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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을 뒤늦게 보았다. 사실 별로 끌리지 않았지만 1280만명(<괴물> <도둑들>에 이어 역대 3위)이나 본 이 신파 코미디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밝고 화사한 화면 위에 펼쳐지는 웃음과 눈물샘 가득한 스토리. 사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그동안의 한국영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 과연 무엇이 <7번방의 선물>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1.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세일러문 가방이다. 그 가방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생겼다. 사실 마지막에 이용구(류승룡)가 세일러문 가방을 예승(갈소원)에게 생일선물로 주는 장면은 감독의 악취미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일러문에 집착하고 있다. 92년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97년에 KBS에서 방영한 이 시리즈의 특징은 세일러문 우사기 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 모두 변신해서 악당과 싸운다는 점. 그들은 단순히 변신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막강한 전투력으로 적을 쓰러뜨린다.


세일러문의 이런 정신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예승이 세일러문이라면 감방의 동료들은 세일러문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합심해서 용구를 돕는다. 흉악범들이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친구들에게 관객들은 동질감을 느낀다. 흉악범보다 더 나쁜 구조적인 모순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당으로 대표되는 경찰청장은 동정심을 유발할 수도 있는 인물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용구를 구타하는 장면에서 모든 인심을 잃고 만다. 선과 악의 뚜렷한 대비는 <세일러문>처럼 <7번방의 선물>을 고민할 필요 없는 선악 구조의 이야기로 회귀하게 만들었다.


2. 사회 구조적 모순의 판타지


<도가니> <26년> <부러진 화살> 등 작년 흥행한 영화들의 경향과 이 영화는 연장선상에 있다. 서슬퍼런 MB정권의 말기에 쏟아진 이 영화들은 모두 소재는 다르지만 '정의의 회복'을 외치고 있었다.


<7번방의 선물>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불쌍한 사람이 법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에 의해'라는 부분이다. 그저 불쌍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는 영화는 많다. 그러나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는 법에 의해 사형당한다. 그것도 인혁당의 죽음 만큼이나 재빠른 사형 집행이다. 경찰, 검찰, 법원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법치국가라면 도대체 이런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지금 이런 이야기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믿고 있다는 뜻이다. 연일 터지고 있는 경찰, 검찰, 법원의 구조적 모순들로 인해 어느새 한국 사회엔 이들 집단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게 됐고 그 결과 법 집행자들보다 감방에 갇힌 흉악범들이 더 긍정적으로 그려지게 됐다.


물론 개연성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더 많다. 미결수인 용구는 흉악범들과 같은 교도소를 쓸 수 없고 구치소에 수감되어야 하며, 정신지체자인 만큼 사형보다는 정신병원에 수감될 것이다. 감방 안에 유리창이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승이가 박스를 타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도 물론 현실성은 없다. 그러나 감방 내부를 밝고 화사하게 그린 순간부터 관객은 이것이 판타지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기에 큰 무리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감옥 안에서 죄수들의 코믹한 안무와 함께 뮤지컬이 펼쳐지기를 바랐지만 아마 그 정도까지 나아갔다면 오히려 한국인들에게는 거부감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박스 안에 숨은 예승이 카트를 타고 감방을 넘나드는 장면에선 <이티>가 떠올랐다. 머리를 빼꼼 들고 밖을 올려다보며 감탄사를 내뱉는 장면도 닮았다. 용구와 예승이 기구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이티>가 자전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한편 <업 Up>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철조망에 걸린 풍선의 상징성이 이 영화를 조금 더 은유적으로 보이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판타지는 판타지이되 선을 넘지 않는 판타지. 철조망에 걸린 풍선 같은 판타지. 적당한 은유가 상징성을 만들어낸 판타지. 리얼리티에 민감한 한국인들은 다행히도 이 정도의 판타지에는 열려 있다. 아마도 부녀가 기구를 탄 채 멀리 날아갔다면 관객들은 더 허탈했을 지도 모른다.



3. 가족을 통해 3040을 울리다


관객들은 영화가 억지로 울린다는 걸 알면서도 용구와 예승이 면회하는 장면부터 눈물을 글썽인다. 사실 새로운 장치는 전혀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장난스러운 아버지가 있고, <아이 앰 샘>처럼 어른스러운 딸이 있고, <교도소 월드컵>처럼 흉악범인줄 알았던 그들의 마음 한켠에 순수함이 있을 뿐이다.


교도소 안에서는 죄수와 간수 모두 한마음으로 용구의 편이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데 박상면이 두번의 사고를 치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용구가 방장(오달수)과 교도소 과장(정진영)을 잇따라 구해주면서 자기 편으로 만든다. 박상면이란 한 인물을 통해서만 관계를 풀어간다는 점은 너무 편리해 보여 아쉽다. 처음에 깐깐해보였던 교도소 과장이 용구에게 급격하게 돌아서는 과정은 다소 의아했는데 사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대개 악역은 교도소 관리인이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악역을 경찰청장과 국선변호사에게 몰아버리고 교도소 안의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든다. 이런 확실한 이분법은 영화를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관객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 쉽게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에게 감정이입할까? 같이 살고 싶어 제발 잡아가달라고 부탁하는 딸과 가족보다 끈끈한 친구들. 명백히 딸바보인 아빠와 유괴로 아들을 잃은 과장의 동병상련. 이런 관계는 최근 극장 관객의 주류로 올라선 30~40대 관객을 유인할 요소가 된다.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1997>이 이들의 첫사랑을 자극했다면 같은 1997년을 배경으로 한 <7번방의 선물>의 딸바보 순애보는 어느새 비슷한 또래의 딸을 키우는 세대가 된 이들의 부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 이미 사회에서 한두 번 쓴맛을 봤고,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혀 좌절을 경험해봤을 이들에게 이용구가 겪는 부조리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물론 "나는 용구보다는 낫잖아"라는 자기위안을 심어준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가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영화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3040 세대들에게 이 영화가 자극하는 눈물샘은 많은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이미 세상은 많이 변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어쩌면 편리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많이 멀어졌다. 즉, 이미 한두 번 좌절했던 그들에게 지금은 함께 투쟁하자며 나서는 시대라기 보단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처럼 공감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얻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서 <7번방의 선물>은 1280만명에게 '좋아요'를 받았다. 영화가 아무리 그저 그렇고 뻔한 신파성 최루 코미디라고 할지라도 1280만명을 극장으로 몰고 간 돌풍의 이유는 여기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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