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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이 그대로 베낀 영화, <중경삼림>이 참조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모티프가 된 영화… 바로 존 카사베츠 감독의 1980년작 <글로리아>입니다. 감독의 아내이자 뮤즈인 지나 로우랜즈가 전직 마피아의 정부로 원조 걸크러시 매력을 보여준 작품이죠. <원더우먼> <악녀> 등 여성 원톱 액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 <글로리아>는 반드시 다시 봐야 할 필요가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브롱스 지방을 항공 카메라로 비춥니다. 색소폰이 다소 과한 음악이 자유의 여신상, 양키 스타디움 위로 흐르고 시간은 저녁에서 아침으로 넘어갑니다. 버스가 정류자에 도착하고 푸에르토리코계 한 여성이 식료품을 담은 가방을 발로 뻥 차며 내리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버스에서 내린 여자의 이름은 제리(줄리 카르멘).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이지만 영화는 꽤 긴장감 있게 그녀를 따라갑니다. 일종의 맥거핀이죠.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정신이 나간 듯한 이상한 남자가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이 남자 역시 맥거핀입니다. 기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아파트의 전반적인 느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건드리지 말아요." 이렇게 말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습니다.



집 안에는 남편 잭(벅 헨리), 큰 딸과 여섯살 난 막내 아들이 제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잭은 아내가 들어오자마자 당장 떠날 준비를 하자고 합니다. 먹을거리 겨우 사왔는데 갑자기 떠나자니 제니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설명할 겨를이 없습니다. 왜 떠나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들 필(존 아담스) 뿐입니다. 아, 물론 관객도 모릅니다.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일까요? 영화는 불친절하게 단지 느낌만으로 긴박감을 조성합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잭과 제리는 허겁지겁 권총을 꺼내 들고 문 앞에 섭니다.


문을 열자 한 여자가 서 있습니다. 잭과 제리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칩니다. 그녀의 이름은 글로리아(지나 롤랜즈)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제니의 친구입니다.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가 등장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겠군요.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커피 좀 빌리러 왔는데" 이렇게 말하는 글로리아에게 잭은 지금 상황을 털어놓습니다. 마피아의 회계담당 조직원이었던 그는 돈을 빼돌린 비밀장부를 FBI에 신고한 뒤 마피아에게 쫓기는 신세입니다. 아하, 그래서 그렇게 아침부터 정신없이 도망가려 했던 거군요. 그렇다면 아파트 1층에 있던 덩치 큰 남자들이 조직원이겠네요.



잭과 제니는 글로리아에게 필을 맡아달라고 부탁합니다. 필에게 비밀장부를 건네고는 남자답게 꼭 지키라고 말하는 장면은 비장미가 넘칩니다. 하지만 아이를 싫어하는 글로리아는 썩 내키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필은 왜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지요.  마지못해 승낙하고 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순간, 밖에서 폭발음이 들립니다. 영화는 잭의 가족의 몰살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글로리아의 대사로 암시만 합니다.


"네 가족은 전부 죽었어. 우리도 여기서 나가야 돼."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글로리아와 필이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쫓기는 과정입니다. 사실상 이것이 스토리의 전부입니다. 한때 마피아 중간보스 탄지니의 정부였던 글로리아는 마피아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망가는 곳마다 조직원들이 쫓아옵니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웁니다. 필은 글로리아에 의지하지만 고아가 된 자신도 이제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 과정에서 중년 여성과 꼬마 소년은 서로를 점점 이해하게 됩니다. 아이를 싫어하던 글로리아는 모성애 비슷한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천방지축이던 필은 남자가 되어갑니다. 두 사람은 가족이자 친구 혹은 연인같은 관계로 발전합니다.


쫓고 쫓기는 단조로운 구성, 지나치게 물러터진 듯한 뉴욕 마피아 등 전반적으로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세련된 영상, 지나 로울랜즈의 임팩트 있는 연기, 러닝타임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 등이 영화를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걸작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1980년 당시에 이런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글로리아>에서 눈여겨 볼 4가지 포인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원조 걸크러시,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캐릭터


"아줌마 진짜 터프해."


