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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시즌을 겨냥한 두 편의 한국영화 대작 <밀정>과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가 7일 동시 개봉했다. 여름 ‘빅4’ 대전에 이어 또다른 한국영화 라이벌전이다. 두 영화 모두 충무로 거장들이 오랜만에 내놓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추석 연휴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고 있을 당신을 위해 두 영화를 비교해 봤다.
<밀정>의 경성 거리 세트와 <고산자>의 백두산 천지
140억 vs 120억
<밀정>과 <고산자>의 총제작비 규모다. <밀정>은 조화성 미술감독이 1920년대 상하이와 경성 거리, 기차 내부 세트를 짓는데 공을 들였고, <고산자>는 제주도부터 백두산 천지까지 최상호 촬영감독이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뛰며 그림엽서 같은 사계절 영상을 담는데 신경 썼다. 두 영화 모두 눈이 호강할 만큼 화면이 아름다운데 <밀정>은 영상의 95%가 세트 촬영, <고산자>는 야외 촬영 위주라는 점이 다르다. <밀정>은 쫓고 쫓기는 스릴러인 만큼 콘트라스트가 강한 톤으로 실내에서 밀도 깊은 공간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은 반면, 지도 제작자 김정호의 이야기인 <고산자>에는 맑고 투명한 느낌으로 탁 트인 자연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밀정>의 엄태구와 송강호, <고산자>의 차승원과 김인권
진중함 vs 아재개그
일제강점기 실존 인물인 황옥을 모티프로한 <밀정>은 시종일관 진중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영화다. 군데군데 유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폭소가 터질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2시간 20분의 긴 러닝타임이 때론 갑갑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주인공 이정출(송강호)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감성적인 연출은 배우의 작은 표정 변화까지 세심하게 잡아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돕는다.
반면 <고산자>는 웃기다가 울리는 전형적인 한국영화의 공식을 따라가는 영화다. 박범신의 원작소설이 가진 정통 사극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영화는 중반까지 인물들이 너스레를 떠는 코믹한 장면을 꽤 많이 삽입했다. 웃음폭탄 제조는 조각장이 바우 역의 김인권 몫이다. 그는 차승원과 알콩달콩하며 거의 만담 콤비 수준으로 개그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가끔은 실패한 '아재개그'로 불발탄이 터지기도 한다. 김인권이 대동여지도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내비게이션 아이디어를 내거나 차승원이 '삼시세끼' 드립을 쏟아낼 때는 썰렁 유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한때 강우석 감독의 장기는 <투캅스> 같은 좌충우돌 코미디였지만 <고산자> 속 유머코드는 살짝 유통기한이 지난 듯 느껴진다.
<밀정>의 송강호와 <고산자>의 차승원
‘연기 괴물’ 송강호 vs ‘차줌마’ 차승원
괴물 같은 연기력으로 출연작마다 극찬 받는 송강호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송강호는 방황하는 인물을 연기할 때 더 빛을 발한다. <살인의 추억> <괴물> <변호인> <설국열차> 등에서 그가 허둥지둥댈 때 관객은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인 듯 더 몰입하게 되는데 이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동작과 표정 연기 덕분이다. <밀정>에서도 그는 이중첩자 제안을 받은 뒤 고민하고 방황한다. 기차 안에서 계속 이 칸 저 칸을 오가며 불안해 하는 모습은 시종일관 차분한 공유와 대비를 이루며 그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송강호는 친근한 외모 덕분에 전문직이나 냉혈한을 연기해도 관객과의 거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배우다. <밀정>에서도 그는 일본 경찰로 분해 어쩌면 관객이 감정이입하기 힘든 대상일 수 있었지만 동네 형 같은 이미지로 이를 극복해낸다. 공유와의 연기 호흡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병헌과 친형제처럼 티격태격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가 각성하고 깨어나는 후반부에선 <변호인>의 송우석처럼 강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델 출신 차승원은 지명도에 비해 사실 흥행과는 인연이 없는 배우다. 강우석 감독 역시 처음엔 그를 캐스팅하기 주저하다가 실제 김정호의 외모가 그와 흡사해 결정했다고 한다. 그의 출연작 중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둔 영화는 <신라의 달밤>(2001, 440만명)으로 무려 15년 전 영화다. 그는 그때 만들어진 허우대 멀쩡한 허당 이미지를 계속 이어가 최근엔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차줌마’로 제2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등 차승원은 자신의 외모가 돋보이지 않는 코미디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오히려 그의 빛나는 외모에 방점을 찍은 영화들(<시크릿> <하이힐> 등)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고산자>는 그의 ‘차줌마’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다. 심지어 영화 속에 ‘삼시세끼’가 개그 코드로 담겨있기까지 하다. 김정호가 아닌 예능인 차승원이 자꾸만 보인다는 것은 단점이지만 가볍게 즐길 정도로는 부담없다.
<밀정>의 김지운 감독과 <고산자>의 강우석 감독
워너브라더스의 김지운 vs CJ의 강우석
<밀정>은 영화를 위해 따로 제작된 워너브라더스의 금빛 로고로 시작한다. <해리포터>를 보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한국영화로선 낯선 경험이다. 워너브라더스는 한국영화에 첫 투자하면서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감독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기 원했고, 마침 할리우드에서 <라스트 스탠드>를 끝내고 한국 복귀를 희망하던 김지운 감독이 미끼를 물었다.
20세기폭스가 투자, 배급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처럼 <밀정> 역시 감독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화다. 스타일에 죽고 사는 김지운 감독답게 ‘오글거림’ 없이 멋지게 시작해 쿨하게 마무리한다. 창작자들은 할리우드 직배사가 만드는 한국영화가 간섭이 심하지 않다는 점에서 환영하고 있다. 박훈정 감독의 ‘VIP’,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 정윤철 감독의 <대립군> 등 워너와 폭스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한국영화를 투자, 배급할 예정이어서 한국영화 시장은 2011년 NEW의 급부상 이후 계속돼온 ‘빅4’의 과점이 흔들릴 전망이다.
반면 <고산자>는 익숙한 CJ엔터테인먼트의 불꽃놀이 로고로 시작한다. CJ는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와 지분으로 얽힌 파트너 관계로 강 감독은 2006년 <한반도> 이후 자신의 영화를 모두 CJ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한때 그는 흥행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지만 최근 10년 간 흥행 성적은 100만~300만 관객 사이를 오갈 정도로 예전 같지 못하다. 손익분기점이 관객 320만명에 달하는 <고산자>는 그가 흥행감독 복귀를 노리고 만든 야심작이다.
<실미도> <공공의 적> 등 단순하고 우직한 드라마를 고집해온 그의 연출 방식은 <고산자>에서도 여전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강우석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개 반항적인 한 방을 갖춘 인물로 이들이 영화에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던데 반해 <고산자>의 김정호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그동안 다뤄본 적 없던 인물을 예전 방식으로 그렸기 때문인지 <고산자>는 다소 힘이 빠진 듯 느껴진다.
두 영화가 동시 개봉한 첫 날, 흥행 스코어는 <밀정>의 압도적 승리로 기운 듯하다. 그러나 연휴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김지운과 송강호의 화려한 스타일이냐 강우석과 차승원의 반란이냐, 결과는 추석 연휴 관객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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