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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있게 일어나 아침 9시에 조식을 먹었다. 오늘 일정을 고민하다가 하루 종일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밤 9시까지 그림만 봤다.


숙소에서 걸어서 박물관으로 갔다. 에르미타주 광장은 넓고 근사했다. 파스텔톤의 구관과 맞은편 노란색 신관은 원형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에르미타주 겨울궁전.

에르미타주 신관 참모본부 건물.


나는 신관부터 시작했다. 신관에서 4시간 30분, 구관에서 4시간 30분 동안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돌아다녔다. 그림을 계속 보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다. 집중하며 걷는 것은 엄청나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신관 4층에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 작품들과 야수파, 입체파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3층에는 프리드리히 등 독일 풍경화가들의 작품과 러시아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돼 있었다.



신관 관람을 마치고 쩨레목(Tepemok)에서 가볍게 점심 먹은 뒤 구관으로 향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구관은 '겨울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여름궁전, 예카테리나 궁전과 구조는 비슷하다. 2층에 하이라이트가 되는 작품이 많다. 규모가 커서 2층을 한바퀴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미술관 문 닫는 시간에 맞춰서 나와야 했다. 그나마 금요일이어서 밤 9시까지 볼 수 있었다. 전시 작품 수로 따지면 한 작품을 5초씩만 보더라도 1년 이상 걸릴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오디오가이드를 각각 300루블과 500루블을 내고 이용했다. 한국어는 김성주와 손숙이 녹음했다. 송혜교가 후원 비용을 댔다고 한다. 신관의 일부 작품은 러시아어와 영어로만 녹음된 작품도 있어 아쉬웠다. 오디오가이드는 효용성이 높다. 그림을 보면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구관 같은 경우는 궁전으로 쓰이던 곳이기 때문에 각 방마다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방인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구글링 하면 다 나오는 정보라지만 필요한 길이로 정제된, 번호만 누르면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꼭 맞게 편집된 정보는 참 유용하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정보는 양이나 질보다 전달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았던 그림은 모네, 르느와르, 세잔, 고흐, 루소,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 그림들, 그리고 다빈치,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즈, 고야, 무리요, 부셰 등의 작품이었다.


화가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그린다. 르느와르는 작업실이 없었다. 그는 한 공간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작업실은 자연이었다. 카미유 피사로는 말년에 시력을 잃기 전 파리 호텔 방에 머물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끌로드 모네의 '안개 낀 워털루 다리'


모네는 워털루 다리를 41점 그렸다. 그는 특히 런던 안개를 사랑해 안개 낀 다리를 계속 그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런던 안개는 신비한 망토처럼 수많은 색들을 가지고 있다. 검은색, 갈색, 보라색, 회색, 노란색, 초록색 등... 미술의 목표는 수많은 색들을 뚫고 보이는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흐릿하고 모호한 작품이지만 모네의 이 말을 접하고 나자 흐릿함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어졌다.



얼굴이 동그란 소년을 창조한 오귀스트 르느와르.


르느와르는 통통하고 작은 볼을 가진 동그란 얼굴형을 창조했다. 그전까지 미술 작품 속 얼굴은 모두 갸름한 형이었다.


앙리 루소.


앙리 루소는 세관원이었다. 그는 49세에 세관원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었다.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당시 미술계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의 자유로운 표현력은 무시당하기도 했지만 피카소 같은 거장의 주목을 받았다. 한 번은 그가 정글을 그렸는데 사람들은 그가 과연 정글을 가본 적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멕시코 정글에 가본 적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한 번도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피카소는 그를 초청해 전시회를 열어주었다.


앙리 마티스가 부인을 모델로 그린 그림.


앙리 마티스는 서른살에 28세 여인과 결혼했다. 그가 1913년 그린 부인 초상화는 색을 단조롭게 사용하면서도 한 가지만 세밀하게 묘사했다. 깃털 달린 모자 장식이었다. 아폴리네르는 이 그림을 보고 파리지앵의 엘레강스함이 살아있다고 극찬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흠모하는 여인을 모델로 두 남녀의 누드화를 그렸다.


