다만 배경은 전혀 다릅니다. 1947년작 영화의 월터 미티는 보석과 관련된 국제적 음모에 휘말렸던 반면 2013년작의 배경은 LIFE 매거진입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보그 잡지를 배경으로 패션 피플의 이야기를 그렸던 것처럼 이 영화는 LIFE를 무대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수시로 강조되는 메시지를 한 번 볼까요?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this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다가오는 장애물을 넘어, 벽 너머를 보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LIFE의 목적이다.)


42살 소심한 월터(벤 스틸러 분)가 삶의 목적을 찾아 떠나는 동기는 한 여자입니다. 직장 동료 셰릴(크리스튼 위그 분)에게 잘 보이고 싶습니다만 16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한 그는 내세울 게 별로 없습니다. 멍 때리는 게 특기인 그는 새로운 상사에게 놀림감일 뿐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아날로그 필름 현상을 하는 그는 일자리를 잃기 직전입니다. 심지어 LIFE는 종이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 매거진으로 변신을 꾀하겠다고 합니다. 실제로 1936년 창간한 LIFE는 보도사진 분야에 한 획을 그었지만 2007년 온라인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월터는 LIFE 매거진 최고의 프리랜서 사진작가 숀(숀 펜 분)을 찾아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로 모험을 떠납니다.


월터의 성격 만큼이나 꼼꼼하고 아기자기한 오프닝 시퀀스의 자막, 또 월터가 가진 의외의 장기인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아이슬랜드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시각적 쾌감입니다.



여행은 떠나기 전과 후가 달라서 막상 떠나보면 또다른 현실의 시작입니다. 무한정 에피소드가 생기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영화는 월터에게 풍부한 경험을 선물합니다. 술취한 파일럿이 모는 헬기를 타고, 상어와 격투를 벌이고, 아이슬란드 화산을 피해 도망가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롭게 축구를 하고, 공항 검색대에 걸려 억류당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현실로 돌아온 월터에게 영화는 숀의 25번째 사진을 빌어 말합니다. 조직에서 묵묵히 맡은 바 일을 해낸 당신이 LIFE 최고의 자산이었다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숀과 처음 만난 장면일 것입니다. 숀은 오랫동안 쫓던 하얀 표범을 보고도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가끔은 자신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간혹 너무 아름다운 것은 찍지 않아. 함께 머무는 것만으로 완벽한 순간이 있거든." 정말 중요한 순간은 사진으로 찍을 때 별 것 아닌 것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엔 셔터를 누르지 말고 머릿속에만 담아두어야 감흥을 깨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SNS를 도배하는 수많은 인증샷은 우리를 지치게 하니까요.


영화 속에 데이빗 보위의 노래 'Space Oddity'가 멋지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수염을 기른 상사가 월터를 '톰 아저씨'라고 놀리는데 월터는 진짜 '톰 소령'이 되어 먼 곳으로 날아갑니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이라는 가사가 귓가에 맴돌죠. 이 노래는 애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영감 받은 데이빗 보위가 1969년 발표한 음반에 수록한 곡인데요. 데이빗 보위의 천재성이 생생히 살아 있어 지금 들어도 아주 좋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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