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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커티스 감독은 역사적인 스캔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전작은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로 마릴린 먼로가 영화촬영 당시 별장에서 조감독과 보낸 일주일을 다루고 있고, 감독 데뷔 전 기획한 영화도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데릭 자만 감독의 <에드워드 2세>,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BBC의 TV용 영화 <댈러웨이 부인> 등 기념비적인 문학작품을 영화에 접목시킨 것입니다.


<우먼 인 골드>는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 '우먼 인 골드' 혹은 '레이디 인 골드'의 반환을 둘러싼 법정 싸움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림의 원래 소유주이자 그림 속 모델 아델레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은 친구의 아들인 변호사 랜드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와 함께 나치가 약탈해간 그림을 돌려받기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은 한국에도 기사화된 적 있습니다. 2006년 그녀가 오스트리아 정부에 승소한 뒤 그림을 팔아 1500억원 가량의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지요. 당시엔 그녀가 그림을 돌려받자마자 크리스티 옥션에서 팔아버려 돈을 노리고 소송을 벌인 것처럼 알려져 있었는데요. 영화는 소송을 시작한 1998년부터 마침내 승소한 2001년까지 그들이 어떻게 소송을 벌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승소했는지, 또 왜 소송을 벌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소송에서 이긴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정부가 과거에 지은 범죄를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 개인도 자신이 수십년 전에 지은 범죄를 뒤늦게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국가는 어떨까요? 수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당장 유무형적 손해도 막심할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모나리자'와도 같은 그림을 돌려줘야 하니 국민적인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테지요.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뒤늦게 죄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림을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합니다.


이 부분에선 당연히 일본 정부가 지금 한국에 대해 하고 있는 일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림을 돌려준 오스트리아 정부는 단기적으론 손해를 입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떳떳함이라는 더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과거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이처럼 심리적인 치유의 기능을 하기에 개인이 아닌 국가도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과거의 범죄를 인정한다면 아마 비슷한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뭐, 이런 기대 자체가 부질없어 보이긴 합니다만...)


한편으론 오스트리아 정부의 그 역사적인 결정은 원고인 그녀가 미국인이자 유대인이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민족 중 하나이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서구 열강들이 한때 그들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들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문화재들에 걸린 반환 소송을 하나씩 다 들어준다면 아마도 유럽의 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입니다.



<우먼 인 골드>는 잘 만든 영화입니다. 마리아의 주장을 차분하게 경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흥분하지 않고 뚜벅뚜벅 갈 길을 갑니다. 직접화법으로 던지는 게 아니라 간접화법으로 돌려서 말하는데 그게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조연들의 캐릭터나 대사들도 참 좋습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형식도 매끄럽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베스트 오퍼> 등 명화나 고서적을 소재로 한 클래식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소수의견>과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묵직한 이야기를 침착하게 풀어간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그러나, <소수의견>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한계를 보여주는 고발 영화라면, <우먼 인 골드>는 오스트리아의 용기 있는 선택을 보여주며 원고와 피고가 '윈윈'하는 영화라는 점이 두 영화의 분위기를 정반대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먼 인 골드>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영화는 두 사람이 주인공이기에 이렇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스트리아 법원이 그런 판결을 내리게 된 과정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음을 말해두고 싶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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