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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를 대표하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일곱번째 영화인 <부드러운 살결>(1964)은 그가 대작 <화씨 451>(1966)의 제작이 4년째 지연되자 쉬어가는 기분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한 남자가 불륜으로 인해 파멸해가는 스토리를 그린 이 흑백 영화의 모티프는 감독의 사생활입니다. 감독 자신이 결혼의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에피소드를 고스란히 영화로 재현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프랑스판 홍상수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만합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부드러운 살결>


영화는 두 남녀의 매만지는 손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손가락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합니다. 타이틀이 내려가면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갑니다. 출판사 사장이자 저명한 학자인 피에르(장 데사유)는 집 안에서 외출 준비를 합니다. 집에는 아내 프랑카(넬리 베네데티)와 어린 딸이 있네요. 영화는 핸드헬드 롱테이크로 그가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담습니다. 그는 ‘발자크와 돈’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기 위해 리스본에 가야 합니다.


이제 남자의 가정 소개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사건이 벌어질 차례입니다. 비행기에 오른 피에르는 자꾸만 한 스튜어디스에게 눈길이 갑니다. 그는 그녀가 신발 갈아신는 것을 빤히 쳐다봅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자 밖에는 카메라 기자들이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자 한 명이 소리칩니다. 스튜어디스와 함께 포즈를 취해주세요. 그는 얼떨결에 그 스튜어디스와 나란히 사진에 찍힙니다. (이 사진은 르몽드 신문에 게재되고 한참 후 이 신문 때문에 그는 아내와 작은 소동을 벌입니다.)



피에르가 그 스튜어디스를 다시 만난 것은 리스본의 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입니다. 그녀는 무거운 짐을 들고 있습니다. 피에르의 방은 3층이지만 그는 여자가 묵는 8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그녀의 방이 813호인 것을 알게 된 피에르는 호텔에서 내선으로 전화를 겁니다. 본격적인 작업의 시작입니다.


피에르는 원래 다음날 리스본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스튜어디스를 만나기 위해 일정을 연장합니다. 두 사람은 바에서 저녁 내내 대화를 나누고 곧장 호텔 방으로 향합니다. 마침 부기장과 헤어진지 3개월쯤 지나 만나는 남자가 없던 스튜어디스는 다정한 피에르를 통해 외로움을 달랩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쪽지를 피에르에게 건네주고 이제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불륜 행각이 시작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때 처음 공개되는데 '니콜'이네요. 프랑수아즈 돌레악이 연기합니다.


<부드러운 살결>


두 사람은 틈틈이 파리에서 만나지만 보는 눈이 많은 파리는 밀회의 장소로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피에르는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헹스(Reims)에서 열리는 앙드레 지드 관련 영화의 상영회에 강연자로 1박 2일 일정으로 참석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목적은 니콜과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일이 꼬여버립니다.


피에르가 지방 도시 헹스에 온다는 소식에 헹스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극장에 집결합니다. 피에르는 니콜과 단둘이 만날 시간도 없이 저녁 만찬부터 리셉션까지 얼굴마담처럼 끌려다녀야 합니다. 니콜은 혼자 극장을 겉돌다가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옵니다. 가까스로 짬을 내 호텔 방으로 찾아온 피에르에게 니콜은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 온 거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겨우 니콜을 달랜 피에르는 그녀를 데리고 무작정 헹스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갑니다. 하지만, 그때 피에르의 아내 프랑카는 파리로 돌아오지 않는 피에르를 의심합니다. 결국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한 프랑카는 분노하고 이제 이야기는 겉잡을 수 없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살결> 촬영 현장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영화는 트뤼포 감독이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과의 긴 인터뷰를 막 끝낸 이후 만들어졌습니다. 트뤼포는 히치콕으로부터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았고 이를 실험해보고 싶었겠죠. 그래서 이 영화에는 히치콕식 서스펜스를 흉내낸 장면이 제법 있습니다.