마피아 조직원 네 명을 순식간에 권총으로 해치워버린 글로리아를 보며 필이 하는 말입니다.


치렁치렁 긴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한 손에는 권총이 든 작은 핸드백, 다른 손에는 여행가방을 든 그녀는 필과 함께 도피행각을 벌입니다. 그녀는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시종일관 차분하고 냉정합니다.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은행에서도, 호텔에서도 조심합니다. 여행가방은 절대 풀지 않습니다. 누구도 믿지 않고 수상쩍은 사람이 있으면 거침없이 총을 쏩니다.


그녀는 늘 당당합니다. 오랜 친구였던 마피아 조직원이 "무리하지 말고 필을 넘기라"고 충고하자 "내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아"라고 일축하고, 큰 돈을 턱턱 쓰면서 택시기사에겐 "잔돈은 가져"라고 말하고, 식당 웨이트리스에겐 "가봐"라고 소리칩니다.


처음에 그녀는 이런 상황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난 아이들이 싫어"라고 말할 정도로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갑작스럽게 필의 보호자가 된 그녀는 아이를 떼어놓기 위해 티격태격하다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난 평생 돈을 모았어. 지금 난 돈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친구도, 고양이도 있어. 얼굴에 구멍 뚫려서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녀는 고아가 된 필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글로리아는 탠지어와 사귈 때 쓰던 맨해튼의 빈 아파트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TV에선 마피아의 일가족 살인사건과 함께 소년의 납치사건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마침 사진도 찍혀 신문에 필의 얼굴과 글로리아 스웬슨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이때 글로리아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 없이 차분합니다. 이 장면에 대사는 없지만 "젠장, 인생 종치게 생겼군.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잖아." 뭐 이런 표정입니다.


그녀를 강인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모성애 비슷한 감정일 것입니다. '유사 모성애'라는 모티프는 요즘 기준으로는 조금 식상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글로리아의 당당한 걸크러시 매력을 반감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는 필에 대해 묻는 남자에게 "나랑 잔 남자 중 가장 근사해"라고 말하고, 창문 앞에 서 있는 필에겐 "너 그러다 총 맞아 죽기 좋겠다"고 무심하게 내뱉습니다.



고급 호텔과 허름한 호텔을 가리지 않고 전전하던 그녀는 어디를 가든 마주치든 마피아 끄나풀들에 지쳐서 작전을 바꿉니다. 탠지어를 직접 만나 비밀장부를 돌려주고 협상하기로 한 것입니다. 본진을 쳐들어가 담판을 짓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짜는 여자,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마피아는 그녀가 찾아오자 예우를 갖춰 대접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미 마피아를 배신했으니 장부를 돌려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그러자 당당한 글로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규칙 알아요. 빨리 나를 죽여요."


<선셋대로>의 글로리아 스완슨


글로리아의 성은 스웬슨입니다. 그런데 글로리아 스웬슨(Gloria Swenson)이라는 이름은 할리우드의 명배우 글로리아 스완슨(Gloria Swanson)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아마도 영화를 만든 카사베츠 감독은 <선셋 대로>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이 영화에서 카리스마 가득한 노마 데스몬드를 연기한 스완슨에서 영감을 받아 캐릭터를 구축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스완슨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스타이자 패션 아이콘이었습니다. 세실 B. 드밀과의 작업에서 특히 빛났는데요. 그녀의 활약으로 인해 제1회 아카데미 영화상에 여우주연상 부문이 만들어져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습니다. 스완슨은 정치적으로는 견실한 공화당원으로 1980년엔 레이건 선거캠프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강한 여자의 대명사였던 셈입니다.


알고 보면 인생에 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여자, 그녀가 애초에 아이를 싫어하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여자, 리볼버와 매그넘을 양손에 들고 동시에 쏘는 여자, 글로리아는 모든 터프걸들의 원조라고 할 만합니다. 지나 로울랜즈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글로리아를 최고의 여성 히어로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존 카사베츠 감독


2. 다시 봐도 세련된 존 카사베츠 스타일


12편의 영화를 남기고 작고한 존 카사베츠 감독은 뉴욕 독립영화계의 대부입니다. 그는 할리우드식 규범적 영화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날것 그대로의 영화를 찍으려 했습니다.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는 즉흥적인 연출, 인간의 이중성, 강렬한 여성 캐릭터 등이 그의 영화의 특징입니다.


