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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최악의 실수로 인생이 황폐화된 남자 리 챈들러(케이시 애플렉)의 이야기다. 여느 영화였다면 ‘그 사건’에서 시간을 멈추거나 최대한 증폭시켰을 테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리에게 닥친 여러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그 사건마저 지나가는 인생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보스턴에서 수리공으로 살아가는 리는 무뚝뚝하고 비사교적인 남자다. 그는 어느날 형 조(카일 챈들러)의 부고를 듣고 일주일 휴가를 내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실제 지명이기도 한 이곳은 매사추세츠주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해안가 마을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킨다. 과거의 리는 세 아이의 아빠로 조의 아들인 패트릭에게도 자상한 삼촌이다. 하지만 현재의 리는 까칠한 모습으로 10대 소년이 된 패트릭(루카스 헤지스)과 티격태격한다. 조는 유언장에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리를 지목해 놓았다. 하지만 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이 도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나뿐인 죽은 형의 부탁을 거절하자니 리의 마음은 괴롭기만 하다.
영화는 리가 고민만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은 자의 삶은 계속된다. 그는 장례식 절차를 위해 이곳저곳을 오가야 하고, 패트릭의 여자친구 고민도 들어줘야 하며, 일자리도 알아봐야 한다. 그렇잖아도 리는 오래 전 ‘그 사건’으로 마음이 불에 타버린 뒤 꾸역꾸역 이런 일들을 하며 ‘억지로 살아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제 그의 삶에 패트릭이라는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평온해 보이지만 패트릭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쉽지 않다. 그는 냉장고를 열 때마다 냉동시킨 아버지의 시신이 떠올라 가슴을 부여잡는다. 패트릭 뿐만 아니라 패트릭의 엄마를 비롯해 영화 속 등장인물 대부분 치유되지 않는 돌덩이 같은 괴로움을 가슴에 쌓아두고 있다. 리의 전처 랜디(미셸 윌리암스)는 리에게 불현듯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리는 그 사과를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렇듯 영화는 가슴 속에 꾹꾹 눌러둔 깊은 상처를 소재로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어둡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눈물을 쏟아내며 슬픔이 너의 인생에 힘이 될 거라고 말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그 대신 이 영화의 미덕은 인생에서 벌어진 어떤 큰 일도 바다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모터를 새로 단 보트처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조용히 설득하는 데 있다. 풍부한 에피소드로 2시간 17분의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영화의 감독 케네스 로너건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소파의 색이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제 친구들이 죽는다고 갑자기 비가 내리지도 않고요.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과 연관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딱 그렇다. ‘그 사건’은 리와 주변 인물들의 인생을 황폐하게 망쳐놓았지만 그렇다고 이 도시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때론 황량해 보이고 때론 따뜻해 보이는 도시다. 겨울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날이 풀리면 사람들은 배 타러 간다. 리와 패트릭이 배를 타고 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영화의 시작과 끝은 무척 상징적이다.
벤 애플렉의 동생 케이시 애플렉이 리 역할을 맡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해낸다. 이 영화에서 그의 허망한 듯한 표정은 단연 발군이다. 그는 형과 함께 <굿 윌 헌팅>(1997)에 출연할 정도로 오랜 연기 경력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빛을 볼 기회가 적었다. 이 영화로 각종 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다만 그는 2010년 다큐멘터리 <아임 스틸 히어> 촬영 도중 여성 프로듀서를 성희롱했다는 사실이 다시 알려지며 경력에 오점을 남겼다.
맷 데이먼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감독 케네스 로너건은 전작 <마가렛>(2011)에서 맷 데이먼과 한 팀으로 일한 적 있는데 그때 인연이 이 영화로 이어졌다. 데이먼은 원래 리 역을 맡을 계획이었으나 스케줄 문제로 캐스팅이 바뀌었다.
레슬리 바버가 담당한 음악의 사용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을 과장되게 사용해 미리부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다소 언밸런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예고없이 찾아온 고통.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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