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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는 잔혹한 역사다. 끔찍한 역사를 다룰 때 영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묘사할 수 있고, 어디까지 왜곡할 수 있나?


아우슈비츠가 600년 전 사건이었다면 영화는 조금 더 자유로웠을 것이다. 스페인 군인들의 마야제국 원주민 학살이나 영국인들의 태즈매니아 주민 학살을 영화로 만들면 아마도 상당한 허구가 가미될 것이다. 하지만 아유슈비츠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직 생존해 있다. 그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의 윤리를 살펴보는 것은 끔찍한 실화를 영화로 옮길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논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당장 위안부를 소재로 한 <귀향>만 해도 그렇다. 이 영화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을 다 제거했다. 그게 올바른 선택인가 아닌가?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허구를 집어넣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또 세월호처럼 비극적인 사건도 언젠가 영화의 소재가 될 것이다. 만들지 않으면 잊혀지기 때문에 영화로 만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아우슈비츠로 돌아가 보자.



우선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들 중 문제작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알랭 레네 <밤과 안개>(1955)

질로 폰테코르보의 <제로지대(Kapo)>(1960)

엘렘 클리모프의 <컴 앤 씨>(1985)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1985)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1993)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

나즐로 네메스의 <사울의 아들>(2015)


물론 이밖에도 아우슈비츠가 등장하는 영화는 <안네의 일기> <소피의 선택> <생명의 기차>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우먼 인 골드> 등등 수백 편에 달한다. 심지어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이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같은 블록버스터에도 등장한다. 이제 막 위안부 영화의 발걸음을 뗀 한국과 달리 유럽인들은 오래 전부터 아우슈비츠를 다각도에서 과감하게 영화로 재현해왔다.



아우슈비츠 영화를 스토리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생존자의 증언과 기억을 바탕으로 현장을 재구성하는 영화(<밤과 안개> <쇼아>). 둘째, 아우슈비츠에서 고통받는 한 인물의 처절한 삶을 그린 드라마(<안네의 일기> <제로지대> <컴 앤 씨>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셋째,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유로파 유로파> <생명의 기차> <쉰들러 리스트>). 넷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생존자의 회고담(<소피의 선택> <우먼 인 골드>).


<사울의 아들>은 이 네 가지 분류와 다른 지점에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굳이 따지자면 <쇼아>의 현장 재구성과 <컴 앤 씨>의 처절한 삶, 목격자의 트라우마가 합쳐졌다. 하지만 스토리보다는 시각적인 경험을 중시한다. 화면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현장을 재현하는데 관객은 주인공을 통해 끔찍한 현장을 간접경험한다.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의 <회색지대>(2001)


소재 면에서 <사울의 아들>은 아우슈비츠의 실제 존더코만도(유대인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나치에 고용된 유대인)였던 미클로스 니즐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회색지대>(2001)와 닮았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났던 존더코만도의 실제 반란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가스실에서 살아남은 14살짜리 소녀를 보고 딜레마에 빠진다. 소녀를 구하자니 반란이 실패할 것 같고, 소녀를 버리자니 반란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를 살려야 할지에 대한 <회색지대>의 고민은 <사울의 아들>에선 더 극단적으로 나아간다. 존더코만도인 헝가리인 주인공 사울(게자 뢰리히)은 감시를 피해 한 가지 목적에 집착적으로 매달린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라고 그가 주장하는 죽은 소년.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사울에게 "너에겐 아들이 없다"고 말한다.)을 다른 시신과 달리 매장하고 유대인식 장례를 치뤄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의 아들은 이미 죽은 소년이다. 존더코만도들은 나치에 대항해 목숨을 건 반란을 준비중이다. 이 상황에서 사울은 죽은 아들을 땅에 묻어주겠다고 동료들과 다른 길을 가려 한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을 영화는 집요하게 사울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사울을 따라다니는 카메라의 트래블링 샷은 1.37:1의 비율로 절단되어 있고, 사울 뒤의 배경은 아웃포커스로 초점이 나가 있어 관객은 오로지 사울의 얼굴을 통해서만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영화는 충실하게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쫓는다.


아웃포커싱된 배경에는 벌거벗은 시신들이 볏집처럼 쌓여 있다. 영화는 대량학살된 희생자들의 시신을 전시하면서도 자세히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윤리적인 논란을 피해가려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울과 관객을 향해 묻는다. 이 많은 시신들 중 한 아이만 묻어주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를. 사울의 의지가 확고할수록 관객은 불편해진다. 이제 그만 포기하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서 사울이 시신 매장에 실패하고 물에 떠내려가는 아이의 시신을 허무하게 바라볼 때 관객은 죄의식이 아니라 모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주인공의 실패를 바라볼 때 생긴 안도감이라니, 이 안도감은 참 희한한 감정이다. 이 한 순간의 모순적인 감정을 위해 영화는 1시간 이상 사울의 얼굴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울은 한 독일인 아이를 발견하고 기이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표정 때문에 사울을 비롯해 오두막에 숨었던 존더코만도들은 몰살당한다. (사울이 아이를 도망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처음으로 사울을 벗어나 아이를 따라간다. 마치 그동안 사울이 죽음이 예고된 장소(가스실)의 바깥에서 오로지 비명소리를 통해 죽음을 간접목격해왔듯이 카메라에 잡힌 아이 역시 숲속에 울려퍼진 총소리를 통해 그들의 죽음을 간접경험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성서의 도움 없이는 해석이 거의 불가능하다. 마침 영화의 타이틀롤이자 주인공의 이름이 사울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사울 왕이 떠오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탁월한 군사적 역량으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방어한다. 그러나 부하인 다윗에 대한 질투로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아들 요나단과 함께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다. 그렇다면 <사울의 아들>의 사울 역시 일종의 정신질환적 증세를 보인다고 볼 수 있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물론 아우슈비츠다.



역사적인 사건을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이런 시도는 유럽영화에 자주 있어왔다. 그러나 기존 영화들이 아우슈비츠를 에둘러 가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면 <사울의 아들>은 아우슈비츠를 정면으로 보여주기 위해 종교를 선택했다. 기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의 상당 부분은 영화가 전시하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혹자는 '홀로코스트 포르노'라고까지 하지만 상당수의 평가는 20세기 국가체계가 벌인 가장 잔혹한 사건을 가장 리얼한 영화적인 체험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헝가리의 한 영화감독은 2억원이라는 저예산으로 과감한 실험을 했다. 그 실험은 종교를 경유해 눈이 침침한 안경을 쓰고 아우슈비츠의 가상현실 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체험으로서의 영화'로 아우슈비츠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시각적인 경험 외의 스토리 등 다른 것들은 부차적이다. 당장 <사울의 아들>을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교해보면 극한 상황에서 부성애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는 희생이었지만 <사울의 아들>의 부성애는 정신질환이다. 여기에서 논란이 될 부분을 감독은 종교적인 배경을 통해 다른 차원의 주제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앞으로 만들어질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는 좋든 싫든 <사울의 아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엔 위안부와 세월호를 소재로 이렇게까지 리얼한 영화를 만들려면 아마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렇게까지 보여주는 영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더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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