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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다. 개봉 첫 주 두 배 차이로 벌어졌던 두 영화의 관객 수가 설 연휴를 지나면서 뒤집어졌다. 일일 관객 수에서 <공조>는 <더 킹>을 점점 따라붙더니 26일 목요일 기어이 역전시킨 뒤 격차를 벌렸다. 30일 월요일에는 <공조> 76만명, <더 킹> 43만명으로 오히려 2배 가까이 벌어졌다. 전체 관객 수도 31일까지 <공조> 485만명, <더 킹> 441만명으로 이제 <공조>가 앞선다.
왜 <더 킹>이 아닌 <공조>가 관객의 선택을 받았을까? 두 영화의 비교를 통해 5가지 이유를 살펴봤다.
<공조>
<더 킹>
1. 편안한 코미디 vs 진지한 블랙코미디
<공조>는 예상 가능한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 편안한 액션 코미디다. 운전에 비유하면 직진하는 고속도로 같은 영화다. 중간에 휴게소 들러 맛있는 간식을 사먹지만 예상경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성격이 다른 두 형사가 티격태격하면서 나쁜 놈을 쫓는다는 전형적인 ‘버디 캅 영화’ 공식대로 진행된다. 한국영화 특유의 먹고사니즘, 서민 가족, 착한 아빠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나쁜 놈은 의심할 바 없이 나쁜 놈이어서 관객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조인다. 복잡한 이야기는 최대한 생략하고 클리셰 위주로 편한 길을 가는 영화다.
이에 비해 <더 킹>은 예상하기 힘든 방향으로 급회전하는 블랙코미디다. 직선주로를 달리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우회해 달린다.
영화는 흙수저 검사의 파멸과 복수를 그린다.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지는 않지만 영화가 나쁜 놈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은 한 번 더 생각해야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주인공이 환호할 때 관객은 분개하고 주인공이 곤경에 처할 때 관객은 통쾌해한다. 이 같은 모순적인 반응은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진지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설 연휴 관객은 긴장을 요구하는 우회로보다는 내비게이션이 갖춰진 편안한 고속도로 주행을 택했다.
<공조>
<더 킹>
2. 현실을 잊는다 vs 현실을 떠올린다
<공조>는 현실을 잊게 하지만 <더 킹>은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공조>는 모든 것을 정리하지만 <더 킹>은 질문을 던진다. <공조>의 뒷맛은 깔끔하지만 <더 킹>의 뒷맛은 씁쓸하다. 코미디와 블랙코미디의 차이다.
<공조>는 판타지를 가정한다. 남북한이 공조수사를 하는데 북한 형사가 현빈이라는 것부터 믿기지 않는 판타지다. 애당초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관객은 부담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더 킹>은 리얼리티를 가정한다. 조인성과 정우성의 외모는 현빈 만큼이나 검사에 환상을 갖게 하지만 영화는 전두환부터 이명박까지 뉴스 화면을 삽입해 이것이 현실임을 잊지 말라고 주입시킨다.
건국 이래 가장 추잡한 청와대와 검찰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관객은 설 연휴 만큼은 현실에서 잠시 도피하는 것을 택했다.
<공조>
<더 킹>
3. 영웅 vs 반영웅
(<더 킹> 결말 암시가 들어 있으니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4번으로 건너 뛰세요.)
<공조>의 현빈과 유해진은 관객이 마음껏 감정이입할 수 있는 영웅이다. 현빈에겐 확실한 복수의 이유가 있고, 유해진에겐 따뜻한 마음씨가 있다. 두 사람은 초반에 서로 의심하지만 결국 화해하고 의기투합한다.
현빈과 유해진의 조합은 서로 맡은 분야가 달라 시너지 효과를 낸다. 대사보다 액션 연기가 더 많은 현빈은 마치 <아저씨>의 원빈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영화 속에서 임윤아가 여성 관객의 역할을 대신해준다. 행동보다 말이 더 앞서는 유해진은 <럭키>에서처럼 웃음을 책임진다. 현빈과 유해진은 액션과 코미디로 철저하게 분업해 두 토끼를 잡는다.
이와 달리 <더 킹>의 조인성과 정우성은 선과 악이 모호해서 관객이 마음껏 감정이입하기 힘들다.
두 사람이 잘 나가며 화려한 삶을 살 때 관객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때론 자신의 속물근성을 들킨 것처럼 뜨끔해질 것이다. 둘은 처음에 찰떡궁합이었다가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갈라져 원수가 되는데 이때 관객이 영화의 화자이자 반영웅으로 거듭난 조인성에게 감정이입하고 정우성을 적으로 돌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조인성과 정우성은 배우로서의 매력이 비슷하다. 둘 다 카리스마 있고 기품이 있어 막 노는 장면에서도 멋짐이 폭발한다. 두 사람의 투 샷이 잡힐 땐 객석이 술렁일 정도다. 그러나 두 배우의 비슷한 매력은 후반부로 가면서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정우성은 조인성의 ‘워너비’에서 ‘에너미’로 변하는데 관객은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선한 이미지를 수정하고 싶지 않다는 고정관념과 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는 괴리감이 두 배우의 시너지 효과를 상쇄한다.
