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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초 뉴욕, 두 여자가 만난다. 한 여자, 캐롤은 남편과 이혼 후 딸 양육권 소송에 지쳐 있고, 또 한 여자, 테레즈는 백화점 점원으로 남자친구에게 프로포즈 받았지만 결혼해도 되는지 확신이 없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린다. 테레즈는 당당해보이는 캐롤이 궁금하고 캐롤은 행복해보이는 테레즈가 부럽다. 전화 통화하고 집으로 초대해 왕래하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시카고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여행길에서 둘은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 <캐롤>은 이 과정을 투박한 슈퍼 16밀리 필름으로 담는다. 클로즈업으로 감정선을 자극하는 영상은 우아하고 재즈풍 음악은 감각적이다.
어떤 영화는 굳이 스토리를 따라갈 필요가 없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영화 속 공기, 카메라 움직임, 따뜻한 색감 등이 빈약한 스토리를 풍부하게 채운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는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감정을 드러낸다. 또 손짓, 시선 등 제스추어가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두 사람이 은근히 표현하는 감정을 더 많이 알아챌수록 이들의 사랑에 더 공감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소재지만 1950년대 동성애자는 거의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동성애자를 연방정부에서 축출했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성생활 경험을 점검하기까지 했다. 영화 속 TV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연설하는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쓰이고 있는데 이는 이런 시대 분위기를 은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이때 그 과정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단지 냉엄한 시대 분위기만으로 두 사람의 절절한 심정이 객석에 그대로 전달된다.
이처럼 영화는 직접적이지 않게, 최대한 절제하며 두 사람의 금지된 사랑을 묘사한다.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는 마치 1950년대에서 온 여자처럼 스크린 속에서 각각 캐롤과 테레즈로 분해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의 베드신은 어느 이성 커플의 정사 장면보다 아름답고, 군중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쳐다보는 마지막 장면에선 <델마와 루이스>의 두 여자처럼 금방이라도 사고를 칠 것마냥 위태롭다.
영화의 감독은 <포이즌> <벨벳 골드마인> <파 프롬 헤븐> 등 감성적인 퀴어영화를 만들어온 거장 토드 헤인즈이고, 원작은 [리플리]로 유명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소설 [소금의 값]이다. [리플리]는 다른 사람이 되고자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파헤친 걸작이었는데 그 작품의 정서가 <캐롤>에도 어느 정도 녹아 있다. 두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동기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를 기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여주인공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는 누구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는 루니 마라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아카데미상에는 블란쳇이 여우주연상, 마라가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두 사람이 모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 표가 분산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전략이라는데 과연 누가 트로피를 거머쥘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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