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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신분을 속이고 골동품 장사꾼으로 위장했다. 또 한 남자는 독립군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배신하고 독립군 소탕에 나섰다.
발단은 술이었다. 두 남자는 세 번의 술자리를 갖는다. 첫번째 술자리에서 두 남자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고, 두번째 술자리에서 경계가 누그러지며, 세번째 술자리에서는 기어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남자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인생을 건다.”
영화 <밀정>에서 이정출(송강호)의 대사다. 그에게 삶의 원동력은 인정 욕구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그가 일본군 경부가 된 이유는 일본군 대장 히가시(츠루미 신고)가 자신을 믿고 밀정을 맡겼기 때문이다. 한 번의 술자리에서 그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한 김우진(공유)은 이후 그를 이중첩자로 포섭하기 위해 단 한 가지만 한다. 그를 믿어주는 것이다.
“형이 도와줄 거라고 믿어.”
어슴푸레한 새벽에 느닷없이 찾아온 김우진은 자기 패를 죄다 꺼내놓고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거의 읍소하다시피 한다. 이렇게 순진한 독립군이라니. 대체 나를 어떻게 믿고 이렇게 다 보여주는 거지? 이정출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나 김우진의 한 마디는 이정출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었다. 첫번째 술자리에서 이정출이 어떤 사람인지 간파했다고 믿은 김우진이 '올인' 전략을 편 셈이었다. 이제 이정출은 갈등에 빠진다. 배신자라는 단어를 낙인처럼 안고 살아가던 그에게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그가 인생을 바꿀 이유가 된다.
김지운 감독의 전작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이병헌)도 그랬다. 이정출처럼 선우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인생을 걸었다. 강사장(김영철)의 충실한 오른팔이었던 그는 희수(신민아)를 죽이러 갔다가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흔들린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행동이 전부 이성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던가. 그는 희수의 눈빛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무언가를 봤고 그 무언가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된 순간,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달콤한 인생>의 선우와 희수
이정출과 선우가 자신을 믿어주는 이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안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가진 자보다 정보에서 소외된 자가 더 불안하다. 만약 이정출이 훗날 독립이 될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불안해하며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불안은 고통스럽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인간은 불안할 때 가장 보수적이 되고 가장 공격적이 된다.
인류의 역사는 불안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역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옛 권력자들은 배신의 기미가 보이는 자는 삼족을 멸해 씨를 말렸다. 누가 배신할지 몰라 불안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소통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소셜미디어 등 IT를 이용한 소통이 강화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불안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면 사회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경제는 무너진다. 백조들 사이에 나타난 흑조, 즉 ‘블랙스완’이라고 칭하며 어떻게 하면 대비할 수 있을지 전세계 석학들이 모여 머리를 꽁꽁 싸맨다.
영화 <맥베스>(2015)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드]에서 맥베드는 욕망에 휘말려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마녀의 예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급기야 그는 예언자가 지목한 맥더프 영주의 일가족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현재의 불안은 상상의 공포보다 덜하다.”
맥베드의 이 대사는 불안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함축한다. 불안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고, 미래는 상상의 영역이다. 따라서 인간의 불안감은 상상하면 할수록 더 커진다. 강사장의 적에서 선우의 적으로 말을 갈아타는 백대식(황정민)은 선우의 불안함을 간파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달콤한 인생>의 백대식
불안감을 없애려면 현재의 불확실성과 상상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인간은 굳건한 의지로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쉬운 해결책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발명품이 있다. 바로 술이다.
사실 술은 인간이 인간이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인간이 술을 만든 게 아니라 술이 인간을 만들었다. 당시 영장류가 술을 먹을 수 있도록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과학계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1000만년 전, 인간이 아직 침팬지나 고릴라와 분화되기 전, 동아프리카 지역이 건조해지면서 밀림이 사바나로 바뀌었고,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먹던 영장류는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열매들은 건강을 위협했고, 이에 따라 영장류는 발효된 열매를 잘 먹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술은 효모 발효로 만든다. 지금도 술을 마실 수 있는 영장류는 인간과 침팬지, 고릴라 뿐이다.
