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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4’로 불렸던 올여름 한국영화 대작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국가의 역할을 고민하게 하는 영화들이라는 것이다. <부산행>에선 전혀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등장하고,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숨겨진 전쟁영웅이며, <덕혜옹주>는 국가가 망해 강제로 추방되어야 했던 비운의 옹주를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도한 영화 <터널>은 가장 직접적으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이 영화는 애초 파렴치한 정부와 무책임한 언론이 아니었으면 성립할 수 없었을 영화다. 터널 붕괴는 그저 한국에서 최근 몇 년간 유난히 잦았던 재난 사건의 한 유형에 불과할 뿐, 영화는 터널 자체보다 그 안과 밖의 사람들에 더 큰 관심이 있다. 한 마디로 영화 <터널>은 재난 사고가 벌어졌을 때 한국사회의 모습을 ‘미러링’하는 영화다.


(이 글에는 영화 <터널> 결말 암시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타주의자, 이기주의자, 방관자


개통 한 달이 채 안 된 하도터널이 갑자기 무너진다. 딸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가던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이정수(하정우)는 꼼짝없이 터널에 갇힌다.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본부가 설치된다. 전국민의 관심 속에 그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지만 구조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그는 과연 살아서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이타적인 사람, 이기적인 사람, 그리고 방관자다.


다행히 터널 속에 갇힌 주인공 이정수는 이타적인 남자다. 그는 영화 첫 장면에서 주유소 할아버지 직원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이로 인해 생존에 필수적인 생수 두 통을 얻는다. 또 자신도 고립되어 있으면서 다른 생존자와 물을 나누며 박애정신을 실천한다. 그의 따뜻한 마음씨 덕분에 자칫 숨막히도록 날카로울 수 있던 영화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또다른 이타적인 사람은 소방서 대책반장 김대경(오달수)이다. 그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손실을 이유로 들어 구조작업을 중단하자고 주장할 때 홀로 나서서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는 마치 <다이하드>에서 존 맥클레인 형사와 교신하며 유일하게 희망을 전해주는 포웰 경사처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구조에 매진한다.


이에 비해 이기적인 인물은 정부 고위 관료와 방송국 기자다.


국민안전처 장관(김해숙)은 구조작업 과정의 문제점을 보고받은 뒤 책임지지 않기 위해 결정을 미룬다. 또 이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을 만나서는 사진 찍기에만 바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취재 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조기자(유승목)는 그러나 구조작업이 한창인 와중에도 이정수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생존자의 기록을 깨기 위해 일찍 구조되지 않기를 바라는 철면피로 그려진다.



이들 두 부류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사건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 이들의 역할은 마치 예단할 수 없는 날씨와 같아서 터널 아래까지 떨어지는 비처럼 도움이 됐다가 사건이 장기화돼 관심 밖으로 멀어지면 구조작업을 지연시키는 눈보라처럼 방해가 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이타적인 사람은 고난을 겪고, 이기적인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상을 산다. 우리 사회 현실이 그렇듯 말이다.


<터널>은 그동안 우리 주위에 있었던 재난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세현이 하는 말 “만약 살아있다면 그 사람한테 미안하지 않겠어요?”에선 세월호 참사 당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편가르고 싸우기 급급했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떠올라 화들짝 놀라게 된다. 이렇듯 <터널>은 아픈 기억을 정조준해 미러링하듯 우리에게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흥행의 요건은 무능한 국가?


몇 년 전부터 사회비판 영화들이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내부자들> <베테랑> <더 테러 라이브> 등은 영화를 빼다박은 현실이 아니었다면 결코 공감을 얻을 수 없었을 흥행작들이다. 또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쟁영화들인 <암살> <국제시장> <명량> 등 역시 "우리를 잊으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주입한다는 점에서 현실참여적이다.


이런 추세의 연장선상에서 공교롭게도 올여름 한국영화 대형배급사들은 일제히 '국가와 개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흥행 전략으로 택했다. 네 편 모두 국가가 제기능을 못해 개인이 희생하는 이야기다. 대한제국부터 이승만 정부, 6.25전쟁, 박정희 정권을 거쳐 현대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마침 네 편의 한국영화들과 동시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를 살펴보면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제이슨 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은 잘 조직된 국가가 특출난 개인을 쫓거나 혹은 이용해 악당과 싸우는 이야기다. 이 영화들에서 국가는 사악할 수는 있을지언정 무능하지는 않다.


우리는 언제까지 한국영화에서 무능한 국가와 무책임한 사회를 봐야 할까? 혹시 영화가 이를 다루지 않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한국영화는 이미 대형배급사가 관객의 요구를 철저히 파악해 기획된지 오래다. 관객이 원하고 흥행이 되니까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미러링을 막을 게 아니라 원본을 고치는 게 먼저다.


>> 김성훈x김성훈 = 터널, 시원한 청량 사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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