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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고등학생이 만화를 그리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마침내 일본 최대 만화잡지 [소년점프] 연재권을 따낸다.
오오네 히토시 감독의 영화 <바쿠만>의 줄거리다. 오바 츠쿠미가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린 만화 [바쿠만]을 영화화했다. 두 사람은 만화 [데스노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문학적 재능이 있는 타카기 아키토(카미키 류노스케)는 스토리를 맡고, 프로 만화가인 삼촌의 영향으로 그림에 재능 있는 마시로 모리타카(사토 타케루)는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분업한다. 여기에 동급생이자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소녀 아즈키 미호(고마츠 나나)가 뮤즈로 마시로에게 창작욕을 불어넣는다.
일본 출판시장의 35%가 만화이고, [소년점프]는 한때 600만부를 발매할 정도로 일본 만화시장은 인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 만화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만화가 지망생 10만 명 중 1명꼴로 적다. 그만큼 현실의 세계는 냉혹하고, 만화를 그리는 일은 고되다. 영화는 재능있는 두 고등학생이 만화를 완성하고 연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직업처럼 보이는 만화가의 실상은 골방에 틀어박혀 정성스럽게 그리고 또 그리는 것뿐이다. 마감이 다가오면 원고를 넘기고 또 다음 마감을 기다려야 한다.
<바쿠만>은 헐거운 이야기 구성 등이 단점이지만 장점이 더 많은 영화다. [원피스]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실제 만화와 소년점프 편집부원들의 실명 등 깨알같은 디테일을 살려 실제 일본만화의 현실을 볼 수 있고, 만화의 느낌을 실사와 합성해 다이나믹한 영상을 보여주며, 흥미진진한 대결 구도 끝에 의미있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무엇보다 <바쿠만>의 매력은 만화를 만드는 과정을 하이틴 드라마로 만들었으면서도 뜬구름 잡지 않고 직업윤리 그 자체를 테마로 소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2014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패션왕>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패션왕> 역시 웹툰 원작으로 옷을 만드는 학생들이 주인공이었지만 스타일과 러브라인에만 관심을 쏟아 정작 옷을 만드는 과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매주 마감해야 하는 창작의 고통은 생리현상으로 먼저 나타난다. 극중 39살에 요절한 만화가 삼촌은 생전 똥싸는 기계처럼 책상과 화장실만 오갔다. 독자 앙케이트를 통해 순위를 정해 인기가 떨어지면 연재를 중단해야 하는 경쟁 시스템은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지만 작가는 몸을 혹사해야만 연재를 계속할 수 있다. 힘들고 지칠 때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한다. 영화 속에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것처럼 돈, 큰 집, 멋진 차, 달콤한 연애 등을 상상하며 일어나 펜을 들기도 하고, 우정에 감동받아 힘을 내기도 한다.
잠 자지 않고 더 오래 버티는 게 결국 재능이고, 그게 만화가라는 직업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사실 만화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햇볕도 쬐지 못하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려야 하는 삶이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결과물로 세상에 나오고 독자에게 인기를 얻을 때 작가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보람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자극 덕분에 창작자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쿠만'은 원작 만화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삼촌이 그린 만화의 제목 겸 캐릭터이기도 하다. 오바 츠쿠미는 바쿠만의 '만'자를 만화의 '만'자에서 가져왔다고 밝힌 적 있다. 그렇다면 바쿠만은 과로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는 슈퍼히어로를 만화가라고 말하는 단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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