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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이미 10편의 영화가 제작된 <스타트렉> 시리즈의 리부트인 <스타트렉 더 비기닝> 이후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소위 스타트렉 마니아라는 '트레키'를 양산해낸 이 SF시리즈는 유독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한국에서 SF는 하나의 장르로서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같은 캐릭터 무비로서 또는 <아바타>처럼 기술의 발전을 상징하는 특수효과의 스펙터클로서 또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대중적인 스릴러의 서브 플롯으로서만 인기를 모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타트렉>은 그에 비하면 약간 하드한 SF죠. 저는 <스타트렉>에 대해 뒤늦게 아는 척하고 싶지는 않지만,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보여주는 미래상이나 캐릭터에 대해서는 몇 글자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만큼 근래에 본 SF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256년 런던 샌프란시스코 목성 크로노스


배경은 2256년입니다. 타워브릿지가 멀리 보이고 전경에는 멋진 고층빌딩이 늘어서 있는 런던이 등장합니다. 병원의 침대는 무중력 상태인 듯 붕 떠 있어서 간호사들이 손쉽게 나를 수 있고 환자의 건강상태를 한 눈에 표시해주는 그래프 모니터 등은 미래사회답게 세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40년 후인데도 불치병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조금 납득하기 힘들더군요.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파악되면 미래 의학기술은 질병을 정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존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런던의 기록원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거래를 합니다. 그 거래란 불치병에 걸린 딸을 치료해주는 댓가로 기록원에서 자료를 전송하고 건물을 폭파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무한재생 능력을 가진 존은 헌혈 한 번만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러 사람의 목숨과 맞바꿉니다. 이 악한 행동은 그러나 영화 속에서 상대적으로 악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엄청난 자살폭탄테러임에도 불구하고 부성애와 맞물려서인지 해리슨의 악이 두드러지지 않았어요. 그 기록원이 사실 스타플릿의 비밀 연구기관인 섹션31이었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을 뿐이죠. 그 직원은 반지에 폭탄을 담아 보안검색을 통과했는데 미래에는 반지 한 개만으로도 초고층빌딩을 날려버릴 정도의 테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쉽게 넘어간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재미있는 설정은 좌표를 통해 공간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칸이라고 본명을 밝히는 (<스타트렉 다크니스> 자체가 <스타트렉 2: 칸의 역습>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존은 23.17.46.11이라는 숫자를 남기는데 꼭 IP 주소 같은 이 네 숫자들은 우주의 좌표입니다. 찍으면 워프를 이용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저 숫자의 좌표로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잘린 뒤 샌프란시스코의 피어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스코티(사이먼 페그)가 직접 가보는데 그곳은 목성이었죠. 그런데 목성에서 무얼 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아서 어리둥절했습니다.


함장들이 모인 원탁회의에 전투기를 몰고 와 미사일을 쏘아댄 칸은 크로노스 행성으로 도망가는데 Kronos는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을 지배하는 신에서 따온 이름이죠. 칸이 300년의 시간을 버텨 온 냉동인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명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던 크로노스 행성에 왜 클링온들이 있는 것인지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네요. 이 시리즈의 다음 편에서 인간과 크로노스 행성에 있는 클링온 종족들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궁금증들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영화의 시작은 온통 빨간색인 니비루 행성에서 무언가를 훔쳐 원주민들에게 쫓겨 도망가는 커크를 보여줍니다. 마치 원시 세계를 탐험하던 인디아나 존스가 원주민들에게 쫓기는 <레이더스>의 첫 장면과 비슷합니다. 다양한 문명을 보여주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들은 대략 이 정도의 내러티브만을 허용하나 봅니다.



커크와 스팍의 성장 드라마


영화 중반에 잠깐 함장을 맡았던 술루(존 조)는 영화 마지막에서 커크(크리스 파인)에게 자리를 내주며 "함장 자리가 매력적이긴 하죠"라고 말합니다. 그 대사를 굳이 넣어야 했을 만큼 이 영화는 함장 자격에 관한 영화입니다. 커크가 함장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라고 할까요. 영화 초반 외계 행성의 원주민들에게 엔터프라이즈호를 노출해 스타플릿 규칙(관찰만 할 뿐 개입해서는 안 된다)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된 커크는 결국 1등 항해사로 강등당합니다. 그러나 존 해리슨의 테러사건이 벌어져 파이크 선장(브루스 그린우드)이 죽자 곧바로 함장으로 복귀합니다. 이렇게 되고보니 도입부의 이 짧은 과정이 무엇을 노린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굳이 강등시켰다가 복귀시킴으로서 영화의 플롯은 함장으로서의 커크를 테스트합니다. 미래에서는 영웅 함장의 권위가 당연한 커크이지만 그의 풋내기 시절을 그리고 있는 <스타트렉 더 비기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커크가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해가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똑같은 맥락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에 치우친 스팍(재커리 퀸토) 역시 파이크와 커크로부터 감정을 이해하고 드러내는 방법을 습득합니다. 마치 태권브이 철이의 헬멧을 대고 자른 것처럼 앞머리를 일자로 만든 헤어스타일에 뾰족귀, V자형 굵은 눈썹이 트레이드 마크인 스팍은 칸과 논리싸움을 벌이다가 그를 속입니다. 칸은 스팍이 속임수를 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데 이 플롯은 이성적인 스팍의 캐릭터가 점점 변화하도록 만들어놓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즉, 스팍이 시종일관 논리적인 인물이었거나 스팍의 특징을 칸이 몰랐다면 이러한 속임수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겠죠. 스팍을 변화시킨 것은 커크와의 우정과 우후라(조 샐다나)와의 사랑이었습니다.


커크는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황했고, 스팍은 벌칸족 아버지와 지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습니다. 감정이 앞서는 커크와 이성이 앞서는 스팍은 전혀 다른 캐릭터지만 티격태격하는 과정 속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자각합니다. 그 과정이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의 주된 테마입니다. 기존 <스타트렉> 시리즈의 의사 본즈 비중을 확 줄이면서 얻어낸 것은 두 사람이 각각 대변하고 있는 감성과 이성의 균형이죠. 결국 그 균형이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칸의 파워에 대적해 승리합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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