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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가 1881년 죽기 전 1878년부터 3년간 거주한 집은 현재 '도스토예프스키의 집'이라는 작은 박물관이 되었다. 그는 이 집에서 2년 동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필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3년마다 이사했다고 한다. 집 앞에는 그가 다니던 성당이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살던 아파트는 꽤 큰 규모의 건물로 그가 살던 집은 3층에 있다. 반지하의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2층은 당시 시대를 고증한 전시실로 꾸며져 있고, 3층에 그의 집이 복원돼 있다. 현관의 우산, 모자부터 욕실, 서재, 식당, 아이들 방 등을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주로 밤 11시부터 새벽까지 작업했다. 서재의 시계는 그가 죽은 날 죽은 시간에 맞춰져 있고, 벽에는 라파엘로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의 아내는 매우 헌신적으로 그의 편집자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꼬마였던 딸은 나중에 작가가 되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에세이 책으로 내기도 했다. 경건하고 고요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집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집을 나와 인근 재래시장에 들렀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시장이다. 치즈를 저울에 달아 파는 상점이 늘어서 있고 반대편에선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판다. 토마토, 체리, 포도, 서양배 등 과일은 색감이 화려해서 좋다. 이곳 아주머니들은 사진을 찍어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시장 안의 기념품 상점에는 다양한 마트로시카가 있었다. 미니언즈, 스파이더맨, 비틀즈, 푸틴, 레닌, 스탈린, 곰돌이 푸 등 모든 것이 마트로시카가 된다. 비틀즈를 살까 했지만 썩 훌륭한 그림은 아니라서 사지 않았다.
나오는 길에 꿀을 파는 아주머니가 여러 종류의 꿀을 맛보라고 권했다. 맛있었고 사고 싶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견딜 수 있을지가 문제다. 결국 포기했다. 아주머니에겐 고맙다는 말 ‘스바시바’만 연발하고 나왔다.
버스를 타고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으로 갔다. 세계 각지의 생활양식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일본, 몽골 등의 풍속 물품이 전시돼 있고, 한국도 있다. 한국은 커다란 자개와 갓 쓰고 한복 입은 마네킹이 놓여 있다.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2층에 전시된 표트르 대제의 악취미 수집품이다. 그는 갓태어나 죽은 아기의 얼굴, 심장, 장기를 비롯해 샴쌍둥이, 기형아 등을 그야말로 수집했다. 성인의 해골과 뼈를 신체모형 그대로 전시해놓기도 했고, 머리가 두 개 달린 기형 동물의 뼈도 있다. 이 무시무시한 곳에 커플 관람객이 많고,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많이 불었다. 다리를 건너 피터와 폴 요새까지 걸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요새 앞 강가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나왔다. 버스를 타니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리를 건너 버스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닌가. 구글지도의 노선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서 당황스러웠다. 혹시 유턴할까 싶어 두 정거장 정도 더 가보았다. 버스는 온 곳으로 한 번 유턴했으나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쩔 수 없이 거기서 내렸다.
낯선 거리에 도착했지만 뭐 처음 와보는 곳도 나쁘지 않다. 시내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다. 스케이드 보드를 탄 남자가 앞으로 지나갔다.
다시 구글지도에서 성이삭 성당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탔다. 이번에는 버스가 정확히 노선대로 움직였다.
밤 11시면 나는 이 도시를 떠나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나는 카페에서 쉬고 싶었다.
현지인들에게 인기 많은 디저트 카페 '부쉐'가 마침 호텔 근처에 있길래 들어갔다. 창가에 앉으니 햇살이 들어와 테이블의 나무 무늬가 포토제닉한 공간을 연출해 주었다. 카푸치노와 블루베리 크루아상을 시켰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고 고른 메뉴였는데 맛은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 음식이 여기선 맛집인가보다. 다시 한 번 느꼈다.
6시쯤 카페를 나왔다. 마지막으로 에르미타주 광장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마차, 자전거, 스케이드보드, 롤러스케이트, 그리고 버스킹… 움직임이 있으니 광장이 더 활기차게 보인다. 광장 한켠에는 무대가 준비되고 있지만 나는 저 무대를 볼 수 없다. 공연이 열릴 때쯤 나는 공항으로 가야 한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거리에서 버스킹하는 여자를 보았다. 꽤 파워풀한 목소리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한 남자가 와서 모자를 내민다. 예상했던 일이라서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넣어주었다.
