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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슴벌레를 찾아주세요." "불륜 부인을 찾아주세요."

사소하고 자잘한 일만 맡던 키 작고 볼품없는 탐정 영건. 그는 셜록 홈즈처럼 멋진 바바리를 입은 것도 아니고, 엘러리 퀸처럼 헐렁한 탐정모자를 쓴 것도 아니고, 아사미 마츠히코처럼 부잣집 훈남도 아니고, 코난처럼 풋풋하지도 않으며, 에르큘 푸아로처럼 멋진 콧수염을 기른 것도 아니다. 그는 차라리 초기 아케치 코로로처럼 부석거리는 머리를 하고 담배가게 2층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찌질남에 가깝다. 그에게는 왓슨 같은 조력자 대신 그를 부리는 고용녀가 있다. 의뢰인이 오면 '비서님'으로 통용되는 그녀는 댄서가 꿈이었지만 큰 빚을 지고 탐정사무소를 열었다. 그래서 영건에게 돈 되는 일만 하라고 구박한다. 이쯤되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안쓰러운 탐정이 아닐까.


어느날 그에게 한 여인이 찾아온다. KBS 아나운서 출신 최송현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했는데 겸제정선미술관의 고고학 박사인 그녀는 한 남자를 죽여달라고 의뢰한다. 그 남자를 찾을 유일한 단서는 사진에 담긴 시계. 그러나 그녀는 납치된 뒤 영건이 보는 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어 제목이 Young Gun in the Time인 것처럼 이 영화에는 시계와 총이 등장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탐정과 미모의 의뢰인 간의 사랑(?)이 극을 끌고가는 모티프다. 여기에 정십이면체 나무를 돌리면 타임슬립이 이루어진다는 설정이 더해져 이야기에 재미를 더했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한 공식이고 허점이 많은 스토리지만 이 영화의 승부수는 이야기 구성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보다는 영상 그 자체에 있다. 감독 오영두와 배우 홍영근, 하은정 등이 만든 제작사 키노 망고스틴의 전작 <에일리언 비키니>와 달리 2.35:1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썼을 때 뭔가 있겠구나 기대했는데 역시 <영건 탐정사무소>는 놀랄 만큼 효율적인 액션 씬을 보여준다. 화면 분할은 기본이고 여러 도구와 타임슬립을 이용해서 기발한 액션 장면을 완성했다. 참 사소해 보이지만 탐정은 탐정인 영건. 그의 최대의 무기는 무대포 정신이다. 쫄지 않고 악당에 맞서 싸운다. 영건의 왼쪽 손은 의수인데 그 손이 총으로 변하고, 악당 틱택토(배용근)의 지팡이에서 칼이 나오며, 그의 부하는 줄자를 무기로 사용한다. 의수 총은 독립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특수효과로 만들어졌고, 줄자가 무기로 쓰이는 장면은 무릎을 칠 만큼 위협적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강점이 화면이라고?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제작비가 겨우 5천만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는 배우들이 몸에 와이어를 묶고 날아다니거나 차량이 부딪히거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은 없다. 혹은 격투 씬에서도 칼이 살을 통과하는 장면이나 시계가 눈에 박히는 장면을 보여주는 일도 없다. 그런 장면들은 죄다 암시일 뿐이다. 몸을 사리지 않고 잘 짜여진 합과 암시 이후 배우들의 전력질주만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김백찬의 둥둥거리는 음악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전작 <에일리언 비키니>의 대부분 장면이 감독인 오영두와 제작자 장윤정 부부의 금호동 옥탑방과 골목길에서 촬영된 것과 달리 이번 영화는 좀더 넓은 곳으로 나왔다. 박물관, 골동품 가게, 낡은 사무실, 큰 길이 주요 무대다. 감독은 속편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김승룡 박사(조승연)가 영건의 존재를 알아내면서 제법 그럴듯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시작부터 일본 사람의 이름 여럿이 크레딧에 올라간다. 그중에는 탐정영화를 만들어왔고 실제로 사설탐정이기도 한 하야시 카이조도 있다. 오영두 감독이 <에일리언 비키니>로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만났던 하야시 카이조 감독의 투자 제안으로 영화가 기획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의 킹레코드사가 제작사로 이름을 올린 것도 인상적이다.


최근 만난 한국 독립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영건 탐정사무소>. 이 영화의 묘미는 한 컷 한 컷을 무척 꼼꼼하게 만들었다는 게 눈에 보인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가 비약적임에도 불구하고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힘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에일리언 비키니>가 치기 어린 장난처럼 보여도 결국 한 가지 디테일에 집중함으로서 인상적인 평가를 얻어낸 작품이라면 <영건 탐정사무소>는 키노 망고스틴의 영화가 대중적인 상업영화로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통과의례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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