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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이번 추석 연휴는 무려 10일! 웬만한 여름휴가보다 더 긴 환상의 황금연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 비행기 표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처 여행 계획을 세우지 못한 알뜰족들에게 명절 연휴를 즐겁게 보낼 아이템으로 영화가 빠질 수 없겠죠? 마침 극장들도 대작을 준비하며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입니다. 연휴가 긴만큼 이번 추석엔 4편의 대작들이 경쟁합니다. 어떤 영화들인지 하나씩 살펴볼까요?




<아이 캔 스피크> 가슴 따뜻한 코미디


‘도깨비 할매’라는 별명을 가진 나옥분(나문희)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수십 년 간 8000여건의 자잘한 민원을 넣어 구청에서 기피대상 1호로 꼽히는 할머니입니다. 옥분이 구청에 뜨면 공무원들은 행여나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전화기를 붙잡고 바쁜 척을 하죠.


구청에 새롭게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발령받아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원칙주의자인 민재는 옥분에게 번호표를 뽑아서 서류를 제대로 작성해 접수하라며 돌려보내는데요. 옥분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그녀는 질세라 그동안 쌓아둔 서류더미를 잔뜩 들고와 민재 앞에 들이밉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어느 날 옥분은 영어학원에서 우연히 민재를 만납니다. 옥분은 미국으로 입양 간 동생과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싶은데 나이 든 할머니를 받아주는 학원이 없습니다. 민재가 꽤 수준급의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옥분은 구청으로 찾아가 다짜고짜 이렇게 말합니다. “나한테 영어 가르쳐 줘. 안 그러면 이 민원서류 다 접수할 거야.”


이제 옥분과 민재의 알콩달콩 영어과외가 시작됩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아니라 골치 아픈 할머니 영어 과외하기죠. 그런데 민재는 깐깐하다고만 생각했던 옥분에게서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습니다. 할머니가 해주는 진짜 밥을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요. 고등학생인 동생과 단둘이 사는 민재는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해왔습니다. 꿈을 포기하고 9급 공무원이 된 것도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소소하고 따뜻한 코미디로 진행되던 영화는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감동의 여정을 준비합니다. 알고 보니 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은 끔찍한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결혼도 하지 못했고, 그래서 남들 손주 볼 나이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며 살고 있었던 거죠.


옥분의 절친 정심(손숙)은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세상에 적극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정심이 치매에 걸리자 옥분은 결심합니다. 친구를 대신해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내기로 한 것이죠. 옥분이 기를 쓰고 영어를 배운 것도 정심을 대신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옥분을 오해하고 있던 동네 사람들과 공무원들은 이제 옥분을 응원하기 위해 한 마음이 됩니다.



영화의 정서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피와 욕설이 나오지 않는, 그러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미덕까지 갖춘 한국영화를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나문희는 흡입력 있는 표정과 목소리로 119분 러닝타임 내내 영화의 공기를 휘어잡고, 이제훈은 나문희의 옆에서 보조를 맞춰 깐깐하면서도 속 깊은 청년을 정성스럽게 연기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여러분은 눈이 부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후기에는 “휴지도 손수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화장이 지워져 맨얼굴이 됐다”, “지금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는 소감이 가득합니다.


<스카우트>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프로야구라는 평이한 소재로 우회해 그려 감동을 이끌어낸 김현석 감독은 이번에도 위안부 피해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코미디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힘 빼고 담담하게 그립니다. 작은 이야기를 통해 큰 감동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일품인 영화입니다. 가족, 친구, 연인 등 모든 세대의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아이 캔 스피크 – 12세 관람가, 9월 21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킹스맨: 골든 서클> 젠틀맨의 더 화려한 액션


환상적인 ‘수트빨’로 뭇 남성들 기죽이는 매력적인 중년남 콜린 퍼스가 장우산 하나 들고 술집에서 펼치던 액션을 기억하시나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이 한 문장만을 남긴 채 그는 술집의 문을 잠그고 매너 없는 남자들을 우산 하나로 흠씬 두들겨 패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영국 신사의 젠틀함을 잊지 않았죠. 그동안 매너 없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받아온 사람들은 아마도 이 장면에서 스트레스가 확 풀리지 않았을까요?



