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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때였는지 고등학생때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경주' 하면 그때 수학여행을 갔던 곳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의 기억이라면 밤중에 선생님 몰래 술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그때 천마총도 보고 포석정도 보고 불국사도 보고 석굴암도 보았는데
어째서 기억은 흐릿하기만 한 걸까요...
당시에 '에게~ 이게 뭐야' 하면서 보았던 유적지들에 대해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다시 한 번 찾아가보고 싶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날은 9월 27일 일요일.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렸습니다.
일기 예보로는 100mm에 가까운 비가 내린다고 하여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그정도로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터미널에 내려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받아 10분 정도 걸어가니
대릉원과 천마총이 나타났습니다.

제 기억 속에도 위 사진처럼 입구로만 기억되고 있는 천마총.
수학여행 때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줄이 길었던 기억이 있는데
비가 내려서인지 경주에는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내부에는 무덤에서 발굴된 간단한 유적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아주 소박한 분위기였습니다.



대릉원에는 커다란 무덤들이 마치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는데
대릉원 밖에도 위 사진처럼 여기저기 무덤들이 놓여 있습니다.

결국 20년만에 찾은 경주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게 '무덤'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안압지는 걸어서 한 번에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짧은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위 첨성대입니다.
첨성대를 보고나니 왜 제 수학여행 기억속에 첨성대가 없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보수공사중인 이 건물은
동아시아 최초의 천문연구건물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작고 왜소하여 그 명성에 비해 보는 이를 실망시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보면 덕만이 첨성대를 짓기 전에
"그런 대규모 공사를 어떻게 하나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요즘 같으면 하루 밤이면 만들었을 것 같더군요.
그나마 공사중인 첨성대를 관람하기 위해선 500원의 관람료를 내야합니다.

선덕여왕이 집권했던 서기 630년대.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더라도 그당시 신라의 건축술이
겨우 이 정도였다는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이 길은 경주시에서 관광객들이 심심할까봐 친절하게 만들어놓은
길 같더군요. 이 길을 갔다가 돌아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잘 정비되지 않은 첨성대 주변에 인공적이나마 정돈된 길이었습니다.



안압지입니다.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는 작은 호수이죠.
다행히도 실망스런 첫 인상은 여기까지입니다.
경주 시내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깊은 경주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보문단지 쪽으로 가기 전에 쌈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30가지 반찬에 푸짐한 식사가 일품이었습니다.
수학여행으로 왔을 때는 절대 먹어보기 힘든 식단이었겠죠.
혹시라도 경주에 오시면 쌈밥, 황남빵, 밀면을 꼭 먹어보시기 바랍니다.



황남빵은 빵은 물론 심지어 상자에까지 특허를 달아 체인점 없이
오직 이곳에서만 빵을 팔고 있는데
없어서 못팔 정도로 대단한 인기품목입니다.
제가 갔을 때도 빵을 주문하고 1시간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주변에 경주빵이라는 빵가게가 많은데
경주빵은 황남빵과 똑같은 빵을 이름을 달리해서 파는 것입니다.
경주빵과 함께 찰보리빵도 같이 팔고 있는데
제 입맛에는 찰보리빵이 더 쫄깃하고 맛있었습니다.



20년전과 비교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이 있다면 새로 들어선 시설들입니다.
신라 밀레니엄파크라는 이곳은 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장으로
쓰이고 있는데 일종의 테마파크입니다.
입장료도 18000원이나 하더군요.
일종의 민속촌처럼 신라 마을을 재현해놓은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망설이다가 들어가지 않고 그 옆에 있는
경주 문화엑스포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보문단지쪽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가면 엑스포공원이 나옵니다.
황량하고 넓은 이 공간은 너무 멋지지 않나요?


경주 문화엑스포공원의 경주타워입니다.
경주에서 가장 멋진 두개의 건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불국사와 함께 바로 이 경주타워를 꼽겠습니다.
황룡사 9층목탑을 음각으로 형상화한 이 타워는 2007년에 지어졌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2m 올라가면 전망대에서 경주시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낮보다는 밤에 더 근사합니다.



그밖에 경주문화엑스포공원 안에는 전시실과 화석박물관,
그리고 첨성대 영상관이 있는데 첨성대 영상관의 3D 입체 애니메이션은
한 번 볼만합니다. 대학생들의 작품인데 기파랑 등 화랑을 소재로
흥미로운 액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드디어 불국사를 찾았습니다.

20년전 수학여행에서도 유일하게 감탄했던 그곳.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비가 막 그쳐서인지 공기가 정말 상쾌했구요.
차 없이 한적한 길을 따라 산새로 접어들었습니다.



사진에서 느껴지시나요? 웅장하다기보다는 고풍스럽습니다.
꽉 짜여진 느낌이 아름다운 불국사의 모습입니다.
예전에는 계단이 더 넓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보니 좁아보이더군요.
또 예전에는 저 계단으로 올라갔었지만 지금은 막아놓았습니다.


불국사를 지키고 있는 두 개의 탑. 바로 다보탑과 석가탑.
그중 석가탑의 모습입니다. 다보탑은 지금 보수 공사중입니다.
참 근사합니다. 역시 불국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공사중인 다보탑의 간이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대웅전입니다.
불국사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 특히 일본인이 더 많더군요.


한적한 산과 절이 잘 어울립니다.
528년 창건하여 751년 탑과 석교 등으로 크게 개수하였다는 불국사.
자세히 보면 기와가 무척 낡아서 앞으로도
오래 지탱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부디 이곳은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복돼지상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까요?
특히 서양인들이 이 황금돼지를 아주 좋아하더군요.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관광객은 잠시나마 평화를 찾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가는 길은 꽤 멀더군요.
버스로 20분을 가는데 굽이굽이 산을 올랐습니다.
산책로도 개발되어 있어 도보로는 5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수학여행때도 석굴암은 실망했던 기억이 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높은 곳을 힘들게 걸어가서 굴 속을 줄서서 들어가
"이게 다야?" 하고 돌아섰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다시 찾은 석굴암은 그때와 달리 많이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주차장도 훨씬 넓어졌고 화장실도 크게 지어놓았더군요.
그대신 석굴암은 굴 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대형 유리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석굴암보다는 석굴암으로 향하는 길을 더 즐겼습니다.
위 사진 속에서 안개가 느껴지시나요?
토함산 정상 부근에서 안개속을 걷는 기분만으로도
석굴암을 찾을 이유는 충분합니다.


석굴암은 돌로 만든 불상을 그동안 많이 봐온
현대인들이 큰 감흥을 느끼기는 힘든 암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니온듯 다녀가세요'라는 문구가 딱 맞게 느껴지더군요.


세계 각국에서 석굴암을 다녀간 흔적입니다.
경주는 한국을 찾은 관광객이 꼭 다녀가는 도시가 되었지만
솔직히 제가 이번에 찾아본 바로는 기대만큼
실망이 큰 도시인 것도 같습니다.

오래된 문화유적도시라고 경주가 자랑스럽게 비교하고 있는
교토, 이스탄불, 마추피추, 로마, 시안 등등을 놓고 보면
경주에는 유적지가 별로 없습니다.

천년고도라고 하면서도 신라시대의 궁궐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전쟁으로 보존이 안되었다면 수원성처럼 복원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요...


산속으로 숨어버린 암자만이 이 땅에서 보존되어온
유적지라는 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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