우선, 피에르와 니콜이 헹스에 도착했을 때 관객은 니콜 때문에 안절부절하는 피에르를 보게 됩니다. 이를 알 리 없는 피에르의 동료는 자꾸만 함께 술을 마시자는 둥, 파리로 태워달라는 둥 속 모르는 소리를 늘어놓죠. 관객 역시 피에르만큼 애가 탈 것입니다.


또, 피에르가 만찬에 참석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웨이터가 그에게 다가와서 한 아가씨가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피에르는 찾아온 여자가 니콜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서 당혹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찾아왔다는 그 여성은 책에 사인해 달라는 그의 팬 중 하나였죠. 이 또한 히치콕식 서스펜스가 사용된 장면입니다.


<부드러운 살결>


히치콕은 관객이 알고 영화 속 인물이 모를 때 서스펜스가 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영화는 클로즈업을 곳곳에 배치하는 빠른 편집으로 관객이 숨죽이며 영화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다른 트뤼포 영화보다 이 영화는 많은 쇼트를 촬영해 정교하게 편집한 영화입니다. 편집을 맡은 클로딘 부셰는 촬영분을 일일히 분할해서 리듬을 만들어냈다고 하네요. 덕분에 <부드러운 살결>은 감각적이고, 속도감 있고, 감수성이 살아 있는 무척 프랑스적인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사건들은 대부분 트뤼포가 겪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합니다. 피에르-니콜-프랑카의 관계는 트뤼포와 그의 연인 릴리안 다비드, 그리고 트뤼포의 아내 마들렌 모르겐슈테른의 관계를 연상시킵니다. 트뤼포는 1957년 <400번의 구타>를 촬영하기 전 영화 제작자의 딸인 마들렌과 결혼해 1963년 <부드러운 살결> 촬영이 끝난 후 헤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그 헤어진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살결>


1959년 트뤼포는 릴리안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열애는 4년 동안 지속됐습니다. 릴리안의 집은 트뤼포가 마들렌과 함께 살고 있던 생 페르디낭 가와 교차하는 콜로넬 몰 가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뤼포와 릴리안은 주말에 파리를 벗어나 지방 시네클럽을 방문하거나 영화제에 체류하며 시간을 보냈는데요. 영화 속 헹스 에피소드는 이때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피에르가 니콜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헹스에 가는 것처럼, 트뤼포는 그의 출세작인 <400번의 구타> 상영회를 위해 르망에 갈 때 릴리안과 동행했습니다. 트뤼포가 릴리안을 데려간 명분은 아직 어린 장 피에르 레오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릴리안은 훗날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호텔 방과 영화 상영관이 위치한 작은 광장을 향해 난 길뿐이었어요. 표가 매진돼 영화를 볼 수조차 없었죠." 영화와 거의 똑같은 상황이었나 봅니다. 트뤼포는 그날 안절부절했던 경험을 시나리오로 옮긴 것입니다.


트뤼포는 마들렌과 이혼할 정도로 릴리안과 격렬한 관계였지만 결말은 영화처럼 흐지부지됐습니다. 영화에서 피에르는 니콜과 살 집을 고르는 등 혼자만의 꿈을 꾸지만 니콜은 피에르에게 단호하게 말하죠. “나는 당신이 결혼까지 생각하는 줄 몰랐어. 난 그저 당신과 가끔 만나는 관계를 상상했을 뿐인데.” 실제 릴리안 역시 트뤼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1963년 10월 19일 미셸 드레퓌스라는 남자와 결혼합니다. 트뤼포 입장에선 피에르처럼 아내와 연인, 두 여자를 모두 잃은 상실감이 컸을 듯합니다. 영화는 피에르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민하게 묘사한 뒤 그의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트뤼포 자신이 느꼈던 절망감을 드러내줍니다.



