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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묻고 정치 컨설팅 그룹 MIN의 박성민 대표가 답한 대담집인 [정치의 몰락]은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라는 부제처럼 지금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변의 의미를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은 "지금 정치가 몰락하고 있다"는 서두로 시작한다. 박 대표의 말대로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에서 탄생한 정당과 이념은 디지털 혁명 시대에 그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다." 그는 "1987년에 노태우는 다수당의 다수파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5년 뒤에 김영삼은 다수당의 소수파로 당선되었다. 김대중은 소수당의 다수파로 이기더니 노무현은 소수당의 소수파로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안철수는 그냥 '개인'일 뿐인데 정당과 정치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21세기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하는 시대가 되면서 거대 정당의 존재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12년 대한민국은 정치의 부재 속에서 정치를 갈망하고 있고 지도자의 부재 속에서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그것이 바로 지금 사람들이 정치에 몰입하고 있는 이유라고 보았다.


박 대표는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전환점으로 자판기 커피와 에스프레소를 들었다. 빠르게 늘어난 커피전문점 만큼이나 지친 삶에서 에스프레소로 상징되는 문화를 찾는 진보적인 세대가 늘어났고 이는 이전의 배고픔 속에서 성장에 전력해왔던 자판기 세대로 상징되는 보수와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촌스러운 것은 못참는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사리사욕을 위한 권력남용과 김제동, 김미화 퇴출 등을 비롯한 비이성적인 사태를 보면서 자신을 보수라고 말하던 젊은이들이 급격하게 줄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욕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머리는 보수인데 가슴은 진보가 된 젊은이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다. 강 기자는 이들을 "기성문화에 저항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주류가 되고 싶어하는 힙스터 세대"라고 지칭하는데 이들에게 이명박과 새누리당의 이미지는 '촌스럽다'는 것이다. 소위 '강남좌파'라고 불리우는 계층의 탄생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경쟁에서의 성취에 누구보다 집착하면서도 저항의 제스처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여기는 식이다. 이것이 최근 몇 년 사이에 20~40대가 진보적으로 변한 이유다.


박 대표는 2011년 10월 26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은 한국정치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60년간 이어져온 보수 우위의 시대가 끝나고 보수와 진보가 대치하게 될 새로운 국면 진입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역사학자 E. H. 카가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말했듯이 오세훈이 걷어차버린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의 당론도 아니었고 보수언론의 주장도 아니었지만 오세훈이 단독 결정해버렸고, 그로 인해 보수가 총결집해서 돌파하려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조중동, 기독교, 권력기관 등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힘의 한계가 드러났고 결과적으로 시대의 변화라는 필연을 위한 우연처럼 작동했다.


저자들은 이 날을 20세기 말에 나온 이문열의 단편소설 제목처럼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전야, 혹은 길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시대의 마지막 밤"이라는 표현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앞으로의 전개상황에 따라 지금이 새 시대의 전야일 수도 있고 혹은 그저 암흑기를 앞둔 마지막 축제의 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가 이 날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25년마다 젊은 세대가 역사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의 이기붕 부통령 부정선거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일어나면서 4.19 혁명이 발생했고, 그로부터 25년 뒤인 1985년 2월 12일 총선에서는 김영삼, 김대중의 신한민주당 돌풍이 있었다. 재야단체와 학생들이 똘똘 뭉친 가운데 결국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다시 25년 뒤인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2년전 촛불시위때 뭉쳤던 젊은 세대가 투표장으로 몰려나왔고 이 흐름이 2011년 박원순 시장을 만들었다.


1960년의 흥분은 이듬해 5.16 쿠데타로 인해 시대의 마지막 밤으로 종결됐지만 1985년의 시끄러움은 새 시대의 전야였다. 제 6공화국을 이끈 '87년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한국에서 군인, 기업인 누구든 투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박 대표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비가역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기번호표 같은 새로운 체제이다. 은행이나 관공서 등에 대기번호표가 등장한 이후 새치기가 만연하던 예전의 줄서기 체제가 사라졌다. 지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87년 체제 역시 대통령 직선제와 평화적 정권교체 보장으로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체제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새 시대의 전야일까 혹은 대안을 준비하지 못한 시끌벅적한 마지막 밤일까. 다시는 이명박 정부 같은 퇴행적인 체제가 나타날 수 없도록, 또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가 종언할 수 있도록 새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박 대표는 "그것이 2012년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종언해야 할 과거와 비가역적인 체제란 어떤 체제일까. 그 전에 박 대표가 진단하는 정치의 본질과 87년 체제 이후 한국 정치의 상황을 살펴보자.


박 대표는 "정치의 본질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어서 대중이 미래를 예측하도록 가시거리를 확보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면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것은 전형적인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라고 말한다. "기업에서는 51%의 지분을 가지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정치에서 그런 식이면 정치가 존재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CEO 출신 정치인들이 기업과 정치를 착각하고 그로 인해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못견뎌한다. 그래서 성공한 기업가라고 해도 정치에서는 실패하고 만다"고 강조한다.