아서, 멀린, 랜슬롯, 갤러해드 등 원탁의 기사들이 현대에 젠틀맨으로 부활해 세상을 지킨다는 컨셉트에 B급 액션을 세련되게 결합한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특히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이번에 개봉하는 속편의 부제 ‘골든 서클’은 킹스맨에 대적하는 범죄 조직의 이름입니다. 줄리안 무어가 골든 서클의 수장 포피 역할을 맡아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그녀는 “인간은 믿지 못해 로봇에 투자했다”며 로봇견을 자신의 보디가드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들은 믹서기에 갈아버릴 정도로 극악무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웃는 인상을 유지하고 있어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악당입니다.



속편에는 골든 서클 외에도 ‘스테이츠맨’이라는 또다른 조직이 등장해 킹스맨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는데요. ‘스테이츠맨’은 샴페인, 위스키, 데킬라, 진저 에일 등 술 이름을 코드명으로 삼아 미국에서 활동하는 킹스맨의 형제 조직입니다. 킹스맨이 정장을 입은 신사 컨셉트라면, 스테이츠맨은 카우보이 컨셉트라서 또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신사들의 무기는 시계, 우산, 술통 같은 것이었지만, 카우보이들은 레이저 올가미, 야구방망이, 야구공 등을 무기로 씁니다.


영화는 골든 서클의 공격을 받아 킹스맨의 본부가 연달아 폭파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킹스맨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외팔이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가 사이보그가 되어 나타나 에그시(태런 에저튼)를 괴롭힙니다. 살아남은 킹스맨 멤버는 에그시와 멀린(마크 스트롱)뿐입니다. 두 사람은 ‘킹스맨 최후의 날’ 규약에 따라 행동하다가 단서를 찾아 미국 켄터키로 날아갑니다. 그곳에서 스테이츠맨 팀에 합류하게 되고, 전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해리(콜린 퍼스)도 만납니다. 이제 영국 킹스맨과 미국 스테이츠맨 연합군은 힘을 합쳐 골든 서클에 대적합니다.



전편에서 발렌타인(사뮤엘 L 잭슨)의 총에 맞아 사망했던 해리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 돌아오는지 궁금하시죠? 그가 한쪽만 선글라스인 짝짝이 안경을 쓰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화적 짜임새나 신선도 면에서 전편만큼의 매력은 떨어집니다만 대신 볼거리는 더 풍성해졌습니다. 전편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그대로 참여했고, 스케일은 더 커졌으며, 액션은 시원해졌습니다. 영화 초반 자동차 추격전, 영화 중반 설원에서 곤돌라 액션 장면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합니다. 인육으로 햄버거를 만드는 보스, 악을 조장하는 대통령 등 B급 유머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스테이츠맨 팀으로 합류한 채닝 테이텀, 제프 브리지스, 할리 베리 등 새 얼굴도 반갑습니다. 참, 칠순을 넘긴 전설적인 가수 엘튼 존이 깜짝 출연해 우스꽝스런 발차기 액션을 선보이는 장면도 놓치지 마세요.


킹스맨: 골든 서클 – 청소년 관람불가, 9월 27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남한산성> 김훈 원작 진중한 역사물


김훈 작가가 2007년 발표한 소설 '남한산성'을 <수상한 그녀> <도가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636년 병자호란입니다. 청나라의 황제가 인조를 굴복시키기 위해 침략한 병자호란은 12월 14일부터 이듬해 1월 30일, 그러니까 단 47일 만에 끝난 짧은 전쟁이죠. 인조는 서울을 비우고 남한산성에서 방어전을 폈지만 기세등등한 청의 군대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병자호란이 발발한 배경에는 명을 숭배하는 주전파의 득세가 있었습니다.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은 주전파의 대부로 청의 조공 요구를 거부하자고 주장했죠. 이에 맞서 주화파인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절대강자가 된 청과의 화친만이 조선의 살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조정이 남한산성에 갇힌 뒤에도 두 사람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김훈 작가는 소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지옥이었다."


그렇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김상헌의 말을 들어주자니 싸우다가 나라가 망해버릴 것 같고, 최명길의 말을 듣자니 인조는 청나라 황제의 신하로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김상헌은 죽음이 곧 사는 길이라고 말하고, 최명길은 죽음을 왜 그리 쉽게 여기냐고 다그칩니다. 이 암울한 시대, 남한산성이라는 고립된 공간이 영화의 배경입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벌이는 말의 전쟁을 집중력 있게 묘사합니다. 2시간 20분의 긴 러닝타임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영화는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가장 부끄러운 시기의 우리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치는 이렇게 암울한 시대에도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아꼈던 두 명의 정승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누구의 손도 들어주기 힘듭니다. 두 사람은 사상이나 방향은 달랐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을 끝까지 지켰고 그래서 훗날에도 존경받았습니다.


