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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2015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습니다. [롤링 스톤즈]의 피터 트래버스, [타임]의 스테파니 자카렉, [뉴욕 옵저버]의 렉스 리드 등이 엄지를 치켜세웠고, [뉴욕 타임즈] [배니티 페어] 등 거의 모든 언론이 Top 10 리스트에 이 영화를 올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그들처럼 직업이 기자인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었기 때문일까요? 그보다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인 그들이 보기에도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기자들의 세계가 정말 그럴 듯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한국에서 2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스포트라이트> 이야기입니다.
퓰리쳐상 받은 스포트라이트팀의 실화
영화의 타이틀롤은 2001년 미국 신문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라는 탐사보도팀입니다. 탐사보도란 말그대로 한 사건을 깊이 있게 추적해서 보도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소비되는 기사가 넘쳐나는 시대에 탐사보도는 저널리즘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본래 '저널리즘'이라는 단어가 정보와 의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했다면, 탐사보도가 등장한 이후엔 민주주의를 위한 감시장치로서의 역할로 한정해 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기자정신' 역시 저널리즘과 같은 맥락이죠.
스포트라이트팀의 기자와 에디터는 이 기자정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기자정신 하면 배짱 좋게 '무대뽀'로 밀고나가는 방식을 상상하기 쉬운데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기자정신은 그게 아닙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피해자들 상처주면서까지 따라붙는 게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면서, 막히면 다른 루트를 찾아서 끈질기게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스포트라이트팀은 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팀장 월터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 취재기자 마이클 레벤데즈(마크 러팔로), 사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 맷 캐롤(브라이언 다르시 제임스). 여기에 보스턴 글로브 에디터 마티 바론(리브 슈라이버)과 벤 브래들리 주니어(존 슬래터리)가 보도 전반을 책임집니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간 자행된 보스턴 카톨릭 신부 수백 명의 집단 아동 성추행을 고발하는 보도로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는 이들의 취재 과정을 보여줍니다. 핵심은 보스턴 대주교가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알고도 덮었느냐는 것인데 기자들은 팩트를 알아내기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자료를 뒤집니다.
카톨릭 고발이 아닌 '뉴스룸의 힘'을 보여주다
영화 <도가니>(2011)를 기억하시죠?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인화학교에서 청각장애 아이들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을 고발했던 공지영 작가 원작의 한국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기자가 아닌 한 명의 남자 선생님이 주인공이었죠. 영화는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교장이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더 뜨겁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배우 출신 감독 톰 맥카시의 다섯 번째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도가니>와 소재는 유사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이 영화는 카톨릭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저널리즘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어쩌면 소재의 민감함 때문에 톰 맥카시와 조쉬 싱어는 각본을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영화는 저널리즘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에 충실합니다. 공동 각본가인 싱어는 [크리에이티브 스크린라이팅]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카톨릭 교회를 폭로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고 싶지 않아요. 이 영화의 모티프는 오늘날 거의 실종된 '뉴스룸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가 카톨릭을 고발하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는 신부가 아이를 성추행하는 과정의 직접적인 묘사 같은 것은 한 장면도 없습니다. 단지 희생자들이 말을 통해 증언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미국에서 공개되고나서 카톨릭 교회는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보스턴 대주교 숀 오말리는 "<스포트라이트>는 신문이 어떻게 교회의 부끄러운 면을 드러냈는지를 묘사했다"고 말했고, 바티칸의 공식 라디오 채널은 "이 영화가 미국 카톨릭 교회의 죄악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했습니다. 물론 가해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그 자체로 평가받을 만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뜨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탐사보도 기자들이 일하는 방법
다시 저널리즘으로 돌아가 봅시다. 영화가 시작하면 보스턴 글로브에 새 에디터 바론이 부임합니다. 한국에서 보통 편집장(혹은 편집국장)은 주위 여러 압력과 광고 걱정 때문에 기사 톤다운하고 돈 되는 기사 물어오라고 시키는 게 직업인 것처럼 보이는 직책입니다. 그런데 바론은 부임하자마자 보스턴 대주교가 신부의 아동 성추행을 묵인했다고 폭로한 칼럼을 언급하며 스포트라이트팀에서 맡아보라고 말합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장이 우리는 아이템을 자체 발굴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한 번 고려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의견을 묻고 팀원들은 만장일치로 기존 아이템을 보류하고 이 안건을 취재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자발적인 결정을 방해하는 어떤 압력도 없고 일방적인 지시도 없습니다. 기자들은 몇 달 동안 이 사건에만 몰두합니다. 다른 기업의 보도자료를 베껴야 할 필요도 없고, 실시간 검색어로 화끈한 제목을 달아 조회수를 늘리는 기사를 쓰라는 요구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사건을 파기 위해 여러 취재원들을 만나고 도서관에서 수십 년치의 자료를 뒤집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도서관이 문닫을 때까지 자료를 보고, 처음 칼럼을 통해 사건을 폭로한 변호사를 몇 번이고 찾아가고, 과거 신부들의 정신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가 입을 열도록 설득합니다. 처음에 1명이었던 가해자는 13명으로, 다시 87명으로 계속해서 불어납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공들인 취재는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보스턴 글로브지의 톱기사로 보도되고, 그날 이후 세상은 어제와 달라져 있습니다.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저널리즘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팀웍'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저널리즘의 필요성을 요란하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외치는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언론을 다룬 영화들은 대개 영웅적인 기자 한 명이 세상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네트워크>는 시청률 경쟁의 폐해를 폭로하기 위해 생방송 도중 자살하려는 앵커가 주인공이었고, <대통령의 음모>는 워터게이트 특종을 터뜨린 기자 두 명의 영웅담이었으며, <킬링필드>는 뉴욕 타임즈 특파원의 목숨 건 취재기였고, <굿나인 앤 굿럭>은 매카시즘에 저항하는 앵커를 다뤘으며,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정치인의 스캔들을 쫓는 두 기자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들과 달리 <스포트라이트>는 기자 한두 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팀웍'입니다. 보스턴 글로브는 전화받는 직원부터 편집장까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립니다. 마이클은 저돌적인 기자고, 사샤는 온화하지만 똑부러진 기자입니다. (공교롭게도 사샤 역할의 레이첼 맥아담스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에 이어 또 한 번 기자 역할을 맡았네요.) 이들을 조율하는 팀장 로빈슨은 신중해서 보도 시점을 놓고 계속 고민합니다. 이들은 한 명이 아니라 팀일 때에만 완벽해질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편집장 바론은 자신의 10년 전 행동 때문에 괴로워하는 로빈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하고 있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영화를 보고 나면 한국 언론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기레기'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그것에 그다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현실 말입니다. 이름없는 취재원을 남용해 팩트로 포장하고, 언론기업의 사적인 이익을 여론이라고 주장하는 현실 앞에서 저널리즘이라는 단어는 아주 멀리 떨어진 이상향처럼 보입니다. 미국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저널리즘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한국에 더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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