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작부터 강렬하다. 인체를 해부해 내장을 꺼내는 파우스트. 법학, 의학, 철학, 신학까지 공부했지만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닥터 파우스트. 성경에 써 있는 문장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런데 말씀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태초에 생각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는 인간의 근원을 알고 싶어 인체를 해부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본다고 인간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파우스트는 전당포 주인 뮐러를 찾아간다. 몸이 이상하게 비대하고 살을 겹겹이 입고 있는 듯한 남자. 남자의 상징이 뒤에 달려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남자. 뮐러는 파우스트와 붙어 다니며 파우스트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파우스트의 고민은 다름 아닌 신비한 처녀 마가레테. 그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영혼 따위는 팔아도 상관 없다.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는 괴테의 필생의 역작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인물들만 빌려 왔을 뿐 원작과 전혀 다른 영화다. 지식을 갈구하는 자신의 괴로움을 인류를 위한 희생으로 승화시킨 괴테의 [파우스트]가 결국 20세기 독재자들의 자의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파우스트를 절대적 대가에서 격하시켜 하나의 남자로 그려낸 것이 이 영화다. 덕분에 원작의 거룩한 주제는 마치 홍상수 영화에서처럼 한 여자에 집착하는 남자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시적인 영상과 괴테에서 따온 대사들로 인해 영화는 무척 고풍스럽게 보인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을 결국은 쾌락 앞에 굴복하는 남자로 재해석했다고 할까. 그만큼 여주인공이 예쁘긴 하다. 클로즈업에서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는 타이틀부터 감독 스스로 권력 4부작 중 마지막 영화라고 소개하고 있다. 앞의 세 편은 히틀러를 다룬 <몰로흐>, 레닌을 다룬 <타우르스>, 히로히토를 다룬 <더 선>이다. 20세기 독재자들의 마지막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이 영화들이 3부작이 아니라 <파우스트>와 함께 4부작이 된 이유는 파우스트가 이 독재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종의 선구자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감독의 자의적인 4부작인 셈인데 히틀러, 레닌, 히로히토가 과연 파우스트처럼 각자의 과잉 신념에 갇혀 영혼을 판 것인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겠다.


1.37:1의 옛날 브라운관 TV 같은 고전적인 화면비율에 카메라에 거울을 달았는지 일그러진 영상, 그리고 몽환적인 필터가 주는 효과는 화사하면서 때론 창백하다. 스토리는 뚝뚝 끊기는 듯하지만 그것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인물들은 중세 유럽의 풍속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 생생한데 한편으로는 <데카메론> 같은 파졸리니 영화처럼 어수선함 속에 집중을 요하는 면도 있다. 메피스토 대신 전당포 주인 뮐러가 우스꽝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처럼 읽혀 재밌고, 파우스트의 제자 바그너가 만든 난쟁이 얼굴, 자궁에서 나온 달걀 같은 독특한 상상력은 알렉산더 소쿠로프 영화를 예사롭지 않게 보여주는 장치들이다. 예전에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르다. 시적이고 몽환적인 회화라기보다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단편소설 같고 피터 브뤼겔의 판화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은 파우스트와 마가레테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이었다. 마가레테는 자신의 오빠를 죽였는지 묻기 위해 파우스트의 집을 찾는다. 마가레테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파우스트는 그녀가 집으로 오자 반가운 마음에 안절부절한다. 마가레테 역시 마음이 흔들려 직접 묻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녀는 과연 그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그때 두 사람이 마주보는 장면의 화사하고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2~3분 가량 이어진다. 아무런 대사가 없어도 두 사람의 심리가 극적으로 전달되는 놀라운 순간이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서 파우스트가 뮐러에게 영혼을 파는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한 뒤 다시 만난 파우스트와 마가레테. 두 사람은 나란히 강물에 빠지고 뒤이어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장면에서 마가레테의 육체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창백한 푸른색 역시 아주 인상적이다. 영혼을 판 댓가를 똑똑히 보라는 듯 역시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되어 있다.



PS)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이대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를 처음 찾아갔는데 이 영화를 필름으로 상영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 원래부터 디지털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IMDB를 검색해봤는데 아리캠에 35mm 필름이었다. 영상미 때문에 필름으로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