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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가 시대를 앞서간 저주받은 걸작으로 남은 이유는 밑도끝도 없이 복제인간과 디스토피아 미래사회를 화두로 던졌기 때문이다. 다른 SF영화들은 외계인과 우주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블레이드 러너>는 미래사회는 어두울 것이고, 인간이 만든 복제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같은 데카르트식 질문에 빠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들 유선전화 쓰고 있는 시대에 갑자기 SNS 중독의 부작용을 이야기한 셈이랄까? 당연히 당시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일부 평단만 환호했다.


<블레이드 러너>


그로부터 35년이 흘렀다.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인 2019년으로부터 단 2년을 남겨둔 올해, 영화가 예언한 산성비 내리고 홀로그램 광고판 가득한 우중충한 도시 풍경은 (꼭 그런 방식으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복제인간 화두만큼은 더 풍성해졌다. 인간은 유전공학, 인공지능 등에 힘입어 점점 생명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기술의 급격한 발달 속에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결국 인간의 피조물에게 지구 지배자의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분석했고, 구글 이사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을 인간과 인공지능의 능력이 역전되는 특이점의 해로 선언했다.



인간을 뛰어넘는 복제인간이 등장할 미래가 과연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마크 저커버그는 유토피아를 말하고, 일론 머스크는 디스토피아라고 단언한다. 만약 전자라면 사실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후자의 경우다. 이 시점에 <블레이드 러너>가 돌아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인다.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 미래사회와 기계의 반란(사이버펑크)을 그린 최초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캐나다 출신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속편의 배경은 2049년으로 더 멀리 나아간다. 1982년에 2019년이 초현실적인 미래였던 것만큼이나 지금 상상하는 2049년 역시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022년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20여년 만에 재건한 2049년은 얼핏 보기에는 전편의 2019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는 여전히 암울하고 축축하고 수직적 건축물들로 빽빽하며 요란한 홀로그램 광고로 가득 차 있다. 레플리컨트를 만드는 회사는 타이렐에서 월레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건물 내부는 이집트 신전을 닮아 웅장하다. 하나의 기업이 통제하는 중앙집권적 사회다.



영화의 진짜 필살기는 우중충한 도시, 그 내부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전편의 화두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레플리컨트였다. 루트거 하우어가 연기한 복제인간 로이는 끊임없이 살아남기를 갈구하고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구원함으로써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


속편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화두는 '인간다움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혹은 태어나는 것인가'이다. 영화는 2시간 4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이 질문에 천착한다.



레플리컨트들은 인간다움은 태어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의 신체 능력은 인간보다 뛰어나지만, 정작 그들이 가진 기억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레플리컨트들은 태어난 존재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태어난다는 것을 동경해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을 숭배한다. 영화 속에는 여성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특히 '행운'이라는 한글 표기가 확연한 비밀의 장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거대한 여성의 동상이 늘어서 있고, 또 최후의 존재 역시 여성이다. (성서에서 레이첼(라헬)은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지만 영화에선 딸을 낳다가 죽었다.)


레플리컨트들의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은 창조주인 월레스(자레드 레토)가 의도한 것이다. 그는 갓태어난 여성 복제인간의 자궁을 제거함으로써 개체 수를 통제한다. 그는 고통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이라며 고통을 감내하는 존재만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훈시를 늘어놓는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인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레플리컨트 경찰이다. 그는 사상 초유의 임신한 레플리컨트의 시신을 발견한 뒤 그때 태어난 아이를 찾아 없애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수사를 진행할수록 28년 전 태어난 그 아이가 혹시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져든다.


주인공의 이름인 K는 자연스럽게 카프카 소설 [성]의 측량기사 K를 떠오르게 한다. 그전까지 가상현실의 홀로그램 여자친구 조이(아나 드 아르마스)를 사랑하며 가짜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던 K는 이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미지의 성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숨어살던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발견한 뒤 그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자신이 '더 원'이라는 자기확신에 이끌린다. 카프카부터 매트릭스까지, 레플리컨트 K는 전작에서 로이가 보여준 종교적인 희생정신을 뛰어넘어 이제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감정과 상상력까지 갖춘 레플리컨트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뒤 K는 홀로서기를 택한다. '행운'은 그의 편이 아니었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성 밖에서 서성거리던 K가 아니다. 수중에서 펼쳐지는 K와 월레스의 수하인 러브(실비아 혹스)의 클라이막스 혈투는 물이 자궁에 대한 은유라는 점에서 K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상징한다. 만들어진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진실을 갈구하던 K의 이런 선택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특이점을 넘어선 미래 사회가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명쾌한 해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피조물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며 우리가 잊고 있는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을 주는 영화다. 압도적인 비주얼 속에 고뇌하는 주인공이 만들어가는 묵직한 플롯은 한 번 빠져들면 끝까지 집중하게 한다.


>> <블레이드 러너 2049> 인간다움 더 심오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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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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