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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 계속해서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에 올라 있는 소설이 있습니다. 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도 대박을 낸 외국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 이전에는 이름을 잘 들어보지 못했던 작가의 책입니다. 바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입니다. 케네디의 두 번째 소설이고 1997년에 발표한 책인데 뒤늦게 한국에 소개됐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뒤로 그의 소설이 계속해서 번역되고 있고 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약력을 찾아보니 뉴욕 맨해튼 출신이고 부모는 파생상품과 NBC 방송국에서 일하던 분이었군요. 그의 책에서 느껴지는 '돈 냄새'와 영화, 사진, 방송 등 화려한 생활에 대한 디테일이 그의 태생부터 핏줄처럼 흐르던 것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적인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싶어서 아일랜드로 갑니다. 더블린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결혼한 뒤에는 런던에 거처를 마련해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28세부터 전업작가를 선언하고 BBC 라디오 극본을 쓰기도 했고 선데이 타임스, 에스콰이어, GQ 등에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첫 책은 이집트 여행기였습니다. 39세 1994년에 첫 소설 [Dead Heart]를 낸 뒤 두번째 소설 [빅 픽처]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 뒤 [행복의 추구] [위험한 관계] [템테이션] [파리 5구의 연인] 등의 책을 냈는데 2010년 [리빙 더 월드]와 2011년 [모멘트]로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연속해서 올랐습니다. 그의 책은 22개국에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책은 왜 잘 팔릴까요? 그 답은 직접 읽어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문장이 짧고 경쾌하고 진행이 빠르며 판단이 명쾌하고, 세속적인 인물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결말에 이르러서는 어떤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한 마디로 '가볍지만은 않은 페이지터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근황을 페이스북을 통해 보고 있는데 그는 앞으로 매년 책을 내겠다고 선언했더군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매년 가을에 책을 내겠다고 한 것을 떠올렸는데 작가들은 게으름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매일 집필을 하고 그 결과를 매년 보는 것이 주기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하는가 봅니다.


[빅 픽처]와 [템테이션]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두 책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각각 1997년과 2006년에 나온 책인데 [템테이션]이 거의 10년 만에 쓴 [빅 픽처]의 변주라고 할까요? 한 남자가 꿈을 향해 질주합니다. 그런데 어떤 장애물에 부딪혀 추락합니다. 몰락의 과정이 디테일하게 묘사됩니다. 그러나 앞에 깔아놓은 복선에 의해 그 남자는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돌아온 삶은 절대 예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빅 픽처]에서 그것은 전혀 새로운 제3의 삶이었고, [템테이션]에서 그것은 할리우드에서 세속적인 성공에 적응해버렸지만 마음은 황폐해진 '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빅 픽처]를 좋아합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 세 개의 인생을 사는 이야기인데 플롯이 짜임새 있는데다 분량 자체도 절반은 첫번째 삶,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두번째 삶, 그리고 나머지는 세번째 삶으로 형식미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삶과 두번째 삶의 대비에서 오는 어떤 인생의 아이러니도 우회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로펌 변호사와 사진작가라는 대단히 미국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주인공 역시 철두철미하게 사건을 꾸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세탁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상업적 성공이 결국 전혀 의도하지 않던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풍자 혹은 조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거기서 끝났으면 우디 앨런의 <스몰 타임 크룩스>처럼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마무리 됐겠지만 작가는 세번째 아이덴티티로 또한번 주인공의 인생을 비틉니다. 그쯤되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헛갈리게 되죠. 우디 앨런의 블랙코미디보다는 코엔형제 영화 속 인생의 페이소스에 더 가깝습니다.


[템테이션]도 인생의 굴곡에 대한 이야기이고, 고생 끝에 찾아온 성공이 한 사람의 파시즘적 집착에 의해 파멸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빅 픽처]에 비해 [템테이션]은 조금 단조롭습니다. 그리고 또 약간 공허하다고 할까요?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면 차를 바꾸고 멋진 집에 살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지위와 미모를 겸비한 여자를 만난다는 뻔한 공식이 책 전반부에 전개되는데 그 순간이 롤러코스터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처럼 흥분되어야 하고 그 흥분으로 후반부의 몰락에 빠져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과정이 굉장히 헛되게 느껴졌습니다. 작가 특유의 돈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할리우드에 대한 디테일이 살아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자, 돈을 어디에 얼만큼 썼는지는 충분히 알겠으니 그만 하고 이제 그가 처한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려줬으면 좋겠네 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중반부에 필립 플렉이라는 갑부가 나옵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중년 남자인데 영화를 전공하다 가업을 물려받아 사업체를 키워 대부호가 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책은 이 남자를 소홀하게 다룹니다. 영화광이라서 자신이 가는 곳곳에 영화박물관도 짓고 또 책에 다양한 영화가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살로 소돔의 120일>을 제외하고는 어떤 영화도 두번 등장하지 않습니다. 즉, 나머지는 그저 그 사람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설명이었다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책 속에 등장한 영화들도 많고 인용된 책들도 많아요. 풍성한 레퍼런스들을 그저 한 번 쓰고 버릴 기호품처럼 생각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장점은 확실히 대중성에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세계를 다룹니다. [빅 픽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뉴욕 로펌 변호사와 사진작가의 세계를 그렸고 [템테이션]에서는 할리우드 시트콤 작가가 처한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사진작가로서 미디어에 사진이 실리고 점점 유명세를 타는 과정과 시트콤 작가가 작품을 계약하고 포르쉐를 타는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주인공이 얼마짜리 음식을 먹고 얼마짜리 가구를 사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분명히 속물적인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꼼꼼한 묘사는 기분 나쁘다기보다 호기심을 더 자극합니다.


작가는 또 캐릭터에 확실한 호불호를 부여합니다. 즉 주인공이 바라보는 시선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다룹니다. 많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그렇게 하는 것처럼요. 예를 들어, 돈만 밝히는 사람은 확실히 속물로 묘사하고 돈 많지만 젠체 하지 않는 사람은 괜찮은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책 속 인물은 극중 화자가 평가한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말하자면 작가의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딘가 거림칙하긴 하지만 부정하기도 힘든 그런 단순함입니다. 이런 이분법은 확실히 각 캐릭터를 빠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독자들은 캐릭터가 많아지면 누가 좋은 사람이었지 헷갈리게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문화를 글 속에 녹여내는 데에도 천재적인 것 같습니다. T.S.엘리엇을 주인공의 멘토로 만들고 에밀리 디킨슨으로 연애를 합니다. 영화나 책에서 본 것들을 대사로 만들어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활용하는데 그런 문장들은 탁월합니다.


두 권의 책은 마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처럼 인생의 업앤다운의 진폭이 큽니다. 혹은 반대로 영화를 책으로 옮긴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묘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그렇게 느꼈을까요? 그동안 그의 책은 영화로도 몇 편 만들어졌지만 책보다 좋은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빅 픽처 + 템테이션
국내도서
저자 : 더글라스 케네디(Douglas Kennedy) / 조동섭역
출판 : 밝은세상 201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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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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