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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요즘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이 읽히고 있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소설이고(그는 자신의 책은 읽지 않았어도 [위대한 개츠비]를 두 번 읽은 사람과는 무조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또 김영하도 자신이 스스로 번역할 정도로(비록 그의 번역에 대한 평가는 '원문을 훼손해 자신의 글로 만들었다'는 평과 '읽기 쉽게 옮겼다'는 평까지 극단적이지만) 이 소설의 애독자임을 수시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도 아주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드러낼 것과 드러내지 않아야 할 것을 영리하게 조합해낸 이 책의 작법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250페이지 분량의 경장편인 이 소설은 추악한 자본주의 이면의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위대한 개츠비]가 다시 스크린으로 환생한 데에는 1922년 뉴욕과 지금의 시대가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 아마도 큰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공황 전의 흥청망청 시대, 금주법 뒤에서 밀주를 통해 떼돈을 번 졸부들의 도시는 지금 2008년 이후 반복되고 있는 경제위기를 겪기 전 뉴욕과 비슷해 보입니다. 미래의 우리가 1922년 이후 1929년 대공황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2008년 이후의 우리는 2008년 이전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 그리움은 개츠비라는 남자의 순정을 통해 나타나고 있지만 사실은 신나는 파티에 대한 갈망일 것입니다. 대부분 회고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 시절에 잘 놀았다" 보다는 "정말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지"가 더 그럴 듯하게 다가오는 법이죠. 원작 소설이 젤다를 향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바탕한 이야기라는 점은 그런 추정에 명분을 더해 줍니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에서는 화자인 닉 캐러웨이를 F. 스콧 피츠제럴드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또 영화는 1922년이 배경이면서도 마치 현대로 옮겨온 듯 개츠비 저택의 파티를 나이트클럽의 댄스파티처럼 보여주고, 재즈에 랩, 힙합 등 다양한 음악을 리믹스하고, 개츠비가 모는 노란색 오픈카를 마치 굉음이 나는 배트카처럼 시대를 초월해 새롭게 그렸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동안 다섯 번 정도 영화화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평가가 좋았던 영화는 없었습니다. 솜씨 좋은 감독이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대부분의 작가들은 위대한 원작을 건드리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만큼 승산 없는 게임이기도 하고, 또 원작의 유명세에 기대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 더 보람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릅니다. 감독이 바즈 루어만입니다. '바즈마크'라는 제작사를 차려 자신만의 인장이 확실하게 찍힌 영화들을 내놓고 있는 감독. <로미오+줄리엣> <물랑 루즈> 등 당대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그동안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인정받아 왔습니다.


영화의 첫 인상은 소설을 그대로 옮겼는데 그 안에 확실한 '바즈마크'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볼거리로 장식했지만 전반적으로 소설의 인물과 분위기와 느낌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책에서 모호했던 것들을 확실하게 정리했고 화려하게 묘사되었던 것들을 더 꼼꼼하고 화려하게 부풀려서 판타스틱하게 만들었습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개츠비가 죽는 방식인데 사실 이 부분은 원작과 달라서 조금 어리둥절 했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원작에서도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확실히 나와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는 명쾌하게 소설에서 모호했던 것들을 설명합니다.


영화는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한 그린라이트로 시작합니다. 웨스트엔드에서 이스트엔드를 바라보는 개츠비의 시선에 꽂힌 그린라이트는 안경 간판과 함께 책에서처럼 영화에서도 중요한 상징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불빛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영화는 관객이 최면에 빠져들기를 기다립니다. 바즈 루어만의 세계임을 알리는 강한 비트의 음악은 두근거리는 초대장입니다. 다음 장면에선 마치 <로미오+줄리엣>에서 몬태규와 캐플릿 두 가문을 소개했던 것처럼 웨스트엔드의 개츠비 저택과 이스트엔드 뷰캐넌 저택의 소개가 이어지고 1922년 뉴욕의 시대상황이 자료화면과 함께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조금 의외였는데 지금까지 바즈 루어만 영화가 시대를 그대로 고증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고, 책에서도 시대 배경이 자세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렇게 소설에 나오지 않는 부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화자인 닉은 처음엔 '장소'에 대한 글을 쓰다가 결국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글을 끝맺습니다. 영화도 1922년 뉴욕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개츠비의 죽음으로 막을 내립니다. 화려했던 시절은 결국 이기적인 마음만을 남기고 중심에 있던 한 남자 개츠비를 통해서만 기억될 뿐입니다.


소설에서 개츠비는 두번째 파트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1부에서는 뷰캐넌 집에서 개츠비의 이름만 오르내릴 뿐인데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만 증폭되죠. 이런 설정을 영화는 더 잘 살려낸 것 같습니다. 파티에서 자신을 개츠비라고 소개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등장은 극적이었습니다. 책을 읽은 관객이나 읽지 않은 관객이나 모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첫 등장인데 그의 아우라가 결국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이 장면의 강한 인상은 중요하죠. 데이지, 톰 뷰캐넌, 닉 캐러웨이, 조던 베이커, 머틀, 조지 윌슨 등 캐스팅도 흠잡을 데 없어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배역과 잘 어울렸습니다. 다만 마이어 울프심은 더 우락부락하고 괴팍하게 생긴 남자를 예상했는데 그 역할을 맡은 아미타브 바흐찬은 생각보다는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더군요. 그러나 비중을 많이 줄여서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습니다.


디카프리오와 캐리 멀리건이 셔츠 놀이를 하며 즐겁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서 <로미오+줄리엣>의 어항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당시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의 키스가 그 자체로 순수해 보였다면 이번에는 나이 든 디카프리오가 캐리 멀리건의 입술을 훔치는 모습에서 순수함 보다는 불륜 느낌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로미오+줄리엣>으로부터 벌써 17년이 흘렀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겠죠. 영화가 강조하는 메시지처럼 '과거는 반복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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