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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팬들을 몰고다니는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강점은 지적인 스토리텔링과 리얼리티에 기반한 테크놀로지 활용에 있다. 그는 컴퓨터그래픽 대신 아날로그 방식의 촬영을 고집하고, 비선형적인 플롯으로 시공간을 뒤틀고, 상상의 공간에서도 물리 법칙을 적용해 픽션도 실제처럼 믿게 만든다.


<메멘토>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그의 영화에는 대개 결핍이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감독은 그들을 치밀한 플롯 안에 가두고는 빠져나오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는 마치 '시네마 데우스' 즉, 영화의 창조주처럼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 있고,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미로를 헤맨다. 워낙 플롯이 탄탄하고 세계관이 독특해 아무리 연기 잘하는 배우라도 놀란의 작품에선 영화를 압도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전설적인 '조커' 히스 레저만이 두각을 나타냈을 뿐이다.



<덩케르크>는 영화 작가로서 놀란의 야심이 정점에 달한 작품이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이 영화에서 그는 거대한 스크린에 제2차 세계대전의 무대인 프랑스 북부 됭케르크 해안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감독은 당시 실제로 쓰인 전투기, 구축함, 어뢰제거선, 병원선, 어선, 요트 등을 공수해 하늘과 바다에 띄우고, 무려 1500명에 가까운 엑스트라를 사병으로 출연시키며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덩케르크>를 만들며 놀란이 참조한 영화는 최근 전쟁영화에서 거의 교본 역할을 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서부전선 이상없다> <불의 전차> <해외 특파원> <알제리 전투> 같은 고전영화들이다. 그래서 <덩케르크>에는 피튀기는 근접촬영, 죽고 죽이는 혈투, 물량공세 등이 없고, 대신 아날로그적 물성과 고전 문법에 충실한 서스펜스만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디지털에 둘러싸이게 될수록 인간은 좀더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고 했는데 <덩케르크>는 이러한 아날로그적 욕구를 파고든다. 67년전 역사 현장의 정확한 고증과 옛 전투기와 구축함이 뿜어내는 굉음은 요즘 디지털 영화에서 볼 수 없던 것이라서 오히려 새롭다.


블루스크린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실물을 재현한 뒤 촬영한 이 영화의 목적은 가짜 스펙터클이 아닌 진짜 스펙터클을 실현함으로써 관객을 드라마타이즈된 가짜 전쟁이 아닌, 진짜 역사적 상황의 한복판으로 데려오는 데 있다. (한스 짐머의 세련되게 건조한 음악 역시 몰입을 돕는다. 확실히 이 영화의 사운드는 차원이 다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영화 제작자인 기 드보르가 '스펙터클'이라는 용어를 통해 시각의 무분별한 소비가 비인간성을 초래한다며 비판한 것을 떠올려보면 놀란의 야심은 그 너머에 있는 듯하다. 그는 군인이 전쟁이라는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존 서사에 최적화된 형식으로 아날로그 스펙터클을 택한 것이다.



<덩케르크>의 스펙터클은 여백의 활용에서 더 극대화된다. 일렬로 늘어선 수십만명의 사병들이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해안은 광활하다 못해 공허하게 보이고, 영국군 전투기 스핏파이어와 독일군 전투기 BF-109가 공중전을 벌이는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다. 드넓은 공간은 연합군 병사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바다뿐인 현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들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독일군 병사들로부터 하늘과 배의 바깥에서 위협받지만 진짜 적은 지금 전쟁에서 패해 도망가고 있다는 자괴감이다. 이처럼 스펙터클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스펙터클 구현을 위해 서사를 거의 포기한 것은 논란으로 남을 듯하다. 영화는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을 배제한 채 상황만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배우들은 그 어떤 놀란 영화에서보다 더 존재감이 없다. 해안, 바다, 하늘이라는 세 가지 무대를 교차하며 진행되는 영화는 해안의 사병 토미(핀 화이트헤드)와 해군 중령 볼튼(케네스 브래너), 바다의 민간인 선장 도슨(마크 라일런스), 하늘의 조종사 파리어(톰 하디) 등이 각각 에피소드의 길잡이 역할을 하지만 그들이 극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기에 관객은 산발적인 서사 경험만을 하게 된다.


이처럼 감독이 자신의 최대 장기 중 하나인 풍부한 스토리를 포기한 것은 아마도 많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관객은 다큐멘터리인 듯 아닌 듯 정의하기 힘든 영화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영화에 대한 호불호도 그 어느 때보다 극과 극으로 갈릴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엔딩에서 귀환한 병사들이 받는 환대를 지나치게 부각함으로써 인간의 생존 의지 자체를 스펙터클화한 의도 이전에 영국판 애국심 고취 영화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놀란은 <덩케르크>에 대해 "영화적 경험의 집합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절반만 맞는다. 스펙터클로서의 영화를 아날로그적 감성을 구현하는 데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스토리에서 오는 쾌감 역시 영화적 경험의 일부라는 점에서는 틀리다. 영화가 극장이라는 공간을 시간이동 장치로 쓸 수 있다고 믿는 관객에게 <덩케르크>는 걸작일 테지만 영화가 상상의 공간에 빠져들게 만드는 꿈이라고 믿는 관객에게 <덩케르크>는 몰입하기 힘든 가상현실 콘텐츠로 보일 것이다.


덩케르크 ★★★★

서사를 포기하고 스펙터클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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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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