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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아니면 사실 이 영화를 100% 흡수하기 쉽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과 관련된 용어와 의식이 배경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의 세계도 결국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느릿느릿 진행되다가 페이소스 가득한 반전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리듬감에 익숙해지면 다른 코엔 형제의 영화들처럼 피식 웃으면서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시리어스 맨>이다.


영화는 (아마도) 탈무드의 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눈오는 날 힘들게 귀가한 남편. 그는 부인에게 자신을 도와준 한 노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노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부인은 멈칫한다. 3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노인이 들어온다. 남편의 초대를 받아서 죽이나 한그릇 먹고 가겠다는 것이다. 부인은 노인이 악령이라고 의심하고 노인은 아니라고 웃으며 반박한다. 성급한 부인은 들고 있던 얼음송곳으로 노인의 가슴을 찌른다. 노인은 피를 흘리며 집을 떠나 눈보라 치는 길을 나선다. 그는 악령이었을까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배경은 라디오에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1960년대 미국 중부지방의 한 시골마을이다. 테뉴어 심사를 앞둔 물리학 교수 로렌스 래리 고프닉(마이클 스털바그 분).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 이 남자에게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진다. 부인은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라고 말하고, 한국에서 온 학생은 성적을 고쳐달라고 뇌물을 놓고 가더니 며칠 뒤에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말한다. 얹혀 살다가 모텔까지 따라온 동생은 골칫덩어리이고, 아들 딸들은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계속 꼬여만 가는 삶.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해답을 찾고 싶어서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가지만 찾아온 답변은 "So What?" 인생은 신이 만들어둔 것이라지만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삶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심각해지지 말고 심플해지라는 충고도 아니고 묵묵히 받아들이라는 조언도 아니다. 그저 삶에서 이런 일들은 토네이도처럼 주위의 모든 것들을 휩쓸고 지나가 버린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몇 번 고민하다가 그냥 잊고 다시 살아가게 된다.


래리는 영화 초반에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가르친다. 과연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칠판 가득히 수식을 써넣은 그는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증명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 불확실한 것을 증명한다고? 어쩌면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상태가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와 비슷한 것 같다. 고전역학자들은 우리가 그것을 확인하든 안 하든 고양이는 죽었거나 안 죽었거나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반면, 양자역학자들은 관측이 결과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이지만 고양이의 생사는 문을 열어본 순간 결정된다는 것이다. 진지한 남자 래리의 삶도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가 확인을 하려 할 때에만 의미를 지닐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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