<부드러운 살결>


영화의 결말은 충격적입니다. 맥락상으로는 개연성이 떨어집니다만 효과는 강렬합니다. 프랑카는 피에르가 자주 가는 식당을 찾아 그를 장총으로 쏴 죽입니다. 이 결말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입니다. 1963년 6월 26일 파리의 프티 셰브로라는 식당에서 41세의 여성이 두 발의 총을 쏴 남편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애초 영화의 전제는 이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후 트뤼포 영화에는 이처럼 남자를 죽이는 여자가 종종 등장합니다. <비련의 신부>(1968)에서 줄리(잔 모로)는 결혼식 날 신랑을 죽인 남자들을 하나씩 찾아가 죽이고, <나처럼 예쁜 여자>(1972)에서 카미유(베르나데트 라퐁)는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여러 남자를 죽입니다. <이웃집 여인>(1981)의 마틸드(파니 아르당)는 베르나르(제라르 드파르디외)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왼쪽)와 마들렌 모르겐슈테른


<부드러운 살결>이 처음 공개됐을 때 평론가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주로 중하층민을 그렸던 트뤼포가 처음으로 부유한 중산층을 그렸는데 내용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과연 영화는 지금 다시 보게 되면 감정 묘사가 지루하게 반복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요즘 시점에선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영화입니다.


다만, 트뤼포는 친구인 헬렌 스코트에게 “이것은 정숙하지 못하고 외설스럽고 대단히 슬프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밈없는 영화”라고 말했는데, 이중 적어도 '꾸밈없는 영화'라는 문장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이처럼 솔직한 영화는 또 없을 듯합니다. 트뤼포라는 사람이 얼마나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남자였는지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드러운 살결>


트뤼포는 자기 자신을 투영해 피에르 라쉬네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중산층의 안락한 생활을 하는 그는 매사 우유부단하고 자신만의 몽상에 빠져 있습니다. 큰 성공으로 사회적 명성을 얻었지만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고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낯선 여성에게 쉽게 마음을 빼앗기고 정신을 놓을 정도로 매달립니다. 영화는 심지어 피에르의 여성 다리에 대한 페티쉬까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피에르는 니콜에게 청바지 대신 치마를 입어달라고 말하는가 하면, 그녀가 신고 있는 스캉달 상표 스타킹을 쓰다듬기도 합니다. 창작자가 이 정도로 솔직하게 발가벗듯 자신의 성격과 취향을 반영한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프랑수아즈 도를레악


피에르가 첫 눈에 반하는 니콜 역을 맡은 프랑수아즈 도를레악은 트뤼포가 사랑한 여자 중 한 명입니다. 트뤼포는 그녀를 1963년 3월 유니프랑스 영화사가 주관한 텔아비브 여행 도중 처음 만나 니콜 역할을 제안했습니다. 크리스찬 디오르 모델이던 21세의 도를레악이 1960년 가브리엘 알비코코 감독의 <황금의 눈을 가진 여인>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한 뒤 <리오의 사나이>(1964) 등에 출연하며 프랑스 영화의 기대주로 평가받던 시점이었습니다. 도를레악은 처음엔 지나치게 몰인정한 니콜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좀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촬영 과정에서 트뤼포는 도를레악에게 끊임없이 구애했고 두 사람은 잠시 연인 관계가 되었지만, 이후 그녀가 선을 그어 두 사람은 우정 관계로 남았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궁지>(1965) 등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이어가던 도를레악은 자크 드미 감독의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에서 카트린 드뇌브와 함께 자매로 출연해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그녀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1967년 고작 스물 다섯의 그녀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과속하다가 차가 뒤집혀 화염에 휩싸였는데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맙니다. 훗날 트뤼포는 <아메리카의 밤>(1973)에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 사고를 등장시켜 그녀를 추모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오른쪽)과 프랑수아즈 도를레악


영화 속에 피에르가 앙드레 지드의 말을 인용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을 찾고 있는 자들은 믿되, 진실을 찾았다고 말하는 자는 의심하십시오. 모든 걸 의심하되, 자기 자신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의 치부를 대중을 향해 다 털어놓은 <부드러운 살결>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영화를 만들 때 트뤼포 감독은 아마도 지드의 이 말을 계속해서 곱씹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부드러운 살결 ★★★☆

빠른 쇼트 전환 편집이 돋보이는 단순하지만 섬세한 불륜 치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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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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