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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이런 추상적인 질문에 직설적인 대답을 하는 영화가 있다. <무게>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은 죽으면 시체안치소로 간다고. 시체안치소에는 꼽추가 산다.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서 길러졌을 것 같은 꼽추 정씨(조재현 분)는 성욕이 거세된 남자다. 그는 시신이 들어오면 씻고 꿰매고 화장하고 관에 담는 게 일과다. 남는 시간에는 크로키를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어느날 유명 여배우와 그의 남편이 시체가 되어 들어온다. 화려한 삶을 살았을 그 여배우도 그러나 이곳에서는 한낱 몸뚱아리일 뿐이다. 발가벗은 그녀의 몸을 깨끗하게 씻으며 정씨는 중얼거린다. "이렇게 예쁜 몸으로 왜 여길 들어왔나." 삶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죽음의 무게는 모두 똑같다. 관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헬멧을 쓰고 다니는 남자가 시체안치소로 들어온다. 태어날 때부터 기형이어서 사창가의 여자들에게도 거부당한 그는 죽은 노모의 시신을 보며 오열하더니 곧 그 옆에 놓인 여배우의 시신을 발견한다. 정씨는 그 남자가 여배우를 시간(屍奸)하는 것을 CCTV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 제지하지 않는다. 영화 도입부의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어느 정도의 수위로 어떤 이야기를 할 지를 예고한다. 전작에서도 신체 노출을 당연시해온 전규환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기형아, 인터섹슈얼, 동성애자 등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몸을 적나라하게 들춘다. 김기덕 감독이 신체 폭력을 통해 주제를 드러냈다면 전규환 감독은 신체를 직접 보여주는 것과 가끔 등장하는 판타지로 주제를 표현한다. 덜 폭력적이지만 이미지의 강렬함만큼은 김기덕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정씨에게는 배다른 동생이 있다. 인터섹슈얼로 태어나 뒤늦게 자신이 여자인 것을 자각하게 된 동배(박지아 분)는 남자/여자로 나뉘어진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녀는 남자 성기를 떼어내고 여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돈이 없고 그를 버린 엄마는 수술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정씨의 시체안치소뿐이다. 정씨는 자살하다시피 죽어버린 동배의 시신을 깨끗이 씻어준 뒤 생전 그녀의 소원대로 성기를 잘라낸다. 그리고 여성처럼 보이는 그녀의 몸을 사진 찍어 관 속에 담고는 그 자신도 그녀와 함께 관 속에 들어간다.



시신에서 빼낸 금니빨을 전당포에서 저울에 달 때 금니의 무게, 그 돈으로 고기를 사먹을 떼 칼에 잘리는 고기의 단면, 개처럼 길거리에서 섹스하는 인간군상, 남자배우와 바람피다 발각돼 도끼에 맞아 죽는 여배우의 나체, 남자라고 생각하고 거리낌없이 동배를 몸수색하는 경찰의 나쁜 손, 유혹해주기를 바라며 정씨의 손을 자신의 팬티 속에 집어넣는 청소부(라미란 분)의 시선, 앨범에도 헬멧을 쓰고 찍은 사진만 있을 정도로 자신의 외모를 경멸해 마치 <엘리펀트 맨>처럼 살아온 기형아, 그가 죽은 뒤 헬멧을 벗었을 때 처음 등장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 등 영화 속 이미지들은 인간이 감추려 하는 날것 그대로다.


정씨는 크로키로 누드화를 그린다. 정씨에겐 성욕이 없기에 그가 그리는 누드화는 에로틱하지 않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이 사라지면 영화는 가벼워진다. 정씨는 TV에서 나오는 왈츠를 따라하며 시체들과 함께 왈츠를 춘다. 영화 속 판타지인 이 장면에서 시체들은 각자의 무거운 사연을 벗어던지고 깃털처럼 가볍게 발을 맞춘다. 에로스를 버리고,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마저 거부한 시체들은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듯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영화는 정씨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며 그가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속삭인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행복할 수 없었던 이곳에 비해 나비가 날아간 그곳엔 적어도 무게에 대한 차별은 없을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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