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농경사회가 시작되고부터다. 남는 음식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발효가 필요했고 여기에 에탄올이 쓰이면서 술이 음식의 한 종류로서 ‘발견’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술을 좋아했던 것 같다. 각 나라 전설에는 모두 술을 의인화한 신이나 선조가 있을 만큼 술을 떠받들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은 맥주의 시조이고,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혹은 바카스는 포도주의 신이며, 인도 베다 성전의 달의 신 소마 역시 술의 신이다. 또 중국 우왕 때 의적과 두강은 술제조의 시조로 추앙받는다.
진화는 수십만 년이 걸리는 일이지만 인간이 농경사회를 일군 것은 아직까지 1만 년이 채 안 된다. 인간이 아직 술을 완전히 받아들일 정도로 진화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술을 마실 때 인간은 잠시 먼 옛날의 영장류로 돌아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술만 마시면 짐승과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술 취한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술이 문화와 관습이라는 포장지 속에 가려진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본성은 불안감을 잠시 망각 속으로 밀어버린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인간의 본성과 문화의 간극을 코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에서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는 화가 윤희정(김민희)을 술집에서 보자마자 불쑥 사랑을 고백한다. 맥락도 없고 이유도 없다. 또 <북촌방향>(2011)의 영화감독 성준(유준상) 역시 술김에 술집 주인(김보경)에게 키스한다. 영화는 이 장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데 인간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그것은 인간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술로 인해 사라진 불안감은 상상의 여지를 차단해 미래에 대한 고민도 잊게 한다.
김지운 감독 만큼이나 스타일에 공을 들이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1994)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군상이 나오는데 그중 가장 대비되는 인물은 구양봉(장국영)과 황약사(양가휘)다. 자애인(장만옥)과 삼각관계를 맺은 두 남자는 죽은 자애인이 남긴 술을 놓고 마주앉는다. 술의 이름은 ‘취생몽사.’ 술에 취한듯 살다가 꿈꾸듯 죽는다는 뜻의 ‘취생몽사’는 기억을 지워주는 영특한 효능이 있는 술이다.
<동사서독>의 황약사
"인간에게 번뇌가 많은 건 기억 때문이라고 하더군."
황약사는 이렇게 말하며 구양봉에게 술을 권한다. 취생몽사하며 불안으로부터 빠져나올 것인가, 아니면 평생 불안을 안고 살아갈 것인가. 황약사는 술을 마시고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마침내 불안한 사랑의 기억마저 사라지고 그에겐 복사꽃을 사랑했던 기억만 남는다. 그러나 불안을 의지로 돌파하려는 구양봉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기억이란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하게 살아남는 법이기에 그는 지킴으로써 잊으려 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현실에선 취생몽사가 있을 리 없다. 일시적으로 필름이 끊기는 상태만 있을 뿐이다.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현실에 만연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돌파할 수 있다는 의지와 믿음 뿐이다. <밀정>에서 이정출이 불안감을 돌파하려면 독립이 온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너같은 놈들이 있는데 언젠가 독립이 되겠지”라고 말하는 골동품 매매상처럼 말이다.
다시 <밀정>에서 이정출과 김우진이 가진 세 번의 술자리로 돌아와 보자.
첫번째 술은 모색의 술, 두번째 술은 화해의 술, 세번째 술은 믿음의 술이었다. 이 세 번의 술자리 모두 김우진이 마련한 것이다. 첫번째 술자리에서 김우진을 탐색하던 이정출은 두번째 술자리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는 그에게 당황하고, 세번째 술자리에서는 별 말이 없이도 의기투합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술자리는 정채산과 셋이 함께 말없이 술만 들이키는 두번째 술자리일 것이다. 이정출은 정채산이 주는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데 거절하는 법 없이 없다. 이 단계에서 이미 그는 마음을 연 것이다. 배신자이자 밀정인 자신을 전폭적으로 믿으며 술을 권하는 사람에게 인생을 걸기로 말이다.
이처럼 인생은 때론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에 의해 바뀐다. 독립운동이나 애국심처럼 거창한 가치보다는 지금 내 앞에서 내 말을 듣고 믿어주는 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술을 권할 땐 그 사람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가 내 인생을 걸 만큼 나를 믿어주는 사람인지 아닌지. 만약 확신이 든다면 이정출처럼 벌컥벌컥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잔 가볍게 비워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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