영화에는 두 신하의 대결 외에 하나의 축이 더 있습니다. 백성입니다. 엄동설한에 병역의 의무를 행해야 하는 민초들은 동상에 시달리고, 굶어 죽기 일보 직전입니다.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이 즐비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허구의 인물인 대장장이 서날쇠(고수)는 민초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나는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 그는 이렇게 말하며 정치 게임의 한가운데에서 혈혈단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무엇보다 그 암울한 시대를 살아낸 민초들의 고통은 소설에서 김훈 작가가 가장 강조했던 메시지이기도 하고,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평온한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큰 울림을 남깁니다.


이병헌과 김윤석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 김지용 촬영감독의 심도 깊은 카메라, 영상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선율, 소설의 날카로운 문장을 대사에 접목한 시나리오, 황동혁 감독의 세련된 연출 등 <남한산성>은 최근 나온 사극영화들 중 단연 웰메이드의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긴 추석 연휴, 차분한 마음으로 비운의 역사를 돌아보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합니다.


남한산성 – 15세 관람가, 10월 3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범죄도시> 잔혹 조폭 때려잡는 마동석


이 영화의 장르는 한 마디로 ‘마동석’입니다. 마동석의 존재감이 그야말로 대단하거든요. 극중 이름이 마석도 형사인 그는 첫 등장부터 강렬합니다. 칼을 들고 두 남자가 싸우고 있는 시장 한복판을 전화 통화하며 지나가던 그는 한 손으로 가볍게 두 남자를 제압하고는 통화를 계속합니다.



조폭인지 형사인지 구분되지 않는 마석도의 존재감은 누구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막강합니다. 영화의 배경인 가리봉동의 조선족 조직폭력배들은 마석도가 나타나면 바짝 고개를 숙입니다. 그를 잘 모르는 덩치 큰 부하 한 명이 괜히 들이댔다가 마석도의 손찌검 한 방에 그대로 기절해버릴 정도입니다.


마석도는 상극인 두 조직의 보스를 모아놓고 억지로 화해시키는 방식으로 범죄도시에 평화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하얼빈에서 밀항했다는 극악무도한 행동대장 장첸(윤계상)이 동네에 나타나 조직을 하나씩 접수하면서 평화가 깨집니다. 마석도는 강력반 팀원들과 함께 장첸의 독사파를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남자 스타일의 거친 액션으로 일관합니다. 마석도를 비롯해 조폭과 경찰들은 죄다 욕을 입에 달고 살고, 협박하고, 힘을 과시합니다. 영화에 자비란 없습니다. 독사파는 도끼를 사정없이 휘둘러 사람을 죽이며 영역을 넓혀가고, 기존 조직들은 나름대로 자기 ‘나와바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찰과 별도로 독사파를 쫓습니다. 힘 대 힘이 살벌하게 충돌해 영화를 보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입니다.


수컷들의 영역다툼 욕망의 폭주를 정리하는 것은 역시 우리의 마석도 형사입니다. ‘서민형 슈퍼히어로’인 그는 능글맞은 구석도 있지만 누구와 만나도 주눅들지 않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선 마석도와 장첸이 공항 화장실에서 일대일 격투를 벌이는데 이 액션 신은 세트 촬영임을 알고 보는데도 마치 터미네이터의 대결을 연상시킬 만큼 강력합니다.



<범죄도시>는 이번 추석영화 중 아마도 가장 화끈하고 살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팔을 다쳤는데 팔뚝이 너무 굵어 어디가 다친 건지 안 보인다는 등 ‘마요미’ 마동석이 간간히 터뜨려주는 코믹함도 양념처럼 들어 있습니다. 그동안 젠틀한 이미지였던 윤계상은 피가 뚝뚝 묻어나는 악당으로 완벽한 연기 변신을 해냈습니다.


영화는 2004년 왕건이파 사건과 2007년 연변흑사파 사건을 모티프로 배경과 인물 등을 살짝 변형해 만들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로 폭력성의 수위가 그 어떤 한국영화보다 높은 만큼 가족 단위 관람보다는 친구끼리 보면 좋겠네요.


범죄도시 – 청소년 관람불가, 10월 3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SK하이닉스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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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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