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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의 계절이 돌아왔다. 2일 나란히 개봉한 <컨택트>와 <라이언>을 시작으로 15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2일 <문라이트>, <핵소 고지>, 28일 <사일런스>, <러빙> 등 올해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작들이 줄줄이 개봉 대기중이다. 지난 1년간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리우드가 공인한 작품들이니만큼 2월엔 이 영화들과 함께 해도 좋겠다.
지난 주 <컨택트>에 이어 오늘 소개할 영화는 <라이언>이다. <컨택트>가 문이과 통합과정을 공부하는 듯 지적인 영화라면 <라이언>은 아동 입양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앞서 열거한 오스카 후보작들 중 <핵소 고지>와 함께 가장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영화이면서 아카데미가 전통적으로 사랑하는 실화 바탕의 휴머니즘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야기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배우들의 호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실제 사연이 주는 울림이 감동을 이끌어낸다.
영화는 인도 출신 호주인 사루 브리얼리가 쓴 자전적인 회고록 [A Long Way Home]을 원작으로 한다. 1986년 5살 때 인도 북부의 칸드와 지방에서 길을 잃고 7600킬로미터 떨어진 콜카타로 보내진 그는 이듬해 호주 타즈매니아의 한 백인 가정에 입양돼 자랐다. 성인이 된 후 남들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그는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고향 찾기에 나서는데 구글 어스 덕분에 기적적으로 어릴적 뛰어다니던 마을을 발견한다. 2012년 그가 25년만에 고향을 방문해 친엄마를 만난 사연은 전세계에 뉴스로 다뤄질 만큼 화제였다. 한국에서도 뉴스 뿐만 아니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는 사루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그대로 따라간다. 길 잃은 어린 사루(써니 파와르)와 뿌리를 찾아 헤매는 성인 사루(데브 파텔)를 러닝타임의 절반씩 배치해 감정선의 흐름이 단절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호주에서 광고를 연출해온 가스 데이비스 감독은 따뜻한 색감의 인도와 창백한 느낌의 호주를 대비하고 CF 화면 같은 영상미를 적절히 활용해 동화 같은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드는데 주력한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영화인 <라이언>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촬영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줬다.
영화에서 눈여겨볼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슬픔과 공허함, 간절함 등 감정을 드러내는 배우들의 풍부한 표현력 덕분에 영화는 생기가 넘친다. 어린 사루가 기차 안에 갇혀 소리치는 장면, 성인이 된 사루가 구글어스를 보며 고향을 상상하는 장면은 섬세한 연기와 심도 깊은 영상, 에너지 넘치는 편집이 어우러져 몰입감이 상당하다.
성인 사루 역의 데브 파텔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그는 이 영화의 주연급이지만 경쟁이 치열한 주연상 대신 전략적으로 조연상 부문에 신청했다.) 인도 출신 영국인 파텔은 18살 때인 2008년 데뷔작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깜짝 주연을 맡으며 얼굴을 알린 뒤 2016년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 역을 맡은데 이어 이번엔 인도 입양아 역을 맡아 영미권 영화의 인도 전문 배우로 떠올랐다.
호주인 엄마 수 역을 맡은 니콜 키드먼은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세 번 지명돼 한 번 수상한 적 있는 그녀가 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루에게 시종일관 천사 같은 미소를 짓던 수는 어느날 자신이 입양을 선택한 속내를 털어놓는데 진심이 전달되는 그 장면의 연기는 33년차 배우의 내공이 느껴진다.
길을 잃고 오갈 곳이 없던 소년이 속깊은 성품 덕분에 역경을 딛고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다는 동화 같은 사연은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와 희망을 준다. 불우한 환경에 놓인 소년의 현명한 모험담을 지칭할 때 흔히 '디킨스식 스토리'라는 표현을 쓰는데 <라이언>의 사루 역시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닮았다는 점에서 디킨스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영화는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성공적인 입양 사례라는 점에서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 영화는 인도를 기회가 없는 땅으로, 인도에서 벗어난 사루를 시혜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국도 지난 50년간 무려 17만명을 해외로 입양보내 아동수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기 때문인지 영화의 선한 의도가 마냥 편안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화는 사루와 함께 현실 부적응자인 만토쉬(디비안 라드바)를 등장시켜 실패한 입양도 있다는 쪽으로 균형을 맞추려 하지만 만토쉬는 호주인 부부의 너그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소모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한국영화에서도 해외입양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다. 멀게는 1966년 4살때 스웨덴으로 입양된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친모를 찾아 한국에 오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부터 1979년 5살때 미국으로 입양된 아들이 22년만에 사형수가 된 친아버지를 찾는 <마이 파더>(2007), 강제로 미국에 입양되는 소녀의 이야기 <바비>(2011),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미국으로 입양된 쌍둥이 자매가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는 <트윈스터즈>(2015)까지 다양하다.
해외로 나간 한국계 입양아들은 프랑스에서 장관을 지낸 장 뱅상 플라셰처럼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이는 극히 드물고 실상은 현지에서 버림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 중 1만 8천명은 시민권을 얻지 못해 추방될 상황이라는 통계도 있다. 보내는 것만큼 관리가 중요한 것이 해외입양이다. <라이언>이 보여주는 선의의 부모는 가장 이상화된 사례일 뿐이다.
연출, 연기, 촬영, 음악 등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수작 <라이언>이 보여주는 기적 같은 판타지에 감동하되 다만 영화가 끝난 뒤엔 세계에서 아동 해외수출이 가장 많은 나라에 살고 있는 관객으로서 주위를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PS) 데브 파텔이 사자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고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에는 제목과 달리 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이 '라이언'인 이유는 영화의 후반부에 깜짝 반전처럼 밝혀진다.
라이언 ★★★☆
기적의 환희를 눈부시게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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