<글로리아>는 다른 카사베츠 영화들과 스타일이 많이 다릅니다만, 그래도 그가 중시했던 몇 가지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철저하게 로케이션 촬영을 했습니다. 카사베츠는 현장성을 중시했고 그래서 영화에서 생생한 뉴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겉과 속이 다른 도시와 인물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뉴욕은 화려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민자들과 갱들의 도시이고, 그 속에 사는 인물들은 왜곡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또 웨이트리스나 은행원 등 삶의 권태에 찌들어 있습니다. 셋째, 인물들이 실제 존재할 것처럼 생생합니다. 글로리아와 필은 모두 절박한 상황에 처한 예측불가능한 캐릭터입니다. 그들은 매순간 간절해서 모든 행동들에 이유가 있습니다. 서로를 거부하던 두 사람은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인상적인 대사가 등장하는 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글로리아는 필과 도주하기 전 한 공동묘지에 들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필의 가족이 묻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가족을 만나게 되나요?"


필이 묻자 글로리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그냥 네 가족이 여기 묻혀 있다고 상상해. 죽은 자들이야 늘 뭉쳐 다니잖니. 어디든 상관없어. 아무거나 골라서 무릎 꿇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


죽은 자의 시신이 여기 있는지 없는지는 의미가 없고, 다만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뜻일 겁니다. 이 장면은 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감독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그전까지 남성이 해왔던 역할을 여성이 맡았고, 전형적인 갱스터나 누아르와는 또다른 새로운 장르영화입니다. 이런 사실들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마음 그 자체일 것입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위 묘지 장면을 반복합니다. 피츠버그에 도착한 필은 글로리아가 죽은 줄 알고 공동묘지에 찾아가 아무 비석에나 대고 기도를 합니다.


"안녕 글로리아, 잘 있죠?

보고 싶어요. 죽은 거 알아요.

죽은 거 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나 피츠버그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아멘."


이제 필도 글로리아의 방식을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관객 역시 카사베츠의 스타일이 그리 낯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겠죠.


또 이 장면은 필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필은 성장해 갑니다. 초반부에 "내가 남자야. 아줌마는 남자 아니야. 내가 남자라고!"라며 소리를 지르던 필은 입만 살아있던 꼬마였습니다만, 마지막 장면에선 진짜 남자처럼 보입니다. 필이 남자가 된 과정에는 글로리아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사 모성애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카사베츠는 늘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파헤치기를 좋아했다는 점에서 강인하게만 보였던 글로리아에게 숨겨진 엄마같은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존 카사베츠 감독


원래 <글로리아> 시나리오는 카사베츠가 직접 연출하지 않고 콜롬비아 픽처스에 팔려고 쓴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리아를 연기하고 싶어한 아내 지나 로울랜즈가 남편에게 감독을 맡아달라고 졸라서 결국 연출까지 하게 됐습니다. 카사베츠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980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돼 루이 말 감독의 <아틀란틱 시티>와 함께 황금사자상을 공동수상했습니다.


<그림자들>


카사베츠는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TV 드라마에 주로 출연해오다 영화로 보폭을 넓혔는데 <거리의 범죄>(1956), <더티 더즌>(1967), <악마의 씨>(1968) 등에 출연했습니다. 연출을 하고 싶어 공부하다가 첫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작품이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돼 무려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습니다. 유럽에서 ‘미국판 누벨바그’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떤 이 영화는 카사베츠의 데뷔작인 <그림자들>(1959)입니다. 뉴욕 젊은이들의 다양한 일상을 즉흥 연기와 핸드헬드 카메라로 포착한 작품으로 뉴욕 독립영화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영향 아래 있는 여자>

