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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만 보고 요리 영화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포스터를 보니 랍스터 요리가 나올 것 같지는 않더군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 랍스터>는 제가 작년에 놓친 영화입니다. 뒤늦게 봤습니다. 그리고 2015년 저의 베스트 10 목록을 수정했습니다. 왜 이 영화를 이제야 봤는지 모르겠네요.


어떤 영화는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여러가지 다른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영화의 공기가 문학적이어서 고전 소설도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다른 어느 영화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오리지널한 영화는 참 오랜만입니다. 지금부터 <더 랍스터>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1. 낯선 공기의 블랙코미디


영화 <더 랍스터> 속 인물들에게 영화 속 세계는 리얼리티입니다. 영화를 만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 영화의 아이디어 원천은 영국 TV '채널4'의 리얼리티쇼 <더 호텔>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상황들에서 영감받아 짝짓기가 최선의 가치가 된 가상의 호텔을 구상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리얼리티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리얼리티처럼 보이려고 꽤나 애를 쓰지만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입니다. 영화 속에서 누구도 웃지 않지만 그래도 코미디입니다. 만약 코미디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2013년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했던 <언더 더 스킨>이라는 영국 독립영화가 떠오릅니다. 공허한 공기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더 랍스터>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언더 더 스킨>이 텅빈 공간을 엿보는 정도였다면 <더 랍스터>는 그 속에 드라마를 집어넣어서 더 극적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입니다.



2. 초현실주의 러브스토리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려 풀 뜯어 먹고 있는 소를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어리둥절합니다. 대체 왜 쏜건지 알 수 없고 끝까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소가 인간이던 시절 여자와 어떤 관계였겠거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가만, 소가 인간인 시절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영화는 인간이 동물이 되는 세계를 가상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커플로 살지 못하는 솔로들은 '더 호텔'이라는 곳으로 이송되어 45일간 생활하면서 짝을 찾아야 합니다. 만약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됩니다. 주인공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랍스터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랍스터는 오래 살고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이라나요. 그래서 제목이 '더 랍스터'입니다. 영화는 랍스터가 되기로 한 그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동물이 되고 짝짓기가 법이 된 나라의 이야기. 네, 자연스럽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루이스 브뉘엘의 <황금시대>, <자유의 환상> 같은 초현실주의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그들 역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만들었는데 그 바탕에는 현실 풍자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카프카는 실존의 부재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함을, 브뉘엘은 계급제도의 허상을 드러냈죠. <더 랍스터>가 노리는 것 역시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는 일부일처제가 얼마나 위선적인 제도인지를 비꼬는 것입니다.



3. 사랑은 곧 나르시시즘


데이비드는 한 싸이코패스 여자와 커플이 되어 랍스터가 될 위기를 모면합니다. 여자 역시 데이비드가 싸이코패스인 줄 알고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여자는 데이비드가 화장실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그의 정체(?)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은 갈라섭니다. 사랑이 깨지면 다시 동물이 되어야 하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데이비드는 여자를 죽이고 '더 호텔'을 탈출합니다.


영화 속에서 사랑은 나르시시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똑같아야만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사랑하려면 남자도 코피를 흘려야 하고, 기타를 잘 치는 남자와 사랑하려면 여자도 기타를 쳐야 합니다. 공통점을 찾기에 지친 데이비드는 감정이 없는 여자를 자신의 파트너로 고르고 똑같이 해보겠다고 작정했지만 결국 무너지고 만 것이죠.


카메라는 커플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여주기 위해 화면을 일부러 분할해서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에도 투숏으로 잡지 않고 원숏으로만 잡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카메라 역시 이들의 사랑이 나르시시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에 빠질 때 자신과 얼마나 같은지를 봅니다. 커플들은 곧잘 "우리에겐 이런 공통점이 있어요" 라고 말하는데 어떤 때엔 사랑이라는 감정을 포장하기 위해 그런 공통점이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공통점이 없으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것처럼 그것을 과장해 과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이처럼 나르시시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멋지고 예쁜 나의 모습을 사랑하듯 나를 닮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죠.


두 사람이 정말 서로 닮아서 그것을 사랑한다면 나르시시즘은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꾸밀 때 발생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그래서 어느 한쪽이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그 사람은 상대방의 나르시시즘을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더 랍스터>의 마지막 장면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죠.



