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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이 김성훈을 터널 속에 가뒀다. 전자는 <끝까지 간다>를 만든 감독 김성훈이고, 후자는 <더 테러 라이브> <암살> 등으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된 하정우의 본명이다.


두 김성훈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터널에 갇힌 배우 김성훈은 고립된 공간에서도 영화의 재미를 끌어내 감독 김성훈의 흥행감독 입지를 탄탄히 만들어줄까? 순제작비 77억원이 투입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관객 300만명 선이다.


붕괴된 터널에 갇힌 남자를 구출하기 위한 과정이 때론 코믹하고 때론 무겁게 펼쳐지는 영화 <터널>을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1. 터널 = 재난 생존 블랙코미디


<터널>의 장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재난 생존 블랙코미디’다.


우선, 재난영화와 생존영화(서바이벌 영화)가 합쳐졌다. 인공 구조물의 붕괴는 재난영화의 요소이고, 터널에 갇혀 고군분투하는 개인은 생존영화의 요소다. 재난영화는 대형건물이 불타는 <타워링>, 크루즈선이 침몰하는 <타이타닉>, 빙하시대가 찾아오는 <투모로우>, 터널이 무너지는 <데이라잇> 등처럼 대개 스케일을 강조해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반면, 생존영화는 무인도에서 탈출하는 <캐스트 어웨이>, 화성에서 생존하는 <마션>, 우주에서 돌아오는 <그래비티>, 암벽에 팔이 낀 채 사투를 벌이는 <127시간>, 뱀파이어로부터 살아남는 <나는 전설이다> 등처럼 개인의 의지에 방점을 찍어 차분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터널>이 특이한 것은 대형 터널 붕괴라는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그 피해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는 거의 이정수(하정우) 한 사람만을 피해자로 놓고 이에 집중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이 영화의 노림수가 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그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인가를 놓고 터널 밖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씁쓸한 희극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터널>은 재난 생존 블랙코미디가 됐다.



2. 터널 = 사회풍자 청량 사이다


김성훈 감독이 투수라면 그는 커브보다는 직구로 승부하는 투수다. 그는 에둘러 가지 않는다. 영화 시작 5분만에 주인공을 터널에 가두고 끝날 때도 빠르게 마무리한다. 관객의 호응이 필요한 장면에선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주로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가 때론 사이다처럼 시원하다. 가령 이런 대사들이다.



터널 붕괴 대책 토론회에서 한 참가자가 경제적 손실이 가중되는 것이 몇 년 전 도룡뇽 때문에 천성산 터널 공사가 지체된 것과 비슷하다는 말을 하자 소방서 대책반장 김대경(오달수)은 이렇게 끼어든다.


“이정수 씨는 도룡뇽이 아니라 사람인데요.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요.”



또 “이제 그만 하라”는 여론에 등떠밀린 이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그에게 서명을 받으러 온 공무원들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만약 살아있다면요? 살아있다면 그 사람한테 미안하지 않겠어요?”



잊을 만하면 안전사고가 되풀이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대사들은 극장 밖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아무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편가르고 싸우느라 시간을 소비했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떠올라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러나 청량 사이다 같은 대사는 이 영화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한계다. 사이다는 금세 김이 빠지기 마련이다. 세련된 은유가 아닌 단도직입적인 직유법은 마실 때 통쾌하지만 여운이 오래 남지는 않는다. 같은 메시지라도 감정선을 자극하고 드라마를 쌓아올렸다면 더 풍부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다음 영화에선 커브도 잘 던지는 김성훈 감독을 기대해본다.


<터널> 촬영장의 김성훈 x 김성훈


3. 터널 = 고립된 하정우의 원맨쇼


김성훈 감독은 작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고립된 인간에 끌린다"고 밝힌 적 있다. <끝까지 간다>가 심리적으로 고립된 남자의 두려움을 끝까지 쫓아간 영화였다면 <터널>은 물리적으로 고립된 남자가 한정된 자원으로 공포를 극복해가는 영화다.


<끝까지 간다>에서 고건수(이선균)의 적은 박창민(조진웅)이라는 무시무시한 능력자인데 반해 <터널>에서 이정수의 적은 세상 그 자체다. 출발점이 같은 두 영화는 이 지점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다.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 vs <터널>의 이정수


이정수가 고립과 싸우기 위해 갖춘 최대 무기는 유머다. 그는 이타적이고 낙천적이어서 관객을 포함한 터널 밖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데 이는 그가 꼭 살아나가야 할 이유로 되돌아온다.