<오프닝 나이트>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해 재즈 영화 <투 레이트 블루스>(1961), 장애아 학교 이야기 <기다리는 아이>(1963) 등을 만들지만 답답한 제작 시스템을 견디지 못하고 독립영화계로 복귀해 <얼굴들>(1968), <남편들>(1970), <영향 아래 있는 여자>(1974), <오프닝 나이트>(1977) 등 걸작을 계속해서 만듭니다. 이 영화들은 중산층, 삶과 죽음, 분열된 자아 등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얼굴들>은 카사베츠의 아내 지나 로울랜즈와 함께 작업한 첫 영화이기도 합니다. 로울랜즈는 이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독립영화인지라 투자가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카사베츠는 꽤 인기 있는 배우였습니다. 출연료를 모아 영화 제작비로 충당했다고 합니다.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

<사랑의 행로>


스크루볼 코미디 <별난 인연>(1971), 갱스터 누아르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1976) 등 장르영화도 만들었고 평가도 좋습니다. 특히 후자는 그를 흠모하던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 만들어서 더 가치가 높습니다. <글로리아> 역시 이 작품을 찍어본 경험 덕분에 가능한 기획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의 실질적인 유작인 <사랑의 행로>는 카사베츠와 로울랜즈가 공동 주연을 맡아 열연한 작품입니다. 미국인의 숨겨진 광기를 드러냈다는 호평 속에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습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존 카사베츠의 아들 역시 영화감독이자 배우입니다. <존 큐>(2002), <노트북>(2004), <마이 시스터즈 키퍼>(2009), <아더 우먼>(2014) 등을 만든 닉 카사베츠입니다. <노트북>에는 엄마인 지나 로울랜즈가 레일첼 맥아담스의 노년 역으로 출연해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 했습니다.



3. 1980년 뉴욕 골목 구석구석 시간여행


뉴욕이라는 도시를 항공 촬영으로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글로리아와 필이 도망가며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19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한 듯 당시의 뉴욕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줍니다.


맨해튼의 고급 호텔, 브롱스의 싸구려 호텔, 지저분한 지하철, 총격전이 벌어지는 거리, 허드슨강 다리 위 차량 행렬, 대중 식당, 바 등등 치안이 불안하고 거친 뉴욕이라는 도시는 최근의 뉴욕과 너무 달라서 오히려 새롭습니다. 물론 1980년대에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들이 있습니다만, <글로리아>는 과장하기를 싫어한 감독의 스타일 덕분에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사람 많은 지하철 열차 안에서 글로리아와 필이 의도치 않게 헤어진 뒤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 3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피츠버그에서 만나자는 약속 등은 휴대폰이 없던 당시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플롯일 것입니다.



4. 여러 감독들에게 영감을 준 영화


걸크러시 매력 가득한 중년 여성과 소년의 러브 판타지 설정은 1980년 당시에도 굉장히 획기적이었습니다. 41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거두었고, 많은 추종자들을 양산했으며, 후배 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뤽 베송 감독은 남녀 구도만 바꿔 <레옹>(1994)을 만들었고, 왕가위 감독은 글로리아에서 영감받아 <중경삼림>(1994)의 임청하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오프닝 장면도 <글로리아>와 유사합니다. 1999년엔 시드니 루멧 감독이 샤론 스톤 주연으로 아예 이 영화를 리메이크했고요.


<레옹>

<중경삼림>

<울트라바이올렛>

<줄리아>


디스토피아 미래도시가 배경인 커트 위머 감독의 <울트라바이올렛>(2006)에서 밀라 요보비치가 작은 소년과 달리는 장면, 에릭 종카 감독의 <줄리아>(2008)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틸다 스윈턴이 할머니로부터 손자를 납치하는 이야기 구조도 <글로리아>가 모티프입니다. 브라질 영화 <베로니카>(2009)는 주인공을 갱단의 여자친구가 아닌 교사로 바꾸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부모를 죽인 갱단으로부터 학생을 구해내려 합니다.


<친절한 금자씨>


한국 감독 중에도 <글로리아>의 팬이 많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교과서처럼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고백했고,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2005)의 이영애 캐릭터를 만들 때 지나 로울랜즈를 모델로 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 도망다니던 글로리아가 방향을 틀어 마피아 보스의 거처로 직접 쳐들어가는 설정은 이후 많은 갱스터 영화의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글로리아 ★★★★

지나 로울랜즈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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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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