4. 금지되어야 비로소 사랑


이 영화에는 화자가 따로 있습니다. 레이첼 와이즈가 연기한 근시 여자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그녀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됩니다. 관객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은 '더 호텔'을 탈출한 데이비드가 숲속을 헤매다가 그녀를 처음 만날 때입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숲속은 '더 호텔'과 정반대로 사랑이 금지된 곳입니다.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솔로들의 리더는 작업 거는 남자들에게 입을 찢어버리는 형벌을 내립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생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리 무덤도 파놓아야 합니다. 자신이 죽으면 무덤을 대신 파줄 사람도 없으니까요. 사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들은 일렉트로닉 음악만 듣고 테크노 댄스만 춥니다. 각자 이어폰을 꽂고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 혼자 춤을 추는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근시 여자에게 다가와 같은 음악을 같이 듣자고 말합니다. 사랑이 허락된 세상에서 사랑하지 못하던 데이비드는 사랑이 금지된 세상에서는 사랑에 빠집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듯, 위기 속에서 사랑이 꽃피듯, 금지되어야 더 절실해지는 거죠.


지금까지 실험적이고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힘들었던 영화는 이 장면부터 안정적인 길로 접어듭니다. 금지된 사랑에 빠진 커플은 탈출을 감행하려다 발각되고 결국 근시 여자는 리더로부터 눈이 멀게 되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에 격분한 데이비드는 리더를 제거하고 여자와 함께 도망칩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이어져온 금지된 사랑에 빠진 커플의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의 감독은 그리스인이에요.


하지만 전형적인 러브스토리라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근사한 엔딩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 혹은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혹은 김태용 감독의 <만추>를 떠올리게 하는 엔딩입니다. "그 남자가 과연 거기 올까" 고민하게 만드는 이 엔딩은 모더니즘적인 엔딩입니다. 그러고 보면 <더 랍스터>는 초현실주의로 시작해 카프카식 실존주의, 고대 그리스 신화를 거쳐 모더니즘까지 다양한 문화 자산을 흡수해 하나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 냈습니다.


참, 그런데 과연 데이비드는 다시 나타날까요? 해답은 아마도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데이비드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근시이기 때문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결국 그의 사랑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르시시스트의 사랑인 거죠. 나르시시스트가 자해를 통해 사랑의 환상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는 일부러 코피 흘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보세요.



5. 고독한 현대사회의 우화


인간이 동물이 되는 이야기는 주로 우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초 초현실주의 화가들 역시 우화를 기반으로 해서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그림을 그렸지요. 우화는 인간을 동물에 비유해 현실세계를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이 영화에서 인간이 동물로 변하는 설정이 등장한 이유는 동물들의 높은 번식력 때문인 듯합니다. 동물이 되어 마음껏 섹스하면서 자손 낳아 살라는 이유겠지요. 인간은 이성이 있어서 자꾸만 이것저것 따지고 오랫동안 사랑하지 못하는데 동물이 되면 그렇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올리비아 콜먼이 연기한 더 호텔의 매니저는 이제 동물이 되어야하는 한 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인간으로서 마지막날이니 산책이나 섹스 같은 것 하지 말고, 고전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세요. 섹스는 실컷 하게될 테니까요."


인간은 싱글로 태어나 외로워하다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다시 인간을 괴롭힙니다. 관계에 속박되면 다시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고 결국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합니다. 영화에서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자꾸만 인간이 관계 맺기를 강요합니다. 고독한 자들을 쓸모없는 인간 취급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도시 속에서 혼자이기 쉽지 않습니다. 혼자 식당에 가거나 혼자 극장에 가거나 혼자 쇼핑을 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 결혼하지 않은 자에게 정부는 혜택을 줄입니다. 결혼해야만 정부는 세금을 감면해주고 시민권도 줍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랑을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6. 그리스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더 랍스터>는 그의 네 번째 영화로 그가 4년 전 그리스를 떠나 런던에 정착한 이후 처음으로 만든 영어 발성 영화입니다. 그는 연극과 광고를 통해 경력을 쌓았는데요. 지구상에 그만큼 신선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기덕이나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2009년 <송곳니>로 그리스 뉴웨이브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고요. 덕분에 <더 랍스터>는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올리비아 콜먼, 존 C 라일리 등 화려한 할리우드 스타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습니다.


<더 랍스터>는 2015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란티모스 감독은 이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야단법썩인지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어디에나 살고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그게 참 이상하고 기이한 우연 아닌가요?"


출연 배우들 중 특히 레이첼 와이즈는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에 완전히 반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더 랍스터>에 가장 먼저 출연 제의한 것을 비롯해 그의 차기작인 <페이버릿>에도 연달아 캐스팅됐습니다. <페이버릿>은 18세기초 영국 앤 여왕 시대의 음모를 추적하는 영화인데요. 레이첼 와이즈가 앤 여왕의 오른팔 사라 역을 맡아 엠마 스톤, 올리비아 콜먼과 함께 연기할 예정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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