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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너그러운 견해는 일생 동안 지구의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 마크 트웨인


최초의 영화에는 기차가 등장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크린에는 곧이어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와서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 그렇게 최초의 영화는 여행을 담았다.


<기차의 도착>


그로부터 12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영화는 무수히 많은 여행을 스크린에 옮겼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영화가 드물 정도로 영화와 여행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어떤 여행은 사랑을 찾아 나서고, 어떤 여행은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성장해 가며, 어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돕고, 어떤 여행은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되고 그 변화가 이야기를 만든다. 영화가 여행을 떠나 만든 이야기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1. 여행에서 사랑을 만나다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 여행 중엔 가슴 뛰는 경험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어디론가 함께 간다는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가 둘만의 비밀을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의 엘리(클로데트 콜베르)는 뉴욕으로 가는 대륙 횡단 버스에서 피터(클라크 게이블)를 만난다. 엘리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기 위해 무작정 가출을 감행한 참이었다. 처음에 피터는 그녀가 부잣집 딸이라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행길에서 동고동락하며 신분의 벽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키워간다.


엘리는 애초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여행에서 만난 새로운 남자는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나중에 그녀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그렇게 여행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히치하이킹 신이다. 피터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며 온갖 잘난 체를 하며 시도해도 차는 서지 않는다. 그때 엘리가 허리를 숙여 치마 사이로 다리가 드러나자 지나가던 차가 급정거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랑받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고전이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라이즈>(1995)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유럽을 횡단하는 열차 안에서 각자 책을 보는 중이다. 시끄럽게 싸우는 옆자리 노부부를 바라보다가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친다. 서로 무슨 책을 읽는지 교환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왠지 이 사람과 잘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오간다. 기차가 빈에 도착하고 제시는 셀린느에게 손을 내민다. 파리가 목적지였던 셀린느는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제시를 따라 내린다. 그렇게 하루 동안 낯선 도시에서 로맨스가 시작된다.


“만약 신이 있다면 너의 안도 아니고, 나의 안도 아니고, 너와 나 사이에, 이 작은 공간 안에 있을 거야.” 셀린느와 제시는 걷고 또 걸으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이 하루는 두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그로부터 10년 후, 20년 후 두 사람의 후일담이 또 다른 영화들로 이어진다.


지금 만난 사람이 내가 찾던 그 사람일 거라는 상상은 <비포 선라이즈>에선 막연한 운명론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전화번호조차 교환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에 가서야 비로소 그것이 단 한 번 주어진 운명의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제시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너무 유한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시간과 특정 순간들이 너무 소중해.”


누군가와의 만남은 밤고양이처럼 찾아온다. 밤고양이는 매일 밤 어슬렁거리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뿐이다. 더 이상 기회는 오지 않는다. 삶은 유한하다. 여행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것이 기회임을 알아차리는 자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김종욱 찾기>


<김종욱 찾기>(2010)의 서지우(임수정)는 첫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 막 개업한, 첫 사랑을 찾아준다는 회사를 찾아가 한기준(공유)에게 의뢰한다. 그런데 지우가 첫 사랑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김종욱’이라는 이름이 전부다. 지우는 홀로 인도 여행을 갔다가 그 남자에게 첫 눈에 반했다. 이국적인 블루시티에서 우연히 만난 이상형의 그는 환상 속에 실루엣처럼 남아 있다.


기준은 김종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들의 리스트를 뽑아 지우에게 함께 '김종욱들'을 찾아다니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첫 사랑을 찾아 나선 여행에서 또 다른 첫 사랑을 발견한다. 어쩌면 가끔 꿈보다 더 멋진 현실을 만나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2. 여행을 통해 성장하다


여행은 인생의 메타포다. 어떤 여행은 인생을 한 뼘 더 성장하게 한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눈을 갖게 해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일상의 풍경이 그 전과 다르게 보인다면 그 여행만큼 값진 것은 또 없을 것이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의 두 아르헨티나 청년은 남미대륙을 여행한다. 스물 세 살의 의대생 에르네스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친구 알베르토(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와 함께 여덟 달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안데스 산맥을 가로질러 잉카 문명 유적부터 아마존의 한센병자 수용소까지 80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동안 두 청년은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군상을 만나고 불합리한 세상에 분노한다.