호텔에서 짐을 찾은 뒤 알게 된 것은 나와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일정이 거의 똑같은 한국인 커플이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심카드를 살 때 처음 봤고, 호텔 메트로폴에서도 봤고, 또 여기 페트로 팰리스 호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는 날에도 보게 됐다. 그들 역시 공항으로 가는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우버를 불렀는데 바로 차가 왔다. 아우디 RV였다. 운전자는 영어를 할 줄 알고, 한국 여행도 한 적 있는 남자였다. 아내와 함께 태국을 베이스로 아시아에서 2년을 살았다고 한다. 서울엔 3년 전 10월에 가봤는데 날씨가 좋고 여행도 즐거웠단다.
우리는 찜질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재밌는 건 둘 중 찜질방에 안 가본 사람이 나라는 것이다. 그는 청계천을 좋아했고, 자살방지 글자들이 적힌 한강 다리를 인상적으로 봤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이 쫓겨난 과정도 알고 있었고 이를 부러워 했다. 푸틴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서 말이다. 우버는 그에게 사람들과 만나는 취미이고, 직업은 집에서 컴퓨터로 하는 일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 보니 복잡한 일인가 보다.
풀코보 공항은 지은 지 3년 된 새 건물이다. 짐검사를 두 번 한다. 캐리어를 들고 대한항공 창구의 긴 줄에 서 있는데 반대편 중국항공 창구에선 한 아주머니가 잔뜩 화가 나서 중국말로 항의하는 소동이 있었다.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공항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모두가 그녀를 쳐다봤다. 나중엔 씩씩거리면서 어딘가로 갔다.
공항 면세점은 유로가 기본 가격이었고 물가도 시내보다 비쌌다. 단, 보드카는 여기가 더 쌌다. 크렘린 보드카 작은 병 하나와 벨루가 보드카가 들어간 초콜릿 두 개, 그리고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작은 나무로 만든 마트로시카 한 개를 샀다. '탕진잼'의 기분이 이런 걸까. 수중에 돈이 100루블 지폐 하나만 남았다. 이렇게까지 환전한 돈을 다 쓰고 돌아온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행기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세 자리를 붙여 누워 갈 수 있었다. 그렇게 9시간 30분을 날아 한국에 착륙했다. 비행기 안에서 러시아에서 산 유심칩을 빼고 한국에서 쓰던 유심칩으로 갈아끼우자 SMS 메시지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쓸데없는 광고 메시지이지만 비로소 여행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도스토에프스키의 집
도스토예프스키가 죽기 전 3년 간 거주한 아파트입니다. 지금은 박물관인데요. 2층엔 그가 살던 시대의 사진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있고, 3층으로 올라가면 그의 집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사를 자주 다녀 3년 이상 같은 집에서 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집에 살면서 그는 2년 동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습니다. 조용한 환경을 원했기에 밤 11시부터 밤을 새워 글을 썼던 그는 낮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며 상담해주는 일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편집자이자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해서 톨스토이는 이런 아내가 있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무척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그의 딸 역시 작가였는데 아버지에 관한 일화를 에세이로 써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들은 책보다는 스포츠를 좋아했고요. 이 아파트 안에는 아이들이 놀던 방부터 식당, 욕실, 집필실 등의 공간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동상.
도스토예프스키가 다닌 성당은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집 입구.
아이들의 방
식당
거실
집필실
집필실의 시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망한 시각에 맞춰져 있다.
거실에 걸린 라파엘로의 그림.
방을 설명하는 안내문.
도스토예프스키 기념품
도스토예프스키의 집 인근 재래시장
도스토예프스키의 집 인근 재래시장.
피터와 폴 요새
쿤스트카메라
쿤스트카메라는 표트르대제의 악취미가 담긴 수집품과 세계 각지의 생활풍속을 모아놓은 박물관입니다.
기념품은 의외로 꽤 귀엽다.
디저트 카페 '부쉐'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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