렘브란트의 '다네'


렘브란트의 누드화 ‘다네’는 1985년 바로 이곳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어느 중년의 성도착자에게 테러당한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을 칼로 찢고 질산을 뿌렸다. 그림을 복원하는데 12년 걸렸다고 한다. 지금도 자세히 보면 테러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다고 한다.



렘브란트는 아내 사스키아가 사망한 뒤 슬픔에 빠져 성가족 연작을 그렸다. 렘브란트에게 빛은 생명이고 사랑이며 지혜다. 그를 따르던 후대 화가들 역시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아 빛과 그림자를 작품 속에 강조했다.


렘브란트의 '데커르'


렘브란트는 친구인 시인 데커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어둠 속에 빨려들어갈 듯한 초상화를 보고 데커르는 "누구도 나를 이렇게 꿰뚫어본 적 없었다"고 말했다. 데커르는 그림이 그려진 뒤 몇 년 후 사망했다.


반 다이크의 '자화상'


반 다이크는 젊은 시절 자화상을 그렸는데 직업을 유추할 단서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표정은 자신만만하고 손은 섬섬옥수다. 이는 당시 귀족들의 젠 체하는 포즈를 따라한 것이었다. 관람객과의 일종의 게임이기도 했다.


(8회로 계속)



에르미타주 박물관


네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에르미타주(프랑스어로 은신처라는 뜻의 'hermitage'에서 유래)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힙니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와 달리 이곳의 전시품은 약탈 문화재가 아니라 러시아 황제가 직접 유럽에서 돈 주고 사온 작품들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를 거쳐 소련 시절의 예술품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 렘브란트를 비롯해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등 유명화가의 작품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본관은 원래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궁전으로 옐리자베타 여제 시기에 건축되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유럽의 예술품 컬렉션을 시작으로 이후 차르들의 소장품이 모여 거대한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일반에 개방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소장 규모는 270만점에 달하고, 전시로의 총 길이는 27km라고 합니다. 며칠동안 봐도 다 못보는 규모죠.



제2차 세계대전 때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큰 수모를 겪고 또 반격에 나서기도 합니다. 나치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위했을 때 나치 친위대는 이곳의 문화재를 약탈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 붉은 군대는 빼앗긴 문화재뿐만 아니라 베를린의 예술품과 고대 유물을 가져갔는데요. 이 유물들은 1949년 동독 정부에 대부분 반환됐으나 핵심 유물들은 아직도 에르미타주에 남아 있습니다. 고대 트로이의 황금과 보석 장신구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2013년에는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구 참모본부 건물 중 일부가 박물관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신관으로 불리는 이곳에선 현대 미술을 전시 중입니다.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관람료가 무료입니다. 카잔, 핀란드 인근 비보로크, 암스테르담에 분관이 있고, 블라디보스토크에도 별관을 개관할 예정입니다.



박물관(겨울궁전) 앞 넓은 광장은 1905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과 소련 탄생의 방아쇠가 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인들은 에르미타주를 '영혼의 방주'라고 생각한다는군요. 러시아 역사의 소우주와 같은 곳입니다.


지난 2002년엔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이 영화 <러시아 방주>를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촬영했습니다. 박물관 측은 단 하루라는 시간만을 허용했는데 마침 겨울이라서 해가 짧았습니다. 그래도 소쿠로프 감독은 33개의 방을 스테디캠으로 단 하나의 쇼트로 촬영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박물관 외부와 내부, 그리고 소장 작품들을 사진으로 감상해 보실까요?


에르미타주 박물관 구관 겨울궁전


볼테르

도자기로 만든 꽃. 블라디미르 카네프스키 작품.

베르나르디노 푼가이

로렌조 코스타의 '여인의 초상'

필리피노 리피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성 세바스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돈나와 아이'

라파엘로

디에고 벨라스케즈

디에고 벨라스케즈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피에테르 드 후치의 '여인에게 와인을 주는 남자'


에르미타주 박물관 신관 참모본부


피카소

르느와르

피사로

고흐

고흐

고흐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마티스

마티스

마티스

마티스

마티스의 방.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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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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