여행이 끝난 뒤 에르네스토는 의사생활을 포기하고 라틴 아메리카를 연합해 해방시키는 일에 인생을 건다. 그는 과테말라, 멕시코를 거쳐 쿠바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해 아바나에 혁명 정부를 세우고 볼리비아로 건너가 농민 봉기를 주도하다가 볼리비아군에게 체포돼 처형당한다. 세상은 그를 ‘체 게바라’라고 부른다. 영화는 체 게바라가 혁명에 몸담기 전인 1952년 떠난 실제 여행을 재구성했다. 여행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고, 결국 세상을 바꿨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의 월터 미티(벤 스틸러)는 해본 것도, 가본 곳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직장인이다. 잡지 폐간과 함께 강제 퇴직 위기에 몰린 그는 전설의 사진작가가 보냈다는 마지막 사진이 사라지자 그 필름을 찾기 위해 아이슬란드로 직접 모험 같은 여행을 떠난다.


바다 한가운데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산을 내려오고, 폭발 직전 화산으로 돌진하는 등 수많은 어드벤처 상황 속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삶의 정수를 발견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떠나기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더 이상 그는 잡지 폐간으로 인생이 끝날 것처럼 우울해하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어쩌면 인생은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수수께끼의 사진 같은 것 아닐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 아파트 등 모든 것을 갖춘 31세 여자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든다.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싶어진 그녀는 딱 1년간 정해진 인생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일, 사랑, 가족을 뒤로한 채 훌쩍 여행을 떠난다.


리즈는 이탈리아로 가서 신나게 먹고, 인도로 가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로 가서 자유롭게 사랑한다. “균형이 깨져야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영화의 대사처럼 1년이 지난 후 그녀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때 그녀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삶도 일도 사랑도 그냥 하는 것과 마음으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1년간의 여행은 그녀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알려주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의 소년 코이치의 소원은 동생과 아빠와 함께 사는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면 아빠가 있는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다고 믿는 소년은 매일 화산이 폭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어느 날 소년은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의 상행선과 하행선이 마주치는 순간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과 함께 기찻길을 걷는다. 인생 최대의 모험을 떠난 것이다.


기적을 기대하며 떠난 아이들은 기적을 눈으로 보지는 못한다. 그들은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온 자리에는 이미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작은 기적들이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다.



#3. 일탈 여행을 떠나다


일탈은 여행을 동반한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일탈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를 피하기 위해서든,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서든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 그래서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압박으로부터, 때론 지나치게 평범한 삶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미치광이 삐에로>


<미치광이 삐에로>(1965)의 전직 스페인어 교사 페르디낭(장 폴 벨몽도)과 베이비시터 마리안느(안나 카리나)는 지겨운 권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리비에라로 밀월여행을 떠난다. 자동차를 몰고 달리다가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 물건을 훔친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도피행각을 벌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처럼, 그들의 행위는 권태라는 이유로만 설명된다. 영화는 스릴러부터 액션,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두 남녀의 여정을 묘사한다.


두 사람은 도피행각 끝에 행복해질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소통 방식부터 다르다. 남자는 언어로 표현하고, 여자는 느낌으로 표현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호명할 뿐 진정으로 소통하지는 못 한다. 그들은 사랑을 속삭이지만 말과 느낌이 어긋나는 사랑의 끝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애초 그들은 '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에 어쩌면 이들의 일탈은 그저 끝없는 여행으로만 남았는지 모른다.


<델마와 루이스>


<델마와 루이스>(1991)의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웨이트리스 루이스(수잔 서랜든)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가를 떠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두 사람은 휴게소에서 그녀들을 강간하려는 남자를 살해하게 되고, 그들의 여행은 이제 도주로 바뀐다.


보수적인 남편에게, 추근대는 손님들에게 당하기만 하던 그녀들은 도주 속에서 오히려 자유를 만끽한다. 범법자가 되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그들만의 존재 이유를 찾은 것이다. 두 여자는 사막을 달리며 소리를 지르고, 멕시코로 가서 새 삶을 시작할 계획까지 세운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그들은 이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일탈 여행의 끝에서 영화는 장엄한 엔딩을 준비하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


<이탈리아 여행>(1953)에서 영국인 부부 캐서린(잉그리드 버그만)과 알렉스(조지 샌더스)는 삼촌이 남긴 유산을 처분하기 위해 나폴리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길에 두 사람은 부부이면서도 서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서먹해진 두 사람은 각자 여행을 따로 하기로 하고 캐서린은 나폴리로, 알렉스는 카프리 섬으로 향한다.


이들의 일탈 여행은 서로를 돌아볼 계기가 되었을까? 두 사람은 고독과 유혹을 겪으며 꿋꿋하게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겉보기에는 변한 것이라곤 전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끝내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친구로부터 폼페이 유적 발굴 현장 방문을 요청받게 되고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죽음의 순간 함께한 남녀의 모습으로 굳어버린 조각상을 보면서 두 사람의 마음이 동요한 것이다.