홀로 세상과 맞짱 떠야 하는 만큼 <터널>은 철저히 하정우의 연기력에 기대는 영화다. 이정수라는 캐릭터 자체에 이미 배우 하정우가 들어 있다. 가령 개 사료를 분배하는 장면에서 그는 꼼꼼하게 규칙을 만들어 설명하며 능청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데 이 모습은 <허삼관>에서 아이와 대화하는 허삼관과 겹쳐 보인다. 또, 전화 통화를 통해 바깥 상황을 질문할 때는 <더 테러 라이브>의 윤영화 앵커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이하드>의 존 매클레인과 <마션>의 마크 와트니


유머러스한 이정수의 고군분투는 <마션>의 마크 와트니 혹은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과도 닮았다. 지구와 건물 밖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 와중에도 홀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점도 <터널>과 비슷하다. 이들에겐 교신을 계속 시도하는 빈센트 카푸어 혹은 알 파웰 경감 같은 든든한 조력자가 있고, 이정수에게도 김대경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콤비를 이룬다.


<터널>은 고립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최대 무기는 유머와 친구라고 말하는 영화다. 이를 맛깔나게 연기한 하정우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되는 영화다.


물 마시고 케이크 먹고 개 사료까지... 하정우 먹방 3종 세트


4. 터널 = 양심 블록버스터


올여름 흥행 '빅4' 중 한 편으로 당도한 영화 <터널>은 조금 이상한 블록버스터다. 영화의 줄거리는 터널에 갇힌 남자를 구해내는 게 전부다. 그곳은 깊은 바다도, 무인도도, 먼 우주도, 좀비로 멸망한 세상도 아니다. 볼거리라고는 어두컴컴한 터널 속이 전부다. '빅4’에 속한 다른 영화들의 좀비, 전쟁, 옹주에 비하면 터널은 초라할 지경이다.


하지만 <터널>에는 다른 영화가 갖지 못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위기 속에서 물 한 모금도 나눠 마시는 이타주의다. 하정우가 터널 속에서 맞이하는 갈등은 대부분 그가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취하는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다. 한 마디로 <터널>은 인간의 양심을 주제로 한 블록버스터다. 양심이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양심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희귀한 볼거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터널은 영화 시작 5분 만에 무너진다. 그런데 여기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원인은 부실공사였다는 한 마디가 전부다. 그런데 관객은 당연히 그렇겠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 한국 사회에 부실공사로 인한 재난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또 터널 밖 고위 관료와 기자들의 파렴치한 행동 역시 너무 당연해서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이 필요없다. 아마도 다른 나라 영화였다면 캐릭터와 배경 설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터널>은 영화 자체로 보면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한국 사회의 맥락 속에 놓이면 폭발력을 갖게 되는 영화다.


이처럼 한국 사회를 그대로 ‘미러링’한 영화는 터널 안과 밖의 세계를 나누고 어디가 더 지옥인지 묻는다. 터널 안의 세계는 따뜻하고 낙천적인 남자가 고립된 지옥이고, 터널 밖의 세계는 집단 이기주의가 삶의 규범이 된 지옥이다. 구출 작업이 장기화되면서 영화는 ‘과연 그가 살아 나올 것인가’보다 ‘그가 살아 나와도 괜찮은 세상일까’에 더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초반 따뜻한 공기가 지배했던 영화는 뒤로 갈수록 더 예민해지고 냉소적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선 만약 세월호의 아이들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면 그동안 진행된 사태를 보고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시드니 루멧 감독


할리우드에서 사회비판 영화를 만든 거장 시드니 루멧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영화의 목적이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내가 믿는 영화는, 관객이 자신의 양심을 관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터널>이 그런 영화다. 재미 너머 양심에 대한 관찰을 강요하는 영화다. 그 강요가 가히 블록버스터급이어서 사람에 따라 열광할 수도,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감독의 우직한 뚝심만큼은 진솔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한 마디로 <터널>은 ‘한국 맞춤형 양심 블록버스터’다. 이러한 콘텐츠가 블록버스터로 소비된다는 것은 다들 눈치보기 급급해 영화 외에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을 정도로 꽉 막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터널에 갇혔고 영화는 이를 흥행의 동력으로 삼을 태세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터널 ★★★☆

따뜻한 시선, 우직한 직구


>> 한국 사회를 미러링하는 영화 '터널'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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