또 한국정치에 갈등이 만연한 이유로 승복의 문화가 부족한 것을 꼬집으며 '선출된 권력의 정통성 부족'에서 원인을 찾았다. 87년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과반수 득표로 당선된 적이 없다. 노무현이 48.9%로 가장 높은 수치의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과반수는 아니었다. 노태우는 36.6% 김대중은 40.3% 김영삼은 42%로 당선되었다. 이렇게 절반도 안되는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은 정통성의 기반이 약하다보니 정작 당선자에 투표하지 않은 반대자들은 그를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시작부터 갈등의 원인이 싹트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박 대표는 '75%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75%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대략 75%의 국민이 찬성하는 것은 승복해온 전례가 있어왔다는 통찰에서 비롯된 제안이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김영삼의 '금융실명제 도입' 등의 여론조사에서 대략 4명 중 3명인 75% 정도가 찬성했고, 그 수치로 인해 정통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사회에서는 적어도 75%가 동의하는 일에는 일단 승복한다는 문화가 만들어졌고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어도 시민의 75%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과 대통령 선거에 대해 박 대표는 두 가지 제안을 하는데, 하나는 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결선투표제의 도입이다.


우선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게 되면 지역구의 규모가 커지는 동시에 한 지역구에서 2~3명의 의원이 당선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유권자의 75% 정도가 당선자에게 투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75%가 뽑은 후보가 당선되고 25%는 낙선하는 제도를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가 반영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는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1차 투표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나온 뒤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만 따로 결선투표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조건 과반수 이상 득표한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과반수가 인정한 대통령에게 더 큰 정통성이 부여될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또 1차 투표 결과에 의한 정당간 연대가 가능해져 정당 체제가 재편될 수 있다. 지금처럼 여론조사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결과를 위한' 사전연대나 통합이 아니라 1차 투표에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정당한 권력을 기반으로 이념별 연대가 가능해진다. 박 대표는 지금의 새누리당-민주당이라는 영-호남에 지역적 기반을 둔 정체성이 불분명한 기형적인 정당구조의 대안으로 좌에서 우의 스펙트럼을 가진 '진보-민주-공화-자유당'을 이상적인 정당 구조로 제시하고 있는데 결선투표제는 이러한 선택을 더 자연스럽게 이끌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선거가 너무 잦아서 피로증을 호소하지만 사실 선거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며 따라서 "선거는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미국 하원의원처럼 국회의원의 임기를 2년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더 자주 국민의 의사를 묻게 되면 국민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된 정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의 임기가 2년이 되면 국회의원은 더이상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다. 돌격대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를 위해 정치를 할 것이다. 낙선으로 4년간 실업자가 된다는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따라서 "신인 정치인이 늘어나면서 한국 정치가 훨씬 더 역동적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평가는 2년마다 펼쳐지는 총선을 통해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지방자치정부가 유탄을 맞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금은 대통령 임기 동안에 총선이 없다면 정권에 대한 평가를 엉뚱하게도 지자체장이 받고 있는 구조다.


촛불보다는 투표가 힘이 세고, 투표보다는 제도가 힘이 세다. 100%를 만족시키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박 대표의 주장처럼 75%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제도를 바꾸면 최소한 50% 이상이 만족하는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75% 민주주의는 국민의 다수를 참여시킴으로서 갈등을 완화하고 국정의 기반을 넓히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 체제는 87년에 그랬던 것처럼 보수와 진보의 타협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 타협은 한쪽으로 쏠려 있던 힘의 균형이 팽팽해지거나 혹은 반대쪽으로 기울어질 때에만 실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60년간 지배해온 보수가 위기 의식을 느껴야만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겠는가.


앞서 제시한 화두인 '보수의 몰락'에 대해 강 기자와 박 대표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한국 사회에서 보수가 몰락하고 있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선 그 전에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대해 기존 언론의 분석과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선거의 투표 경향에 대한 기사를 보면 세대전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20~40대를 진보적, 50대 이상을 보수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사실 그렇게 정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각각 다른 계층에 속한 그들을 어떻게 한 묶음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 중심부에 살면서 대기업에 출근하는 30대와 수도권 외곽에 거주하면서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를 한묶음으로 같은 계층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보다 그는 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는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주류 세력에 대한 입장에서 구별된다고 말한다. 즉, 어떤 일이 있어도 새누리당만 찍는 사람, 한 번도 새누리당을 찍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사람, 그리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의 세 부류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가능한 이유로 박 대표는 "새누리당만이 연대나 통합 없이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실은 우리가 보수/진보의 개념을 새누리/반새누리라는 개념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보수가 몰락하고 있는 증거로 보수의 일곱 기둥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첫째, 지식인이다. 철학의 박종홍, 경제학의 남덕우, 사회학의 김경동 등은 그동안 보수 권력의 이념을 만들었던 지식인들이다. 이들이 퇴장한 지금 서점가를 가보면 베스트셀러 목록은 대부분 진보적인 혹은 반보수적인 지식인의 책들로 채워져 있다. 보수적인 정체성을 가진 책들이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윤리를 강조하는 마이클 샌델의 책마저 한국에서는 반보수적인 맥락에서 소개되고 있다.