종교의식이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로 몰려오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가까스로 포옹한다. 실로 기적 같은 여행의 힘이다.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의 스타(사샤 레인)는 갈 곳 없는 소녀다. 그녀는 우연히 제이크(샤이아 라보프)를 만나 미국을 횡단하는 크루에 합류한다. 낮에는 도시를 떠돌며 잡지를 팔아 돈을 벌고, 밤에는 파티를 즐기는 생활이 계속된다.


이들의 여행은 규칙을 지키며 사는 집단생활이고, 낙오하면 집에 가야 하는 경쟁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일탈이지만, 이들에게는 지긋지긋한 또 다른 일상이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여행 속에서 점점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는 스타는 그동안 잊고 있던 꿈을 떠올린다. 새벽녘 호수에 그녀의 작은 꿈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마지막 장면은 황홀하다.



#4. 마지막 여행을 떠나다


인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존재하기 시작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인간은 존재의 시작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지만 끝은 얼마든지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다. 영화는 그 마지막 의지를 사랑한다. 함축 가능한 온갖 드라마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7)의 마틴(틸 슈바이거)과 루디(얀 요제프 리퍼스)는 같은 병실에서 만난다. 두 사람은 시한부의 삶을 사는 환자들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했다는 루디를 위해 마틴은 함께 바다로 가자고 제안한다.


두 남자는 차를 훔쳐 무작정 떠나는데 하필 그 차는 100만 마르크라는 거액이 들어 있는 악당의 차다. 두 사람은 경찰과 악당이 동시에 추격해오는 와중에도 최후의 여행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돈을 실컷 써버린다. 그리고는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그들의 마지막 삶의 의지는 오로지 ‘바다’뿐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밥 딜런의 명곡을 'Selig'라는 독일 밴드가 부른 버전이 영화에 감동을 더한다.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2007)의 카터(모건 프리먼)와 에드워드(잭 니콜슨)도 병실에서 만난다. 카터는 자동차 정비사로, 에드워드는 거대한 기업을 일군 사업가로 바쁘게 살아왔지만 이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나이다. 잘난 체하는 에드워드와 이를 지켜보는 카터는 티격태격하다가 공통점을 발견한다. 급기야 두 사람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그들이 만든 버킷리스트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장엄한 광경 보기, 낯선 사람 도와주기, 눈물 날 때까지 웃기, 무스탕으로 카레이싱,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 등이다. 영구문신을 새기고,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오토바이로 만리장성을 질주하는 등 젊은 시절 못해본 것에 대한 로망도 있다. 두 사람은 이를 실천하며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간다. 리스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은 그들의 인생 역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꿈꾸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현실에서는 그것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 끝나갈 때 우리의 후회는 대부분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에서 온다. 카터와 에드워드는 정신없이 살아온 인생의 끝자락에서 기어이 의지를 발휘해 여행을 떠난다. 결국 여행은 실행이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의 트루디(하넬로레 엘스너)는 남편 루디(엘마 베퍼)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마지막이 될 둘만의 여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기대를 배반하는 법. 여행길에서 오히려 트루디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시한부 인생인 루디가 혼자 남는다.


루디는 늦게나마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가지만 워커홀릭인 아들과는 대화조차 할 시간이 없다. 낯선 나라에서 깊은 고독 속에 거리를 거닐던 그는 공원에서 일본의 전통 그림자극의 부토춤을 추는 어린 무용수를 만난다. 죽은 아내가 추고 싶어 했지만 자신은 이해하지 못했던 그 춤이다. 루디는 무용수와 나이차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고 함께 춤을 추면서 아내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비로소 눈을 감는다. 결국 루디의 마지막 여행은 평생 함께했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내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2013)의 알란(로베르트 구스타프손)은 강제로 양로원에 가게 된 뒤 100세 생일을 맞는다. 창문을 바라보던 그는 돌연 창문을 넘어 양로원을 탈출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청년에게 가방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알란은 그 가방을 갖고 버스를 타버린다. 가방 안에 거액의 현금이 들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알란은 쫓아오는 갱단과 경찰을 피해 도망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거고, 세상은 살아가게 되어 있어.” 알란의 엄마는 어린 시절 그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앞만 보고 달리며 살아온 알란은 100세가 되어서도 양로원에 갇히기보다 세상을 향해 탈출할 의지가 있는 남자다.


어떤 여행도 끝나기 전에는 그것이 마지막인지 알 수 없다. 끝이라고 생각될 때 또 다른 길이 열리고 여행은 계속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알란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 [BBB]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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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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