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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움받는 여자] [너무 친한 친구들] [깊은 상처]에 이은 타우누스 시리즈 네번째 소설입니다. 책 맨 뒤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는 취미로 글을 쓰던 전업주부였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을 배경으로 한 타우누스 시리즈로 스타작가로 올라섰다고 합니다. 20살 연상인 남편은 소시지 공장에 다니는데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25만부 팔리자 "나도 소시지를 25만 개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죠. 소시지 공장이 언젠가 소설의 무대로 등장하지 않을지 궁금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독일 지도에서 알텐하인을 찾아봤습니다. 독일 북서부 프랑스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St. Gallen Altenheime이라는 지명이 있더군요.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서쪽으로 더 가야 하는 지역입니다. 책에는 알텐하인에는 강력계가 없어서 프랑크푸르트 경찰서에서 지원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죠. 그만큼 작고 사건이 없는 곳인가 봅니다.


[이끼] [7년의 밤]처럼 이 소설도 배경이 된 마을이 이야기를 하는 책입니다. 소설의 배경이 타우누스 지방의 알텐하인이라는 요새 같은 아담한 마을이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설은 이 지역을 사실적으로 꼼꼼하게 묘사합니다. 경찰서도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에서 두 여자 아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마을은 집단최면에 빠집니다. 당시 18세였던 로라 바그너와 스테파니 슈네베르거라는 두 여자아이가 사라진 날은 1997년 9월 6일 축성일로 마을축제에서 연극 [백설공주]를 하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습니다. 20세의 토비아스 자토리우스가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몰려 결국 10년형을 선고받습니다.


넬레 노이하우스


이야기는 2008년 11월 6일 목요일 토비아스가 형기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소설은 그날부터 11월 24일 월요일까지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하루하루 일기처럼 각 인물들을 오가며 서술하고 있습니다. 토비아스가 알텐하인으로 돌아온 뒤 마을은 다시 술렁거립니다. 토비아스 엄마의 테러사건이 벌어지고 노이하우스 소설의 단골 주연 형사들인 보덴슈타인과 피아가 사건에 투입됩니다. 보덴슈타인은 20년의 결혼생활을 한 남자로, 피아는 동거하고 있는 남자가 있는 여자로 나오는데 모두 나이가 40~50대라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 정도 나이대의 남녀 형사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늘 같이 다니는 두 사람은 "서로 사귄다"는 식의 루머에 시달립니다. 소설은 두 사람의 사생활에서 잔재미를 주려 하고 있지만 그러나 사생활에 관한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영화제작자인 보덴슈타인 부인이 바람나는 스토리가 그렇게까지 길게 다루어질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피아의 무허가 집은 소설의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개인적인 고민 때문에 수사에 애를 먹는다는 식의 개연성을 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인 보덴슈타인과 직감에 의존하는 수사를 펼치는 피아 두 사람은 소설 초반부에 묘사된 성격으로는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줄 것처럼 하지만 결국 모든 수사는 자백에 의존해 싱겁게 끝나버립니다.


10년간 조용했던 마을에서 토비아스 사건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이제 막 18세가 된 아멜리라는 술집 흑마의 여종업원이 이 사건을 파헤치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토비아스의 출소와 아멜리의 등장이 10년전 사건을 파헤치는 트리거인 셈입니다. 실종된 스테파니 슈네베르거와 놀랍도록 유사한 외모를 가진 아멜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의 대상이 된 토비아스에게 연정을 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소설에서는 외모가 참 중요합니다. 여류작가의 상상력 때문인지 그녀는 보덴슈타인과 토비아스를 조각미남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티스도 가만히 있을 때는 잘생긴 청년이라고 묘사합니다. 그에 비해 여자들은 외모에 따른 단계를 나누어 놓았는데, 로라보다 스테파니가 예쁘고, 선머슴 같던 나탈리는 후에 독일 최고의 미녀배우 나디아 폰 브레도프로 변신합니다. 어쨌든 스테파니는 백설공주 역할을 맡을 정도로 예쁜 소녀였습니다. "피부는 눈처럼 희고 입술은 피처럼 붉고 머리칼은 흑단처럼 검어라"는 묘사 그대로 한 눈에 띄는 미인이었습니다. 당시 토비아스는 전학 온 그녀에게 한 눈에 반했고 전 여자친구인 로라와 토비아스를 짝사랑하던 나탈리는 스테파니에게 질투를 느낍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벌어진 날 술에 취했던 토비아스는 자신의 행적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말도 못하고 결국 법정에 선 것이죠. 그런데 스테파니와 너무 닮은 아멜리가 마을에 나타나 10년 전 사건을 들쑤시고 다니자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아멜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피아는 토비아스가 10년전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직감을 갖고 보덴슈타인과 함께 그 사건을 다시 추적합니다. 그리고 사라진 아멜리의 행방을 쫓습니다.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력한 용의자는 문화부장관 그레고어 라우터바흐, 그의 부인이자 의사인 다니엘라 라우터바흐, 마을의 유지인 클라우디우스 테를린덴, 인기배우 나디아 폰 브레도프(나탈리)로 압축됩니다. 모두 10년전 사건 이후 잘나가는 사람들이죠.


독일판 표지 [백설공주는 죽어야 한다]


이 책은 짙은 안개에서 시작해 안개가 점점 걷히며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뭔가 거대한 것이 있을 것처럼 암시를 주다가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는 방식이죠. 그런데 아쉬운 것은 결국 밝혀진 실체라는 것이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깜짝 놀랄 반전이나 기막힌 상상력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러난 실체가 예상보다 간단해서 더 놀랐다고 할까요. 이중적인 얼굴을 한 절대악인이 한 명 있고,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이기적인 마음에 사건을 조작하고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가면 몇 가지는 해결을 하지 못하고 그냥 끝맺기도 합니다. 예컨대 토비아스가 왜 두번이나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잃었는지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다니엘라가 약효가 있는 동안 기억을 잃는 앰니지어 효과가 있는 약을 만들어 티스에게 먹인 것이 나오긴 하지만 토비아스와의 연관성은 충분히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점은 추리소설로서의 단점입니다.


(이 단락은 스포일러 경고!)

작고 평온해 보이는 마을에 큰 사건이 벌어지고 저마다 이기적인 생각들 때문에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마을의 유지로 존경받는 클라우디우스가 자신의 검은 거래들을 숨기기 위해 사건을 축소하려는 것, 남편을 출세시키고 싶은 여의사인 다니엘라가 사건의 목격자인 자폐아 티스에게 엉뚱한 처방약을 먹이는 것, 또다른 목격자인 나탈리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토비아스에게 복수하고 훗날 그를 독차지 하기 위해 10년간 그의 억울함을 묵인한 것 등입니다. 520페이지의 묵직한 분량 속에 작가는 가면을 쓴 인간의 이중성을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고 이야기로서의 읽는 재미도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끝맺음은 독자에게 허탈감을 줍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바람핀 부인과 헤어질 것을 결심하고 자유의 몸이 된 보덴슈타인은 뜬금없이 티스의 이모인 하이디 브뤼크너와 데이트 약속을 잡습니다. 전날 하룻밤을 보낸 엥겔 과장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또 사건을 해결하는 데 능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던 아멜리는 갑자기 피어싱을 떼내고 단정한 머리를 한 순종적인 여자가 되어 토비아스에게 안깁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분명히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건이 터지면서 자극을 유도하는 구성도 좋습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완결되지 않은 듯 산만합니다. 작가가 좀 더 꼼꼼하게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국내도서
저자 : 넬레 노이하우스(Nele Neuhaus) / 김진아역
출판 : 북로드 201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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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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