둘째, 언론. 1990년대 말까지도 가구별 신문구독률은 70%에 달했지만 이제 그 비율은 20% 근처에 불과하다. 신문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 50대 이상이고 40대 이하는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그렇게 되면서 언론사 간의 위계가 사라졌다. 프레시안과 조선일보는 인터넷에서는 그저 하나의 언론사일 뿐이다. 거기에다가 SNS의 영향력 확대까지 더해져 보수언론 위주의 지형에 큰 변화가 생겼다.

셋째, 기독교. 개신교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을 잇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회의 비도덕적인 행태로 인해 점점 인기를 잃어가고 있고 개신교의 신도 수도 수년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존경받는 목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넷째, 문화. 김동리, 서정주, 이문열 등 보수적인 인사들이 문화권력을 장악하던 시대가 끝나고 지금의 작가, 영화감독, PD, 배우, 개그맨들 중 "나는 보수다" 라고 말하는 문화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개그콘서트'에서도 진보적인 소재를 다루어야 인기가 있고 개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마디로 문화 권력이 진보로 넘어와 있다.

다섯째, 기업. 삼성그룹이 이병철에서 이건희로 이어지는 세습은 받아들인 국민들이 이제 이재용으로 3대 세습이 이어지면서는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이 베이커리, 커피숍 등 일반 시민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반재벌 정서가 늘어가고 있다.

여섯째, 권력 기관. 국정원, 검찰, 경찰, 군대 등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실력이 갑자기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권력기관의 활동이 SNS로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스마트폰으로 증거보존되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막무가내식 불법활동을 하게 되면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된다.

마지막으로 정당. 리더십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 더이상 정당으로 가지 않는다. 그대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출신이 인턴 정치인이 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서야 처음으로 정치를 경험한다. 사실 이것은 보수의 몰락이라기보다는 기존 정당체제의 몰락이다.


이처럼 보수가 몰락하는 큰 흐름과 증거를 제시하면서 박 대표는 지금 불고 있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진단한다. 지난 60년간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보수의 패러다임은 '안보'와 '성장'이라는 두 축이었는데 그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박정희를 극복할 수 있는 상징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안철수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식의 위계질서가 바뀌었다. 근대 이전에는 신학>철학>과학>기술의 순이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물구나무를 섰다"면서 "지금은 기술을 지배하는 사람이 질서를 정한다. 스티브 잡스가 추앙받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내가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 기술자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안철수 현상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중은 안철수에게서 스티브 잡스 뿐만 아니라 기부 확장에 앞장서는 부자인 워런 버핏의 이미지까지 보고 있다"면서 "안철수가 대표하는 '강남좌파' 혹은 '강남우파'라는 말에는 '닮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박 대표는 한국 정치의 개혁을 위해 정당의 변화를 주문한다. 그는 "정치인을 길러내지 못하는 지금의 정당 구조 탓에 국회의원은 인턴 헌법기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3김 이후 주목할 만한 정치인이 탄생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정치를 배우고 리더십을 키울 기회가 없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리더십 인스티튜트를 운영한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 사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며 "하지만 한국에는 20~30대 젊은이들이 정치인의 자질을 교육받을 기관이 없다. 그래서 교수, 의사,  변호사처럼 나이 많고 돈 있는 전문직이 아무 준비도 없이 정치인이 된다"고 꼬집었다. 국가나 정당 차원에서 정치인을 양성하는 공적인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에 지도자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치인으로 벼락 전업한 사람들이 어떻게 수십 년간 잔뼈가 굵은 행정부의 공무원과 사법부의 비선출 권력을 견제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한국에서는 사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이 선출직 권력보다 더 힘이 센 것이다.


박 대표는 "한국 정치가 선진화하려면 선거 때마다 바뀌는 정당의 공천방식을 제도화해야 하고 정치자금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자금을 묶어두면 돈 있는 사람만 정치하는 최악의 구조가 반복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치자금은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선출된 국회의원의 권한이 강력해지면 비선출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게 돼 비용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정당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 사회에서 신앙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형 교회가 인기를 얻어온 방식을 벤치마킹하라고 주문한다. 신도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모이고 또 자발적으로 헌금을 내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또 교회가 충분히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혼식, 장례식 때 교회만큼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본 적이 없다. 아프면 교인들이 간호까지 해준다. 모여서 여행가고 노래 부르고 봉사활동 가고 또 다양한 인맥을 쌓는데 그들이 어떻게 교회를 떠나겠는가"라며 "이런 한국형 교회에서 한국형 정당의 모습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일갈한다. "지금의 정당은 재미도 정보도 아무것도 주지 못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힘든 조직"이라고 전제한 박 대표는 "무료 법률상담, 문화학교 등등 정당이 당원들에게 재미를 주고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으로 찾아올 것"이라며 "사람들이 모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치토론으로 이어지고 그 와중에 풀뿌리 정치인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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