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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레닌그라드스키 역에서 고속열차 삽산을 탔다. 재미있는 게 이 나라는 기차역 이름이 도착지의 도시다. 그러니까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스키 역에선 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 역에선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



삽산은 쾌적한 현대식 열차다. 기차는 정시에 떠난다. 기차 안에서 뉴스를 보다가 빅토르 최의 사랑을 그린 영화 ‘summer’의 감독이 상트페쩨르부르크 자택에 구금됐다는 기사를 봤다. 빅토르 최 역할은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계 유태오가 맡는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81년생 남자다. 빅토르 최를 연기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촬영 중 감독이 돌연 공금 횡령 혐의로 구금되는 바람에 영화는 감독 없이 마지막 촬영을 하고 있다. 감독은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하는 작품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았고 그로 인해 당국의 눈밖에 난 모양이다. 언젠가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우버를 이용해 호텔로 갔다. 어제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여전히 몸이 좋지 않다.




카메라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근처에 이삭성당이 있어서 가기로 했다. 이삭성당 대각선 맞은편에 '행복'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어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는 썩 훌륭하진 않았지만 먹을 만했다. 물가는 모스크바보다 싼 듯하다. 우버도 기차역에서 숙소까지 10분 넘게 걸렸는데 200루블(40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1.6배 할증 요금이란다.


카페 창문 사이로 이삭성당이 보였다. 이삭은 성경에 나오는 그 이삭은 아니다. 러시아에는 다른 성자 이삭이 있다. '행복'은 전망이 좋은 카페여서 사람들은 저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펼쳐놓은 종이에 점을 이어 그림을 그리는 놀이를 했다. 몸이 좀 괜찮아지기를 바라면서.



점심을 먹고 이삭성당에 들어갔다. 성당은 박물관과 전망대 티켓을 따로 판다. 전망대도 좋다고 하지만 나는 박물관 티켓을 샀다. 내부는 어마어마하게 웅장했다. 예수와 12사도가 꼭대기에 그려져 있고 이름 모를 성인들의 그림이 황금빛 벽 속에서 빛났다.


성당을 나와 네바강변을 산책했다. 햇살이 강물에 반사돼 아름다운 빛을 내뿜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곳곳에 있는데 그중 하나는 가운데가 분리되는 다리다. 대형 선박이 오갈 일이 있을 때 분리되는 이 다리를 여기 사람들은 'divorce of bridge'라고 부르더라. 재미있는 작명이다. 러시아에는 미녀가 많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오늘 저녁 8시엔 알렉산드리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봐야 한다. 한참 전에 예매해둔 공연이다. 몸살 기운이 심해져서 일단 호텔로 들어갔다. 30분 정도 호텔 자쿠지와 사우나를 이용했다.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하다. 하지만 사우나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호텔방에서 잠시 누워 있다가 7시 10분쯤 밖으로 나왔다.



우버가 잘 잡히지 않았다. 아니, 콜을 받은 차량은 있는데 호텔 앞으로 오지를 못한다. 차를 기다리다가 20분을 허비하고는 결국 취소하고 네프스키 대로로 가서 버스를 탔다. 3정거장만 가면 극장이다.


재미있게도 버스 안에 차장이 있어서 버스 요금을 받으러 다닌다. 주로 할머니들이 차장 일을 하는데 뒷문으로 타더라도 귀신같이 알고 다가와 표를 끊어준다. 버스 요금은 40루블(800원)이다.



시간에 맞게 극장에 들어갔다. 다들 정장 차림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관광객 반, 정장 차림 현지인 반이었다. 예약한 자리는 2층 박스석인데 특이한 것은 극장 입구를 지키는 신사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있어서 그가 열쇠로 열어줘야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리는 좋았다. ‘백조의 호수’ 줄거리를 다시 한 번 검색해보고 공연을 봤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춰 발레리나들의 토슈즈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발레의 매력은 백조 모습을 한 발레리나들이 들어올리고 또 내리는 다리의 리듬을 감상하는 데 있는 듯하다. 여왕과 시중들의 화려한 의상도 볼거리다. 2막 오데트 공주와 왕자의 앙상블 연기에선 공주의 허리를 잡아 돌리는 왕자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모습을 위해 왕자는 손을 써야만 한다.



백조의 호수는 수많은 다리 긴 백인 미녀들 중 한 여자를 고르는 왕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왕자는 바보처럼 사기를 당해 다른 여자인 흑조 오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국 죄를 뉘우친다. 여자를 고를 땐 행복했겠지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4막에서 오데트가 쓰러질 땐 전율을 느꼈다. 이러려고 2시간 동안 드라마를 쌓아올렸구나. 익숙한 주제 음악이 그 장면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스팀이 나오지 않아 방 안은 춥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이 들었다. 내일은 늦잠을 자고 싶다.


(5회로 계속)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유럽을 다녀온 표트르대제가 러시아를 서구화시켜야겠다는 야심 찬 목표 아래 건설한 도시입니다. 불모의 땅에 막대한 자본과 정성을 쏟아 부어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이후 예카테리나 대제가 도시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등 대문호들이 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고속열차 '삽산'을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행복' 카페에서 점심



성이삭 성당



표트르 대제의 동상



북해로 흐르는 네바강



구 해군성 인근 공원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발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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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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