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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고백하고 글을 시작해야겠다. 글을 쓰기 전에 여기저기 영화평들을 읽어봤다. 다들 실망하고 있었다. 올리버 스톤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이 영화를 폄훼하는 것일까? 만듦새가 이상한가? 정말 훌륭하지 않나? 편집은 감탄스럽고 촬영이나 연기 모두 엑설런트급이다. 주제가 중구난방이라 뭘 말하는 지 모르겠다고? 내가 볼 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목숨을 건 사랑 이야기에 부패한 세상 이야기가 약간 섞인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이라크니 뭐니 작은 디테일에서 뭘 자꾸 읽어내려고 하니 문제가 커보이는 것 아닌가?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내일을 향해 쏴라>와 비교해 보라.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그리고 선댄스의 애인 에타. 한 남자는 강하고 한 남자는 유약하다. 두 남자는 볼리비아의 은행을 털었지만 <파괴자들>의 두 남자는 멕시코 카르텔을 턴다. 그리고 엔딩은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드라마틱한 엔딩에서 멈췄다가 다시 리와인드해서 사실은 이랬다고 보여준다. 마치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 코너에서 황현희가 현실은 이렇습니다, 하고 보여주는 것 같은 패러디. 두 남자의 죽음에 상심하며 감상에 빠져있을 때쯤 "넌 이 영화를 보기에는 너무 약해" 라고 말하는 듯한 리와인드.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을 견딜 수 있다면, 올리버 스톤의 전작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에 비하면 백만 배쯤 잘 만들었다.


야만(Savages)이라는 건 뭘까? 영화 속에서 나오는 야만의 정의는 잔혹하고 손상됨, 원시 형태로의 퇴행이다. 그러나 그곳은 언젠가 결국 우리 모두 돌아가야할 곳이다. 완벽해 보이는 현대인의 삶은 아주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조지 해리슨의 Here comes the sun을 히잡을 쓰고 노래하는 말레이시아 출신 가수 유나(Yuna)가 리메이크한 곡이 흘러나오는 엔딩은 야만의 정의에 걸맞는 영상을 보여준다. 매혹적이고 몽환적인 강렬함이 살아 있다.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의 레이블 '애플'에 출근해서 노래하고 싸인하는 일이 마치 비즈니스맨처럼 느껴져서 에릭 클랩튼에게 갔고 그곳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Here comes the sun을 작곡했다고 한다. 매일 반복되는 삶에서 느끼는 권태. 그러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이런 것들이 우리를 인생이라는 모험으로 이끈다.


촌(테일러 키취 분)과 벤(애론 테일러-존슨 분)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사이다. 벤은 버클리대학에서 경영학과 식물학을 복수전공했고 그 사이에 촌은 입대해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다. 어느날 캘리포니아 라쿠나 비치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던 그들은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신이 7일간 머물다가 8일째 쫓겨났다는 지상 낙원 같은 그곳에서 그들만의 벤처기업이 시작됐고 MS나 애플처럼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 캘리포니아 최대의 마리화나 재배지가 탄생한 것이다. 두 남자 사이에는 오필리어(블레이크 라이블리 분)라는 여자가 있다. 영화의 화자이기도 한 그녀는 햄릿의 오필리어처럼 한 남자에 종속되는 것을 싫어해 자신의 이름을 O라고 쓴다. 그녀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처럼, 혹은 <쥴 앤 짐>의 잔느 모로처럼 두 남자를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손예진이나 잔느 모로의 두 남자들은 서로를 질투했지만 촌과 벤은 게이처럼 사이가 좋다는 것. 과연 이들의 완벽한 트라이앵글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


그러나 천국에서 경험하는 지옥 이야기는 마약 하면 빠지지 않는 멕시코의 범죄 카르텔이 영화에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바하 카르텔의 보스 엘레나(셀마 헤이엑 분)는 두 남자에게 자신의 카르텔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고 두 남자가 이를 거부하자 O를 납치한다. 이제 두 남자는 O를 구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인다. 바하 카르텔의 돈을 훔치고, 엘레나의 딸을 납치한다. 야만적인 방식에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되갚아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하 카르텔의 경쟁자 아줄, 두 조직 사이에서 배를 갈아타는 라도(베니치오 델 토로 분), 부패한 경찰 데니스(존 트라볼타 분) 등이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물고 물리는 게임처럼 변해간다.


2010년 뉴욕타임스 선정 소설 탑10에 선정된 돈 윈슬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는데 원작 소설은 거대 마약조직과 두 남자와의 싸움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불가능한 싸움으로 과장되고 비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가 직접 감독에게 책을 보냈고 올리버 스톤이 의욕을 보이면서 결국 그의 25번째 영화가 완성됐다. 소재면에서 어쩌면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의 이전 작품들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낯설게 느껴진다. 멕시코와 베니치오 델 토로가 등장해서 그런지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보면 잘 만들어진 범죄 액션과 모험극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라지고 뿔뿔이 흩어져버린 세 사람을 통해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나레이션을 듣게 될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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