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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영광의 탈출>, <빠삐용>…
모두 부당한 사회 시스템에 맞서 저항하거나 탈출하려는 개인의 의지를 그린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역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것도 자유를 건국이념으로 한 미국에서다.
1940~60년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했던 시나리오 작가 달턴 트럼보. 그는 작가로써 한창 재능을 꽃 피울 40~50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자기 이름으로 글을 발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명으로 발표한 시나리오로 무려 두 번이나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할 만큼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7일 개봉한 영화 <트럼보>는 그가 매카시즘 광풍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1947년부터 마침내 억압에서 벗어나는 1960년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한 작가의 삶을 다루고 있다.
“심장에서 양심을 제거할 수 없소”
1947년 신문기자와 앤 공주가 로마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쓰고 있던 트럼보에게 어느 날 소환장이 날아든다. 보낸 이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 혐의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것이다.
트럼보는 한때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당시엔 미국과 소련이 2차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했을 때였다. 그는 미국에서도 공산주의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180도 급변한다. 공산주의자를 미국에 대한 반역자로 낙인 찍는 '빨갱이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배우조합 회장 로널드 레이건, 영화인조합 회장 존 웨인 등은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참석해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을 댄다. 그로 인해 할리우드에서 300여명의 영화인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배우 에드워드 G 로빈슨 등 일부는 전향을 선언하고 영화계로 복귀하지만, 일부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보는 뜻을 함께 하는 작가, 감독들과 논의 끝에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한다. ‘할리우드 10’이라고 불린 이들은 결국 수감되고 일자리를 잃고 만다.
트럼보는 11개월만에 감옥에서 풀려나지만 블랙리스트 딱지가 붙은 그는 더이상 캘리포니아에서 일할 수 없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멕시코로 이주해 새 일을 도모한다. 마침 친구의 이름을 빌려 영화사에 판매한 <로마의 휴일>이 195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며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3일이면 충분하죠”
모든 일거리가 끊긴 트럼보에게 남은 것은 누구보다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다는 자존심과 그에 걸맞는 실력뿐이었다. 그는 영화제작사 킹 브라더스의 대표 프랭크 킹(존 굿맨)을 찾아간다. 그가 최고 작가로 올라서기 전인 1930년대 중반에 B급 영화 시나리오를 썼던 곳이다. 외계인과 괴물이 나오고 정사장면이 빈번하게 삽입되는 B급 영화의 대본을 의뢰받고 그는 뭐든 최대한 빨리, 대표가 만족할 때까지 쓰겠다고 말한다.
그는 집을 아예 공장처럼 꾸며놓고 밤낮없이 대본만 쓰는 생활을 시작한다. 하루 16시간씩 휴일도 없이 욕실에 틀어박혀 글을 쓴다. 나중에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위해 가족까지 동원한다. 집은 시나리오가 배달돼 고쳐지고 다시 출고되는 글공장이 되어 간다.
실제 트럼보는 11개의 가명을 돌려가며 B급 영화 18편의 각본을 썼고, 30편을 각색했다. 편당 원고료는 평균 1750달러로 당시 A급 작가였던 그에게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그러나 이마저 칼럼니스트 헤더 호퍼(헬렌 미렌)의 의심을 사고 그는 일거리가 끊길 위기에 처한다. 이때 커크 더글러스와 오토 프레밍거, 로렌스 올리비에 등 그를 지지하는 영화인들이 위협을 무릎쓰고 그에게 시나리오를 맡기면서 블랙리스트 사태는 정점으로 치닫는다.
트럼보를 찾아온 커크 더글러스(딘 오고르만)
달턴 트럼보가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까지...
1905년 미국에서 태어난 달턴 트럼보는 1940년대 최고 몸값을 받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의 출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26년 21세에 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는 엄마와 두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오토바이와 밀주 거래 등 불법행위부터 베이커리 점원까지. 그렇게 돈을 벌면서 트럼보는 단편소설을 썼다. 첫번째 소설 [일식]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모델로 했다.
그는 '베니티 페어', '보그' 등 잡지에 글을 실으며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발판을 마련했다. '할리우드 스펙테이터'지에서는 기자, 평론가, 편집자로 일했다. 이후 그는 1934년 워너 브라더스에 고용됐다. 이번엔 쓰는 일이 아니라 읽는 일이었다. 희곡과 소설을 읽고 요약해 영화로 각색하는데 조언해주는 일이었다. 다음 단계로 그는 B급 영화의 각본을 썼다. 1936년 영화 <로드 갱>의 각본을 쓰면서 트럼보는 클레오 픽처(다이안 레인)를 만난다. 두 사람은 결혼해 1남 2녀의 아이를 갖는다.
계속 시나리오를 쓴 트럼보는 점점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터그보트 공주> <캡틴 재뉴어리> <데블스 플레이그라운드>(1937)의 각본이 태어난다. 이후 워너 브라더스를 떠나 콜럼비아,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MGM, RKO 등 활동범위를 넓힌다. 마침내 1940년 RKO의 <키티 포일>로 오스카 각색상 후보에 지명된다. 이렇게 차근차근 트럼보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고, 최고액을 받는 시나리오 작가로 올라섰다. 1947년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딸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바칩니다”
트럼보의 첫째 딸 니키(엘르 패닝)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지만 영화의 톤은 경쾌하다. 트럼보를 연기한 브라이언 크랜스턴의 맛깔스런 연기와 위트있는 대사 덕분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눈을 부릅뜨고 트럼보를 쫓아낸 제작사 대표가 영화 흥행에 참패한 후 그를 다시 찾아와 유령작가가 되어 달라고 부탁할 때는 인생무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재능있는 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사회에서 배척돼 시련을 겪는 동안 그가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영화는 그 과정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은 1950년대 할리우드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개봉한 <헤일, 시저!>가 황홀했던 1950년대 할리우드 꿈공장을 향수어린 눈으로 재현했다면, <트럼보>가 보여주는 할리우드는 이념에 따라 편가르기를 하는, 겉과 속이 다른 곳이다. 존 웨인, 커크 더글러스, 로널드 레이건 등 당시 유명 인사들이 대거 등장하고 실제 흑백 자료화면과 드라마를 섞어 사실감을 높였다.
실제 달턴 트럼보의 모습
영화의 엔드크레딧에는 실제 달턴 트럼보가 1975년 <더 브레이브 원>의 오스카 트로피를 19년만에 다시 수상하면서 인터뷰했던 영상이 삽입돼 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동안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었던 딸에게 고마움을 전해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모든 사람에게 욕먹지 않는 두루뭉실한 삶이 아닌, 펜이 꺾일지언정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 한 천재작가의 이야기는 한국사회에서도 울림이 클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트럼보의 막내 딸 미치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사실 아버지에게 공산주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는 그룹으로 일하는 것보다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했어요. 그가 싸운 이유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이 모든 매카시즘과 블랙리스트 소동이 끝난 후, 아카데미 위원회는 1993년 <로마의 휴일> 제작 40주년을 맞아 트럼보에게 이름을 제대로 새긴 오스카 트로피를 다시 만들어 수여하며 업적을 기렸다.
영화를 만든 제이 로치 감독은 <리카운트> <게임체인지> <선거 캠페인> 등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다. <트럼보> 이후 그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내부고발자인 윌리엄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의 시점으로 그린 정치 스릴러 영화 <펠트>를 제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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