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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무시하게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할게요.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보통 옴니버스 영화는 여러 명의 감독들이 한 가지 주제로 작업하지만 이 영화는 한 명의 감독이 여섯 편의 단편을 만들어 묶었습니다. 장점은 이야기의 흐름과 기술적 완성도에 일관성이 있다는 것, 단점은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니 조금 지친다는 것. 하지만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영화는 기발합니다.
지난 5월 21일 개봉한 이 영화의 제목은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원제는 'Relatos salvajes' 거친 이야기라는 뜻의 스페인어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알고가면 좋을 것. 첫째, 여섯 편의 이야기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 괜히 이 남자가 다음에 어디 나올까 찾지 마세요. 그저 독립된 이야기입니다. 둘째, 영화는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지만 차마 입밖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끝까지 추적하는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온순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무언가에 분노해 위선을 폭로합니다.
스토리가 기발하기 때문에 알고 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인 정보를 드릴까요? 첫번째 '파스테르나크'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공통점을 발견하는 이야기, 두번째 '쥐'는 식당 종업원이 어느날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손님으로 맞는다는 이야기, 세번째 '가장 강한 남자'는 보복운전의 끝을 보여주는 이야기, 네번째 '작은 폭탄'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차가 견인되는 바람에 열받은 남자의 이야기, 다섯번째 '제안'은 뺑소니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가짜 범인을 만들려는 부잣집 남자의 이야기, 여섯번째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는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바람핀 사실을 알게 된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대략적인 소개만으로는 감이 안 오시죠? 직접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에는 한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배우는 거의 없습니다만, 다리오 그라디네티, 마리아 마룰,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리카르도 다린 등 아르헨티나의 베테랑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있습니다. 감독 다미안 스지프론은 주로 TV시리즈로 경력을 쌓아왔는데요. <시뮬레이터> <형제와 형사> 등의 TV시리즈물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와일드 테일즈>의 경우에도 짧은 이야기들이 마치 TV 단막극을 보는 것처럼 완결성이 있습니다.
다미안 스지프론은 이야기꾼으로서 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재능이 있습니다. 영화는 TV시리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2.35:1의 와이드스크린 화면에 심도 깊은 클로즈업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0분의 시간 동안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이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스지프론은 여섯 편 모두에서 고르게 해냅니다. 특히 세번째 이야기인 '가장 강한 남자'에선 자동차를 전복시키는 과정에서 안전벨트나 트렁크 뒷문 같은 자동차의 구성품을 이야기의 장치로 활용하는데 어떤 할리우드 영화보다 긴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탁월합니다.
여섯 편의 단편을 한 가지 키워드로 꿰자면 '중산층의 은밀한 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장 겸 여행을 떠난 비행기 안에서, 딸의 생일파티를 놓친 차 안에서, 궁지에 몰린 갑부 앞에서,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인 결혼식에서 사람들은 숨겨왔던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위선이 드러난 순간, 이야기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타협지점을 찾아내는데 그 지점은 다함께 공멸하거나 혹은 서로의 허물에 눈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여섯번째 이야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가 제시한 엔딩은 그 모든 소동을 "원래 결혼은 그런 거야"의 뉘앙스로 한 방에 정리해내는데 마치 스페인 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걸작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을 보는 것처럼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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