이렇게 <공조>는 서로 다른 매력의 두 배우가 영웅으로 등장해 시너지 효과를 내지만, <더 킹>은 영웅과 악당을 오가는 두 배우의 매력이 엇비슷해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시너지 효과는 약하다.
<공조>
<더 킹>
4. 신선한 반전매력 vs 과감한 영상기법
<공조>의 가장 큰 승부수는 신선한 반전매력이다. 남북의 경찰이 악당을 잡기 위해 사상 최초로 공조 수사한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여기에 북한 경찰을 현빈, 남한 경찰을 유해진이 맡아 묘한 반전 매력이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
남북한이 화해하는 이야기는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시작해 한동안 많이 제작되어 오던 남북 화해 영화는 <의형제>(2010) <코리아>(2012) 이후 자취를 감췄다. <간첩>(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에서 북한은 웃음거리였고, 최근엔 <연평해전>(2014) <인천상륙작전>(2015)처럼 북한을 적으로 묘사하는 영화가 인기였다. 실제 남북한 관계는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공조>를 통해 영화가 먼저 해빙 무드를 조성한 셈이다.
<더 킹>은 학교 싸움 짱이 권력을 갖기 위해 검사가 된 뒤 벌어지는 우정과 배신의 드라마로 홍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승부수는 현실비판과 과감한 영상기법이다. 뉴스릴, 슬로모션, 리와인드, 증강현실 등 현란한 영상을 통해 스토리 전개가 이뤄진다. 구렁이 담 넘듯 술술 이어지는 이런 전개방식은 뛰어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지만 이에 충분한 훈련이 되지 않은 관객들에겐 호불호가 갈렸을 것이다.
<공조>
<더 킹>
5. 관객의 선택 vs 평론가의 선택
<공조>와 <더 킹>에 대한 관객과 평론가의 반응은 엇갈린다.
<공조> 네티즌 평점 8.8, 평론가 평점 4.4
<더 킹> 네티즌 평점 8.4, 평론가 평점 6.6
(네이버 1월 31일 집계)
평론가와 관객의 선택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두 영화에 대한 평가가 왜 다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조>에 박한 평가를 내린 평론가들의 평을 살펴보면 이야기와 캐릭터가 부조화를 이룬다고 지적한 경우가 많다. 비슷한 영화를 적당히 짜깁기해서 섞어놓았다는 것이 낮은 평점의 이유다. <리쎌 웨폰> <영웅본색> 등은 <공조>와 닮은꼴 영화로 언급된다. 기준을 높게 잡고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관객의 평을 살펴보면 스토리에 대한 지적은 많지 않다. 배우들에 대한 만족도와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호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멋있다’, ‘웃기다’, ‘재미있다’ 등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왜 짜깁기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을까?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본다고 하지만 그래도 1년 평균 4~5편 가량이다. 1년에 수백 편씩 보는 평론가들과 다르다. 관객의 영화 선택에서 중요한 지점은 얼마나 다른 영화와 비슷하냐가 아니라 몰입 가능한 캐릭터와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영화적 경험에 있다. 평론가들이 쉽게 간과하는 배우의 매력, 재미 같은 것들도 엄연히 영화의 구성 요소이고 관객은 여기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평론가와 관객 사이의 간극은 아마도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딜레마다. 더 높은 기준을 잣대로 평가를 내리는 평론가의 지적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완성도가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느낌대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객의 평가는 더 재미있는 영화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
지금까지 <공조>와 <더 킹>의 비교를 통해 설 연휴 동안 <공조>가 더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은 5가지 이유를 살펴봤다.
<공조>의 흥행 역전은 놀랍지만 뜻밖의 사건까지는 아니다. 애초 두 영화가 동시 개봉했을 때 <공조>가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코드를 더 많이 집어넣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관객의 습관을 노린 익숙한 기획에 관객이 정확히 반응한 것으로 보면 된다.
한국영화 대목인 설 연휴를 맞아 NEW의 <더 킹>은 스타 파워와 평론가의 우호적 평가, 대규모 물량공세로 초반 시선을 잡아 끈 뒤 그 힘으로 관객 수를 늘려가는 전략이었고, CJ의 <공조>는 초반에 밀리더라도 관객 입소문을 통해 설 연휴 가족영화로 스코어를 쌓아간다는 전략이었다. 모험적인 선택을 한 <더 킹>과 달리 <공조>는 성능 확실한 보완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개봉 3주차에 접어든 현재 두 영화의 전략은 모두 맞아떨어졌다. 설 연휴 내내 엎치락뒤치락 흥미진진한 레이스를 펼치며 두 영화만의 무대를 만든 덕분이다. 기세를 몰아 <공조>가 올해 첫 천만 관객 영화로 등극할 수 있을까? 이는 관객이 <공조>를 <더 킹>의 보완재가 아닌 선두주자로 인식하느냐에 달렸다. <라이언> <조작된 도시> 등 설 연휴 이후 새로운 경쟁작들이 <공조>와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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