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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기왕성한 십대들이 외딴 오두막에 놀러갔다가 괴물을 만나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그동안 미국에서 만들어졌던 많은 슬래셔 무비, 스플래터 무비들의 줄거리다. 특히 70~80년대는 <13일의 금요일>을 대표로 이런 영화들의 전성기였다. 중간에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는 신중한 친구도 나오지만 무모한 풋볼선수 같은 남자에게 무시당하고, 금발의 미녀는 꼭 먼저 죽는다.


1996년 <스크림> 이후 이런 공식은 들통이 났다. 웨스 크레이븐은 영리하게도 자신이 <나이트메어>로 만들었던 호러 영화의 공식을 <스크림>을 통해 조롱했다. "너네들이 봤던 호러영화들에서는 이렇게 했지? 그러면 난 어떻게 할까?" 노골적인 대사들을 삽입해 호러영화의 관습을 뒤틀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스크림>의 열기마저 시들해지고 호러영화(특히 스플래터, 슬래셔 무비)는 괴수영화로 흡수되거나(요즘 웬만한 블록버스터에서도 사지절단이 장난 아니다) '파운드 푸티지'를 이용한 리얼리티쇼로 전환되거나 혹은 기존 방식의 잔혹한 스플래터 무비들은 B급 영화 시장에서만 근근히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캐빈 인 더 우즈>가 나타났다.


이 영화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포스터에 카피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호러영화의 뻔한 스토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Q: 이상한 괴짜 노인이 "거기 가지 마"라고 말한다면?

A: 그를 무시하고 놀려줘라.


Q: 외딴 숲속에서 사랑을 나누기 직전의 하이틴 커플이 있다. 그런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

A: 무시하고 계속 섹스해.


Q: 뭔가가 당신들을 쫓아온다면?

A: 뭉치지 말고 각자 흩어져라.



호러영화의 관습대로 희생자들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1970년대 휴스톤 나사 스페이스 센터를 닮은 비밀스런 연구실에서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는 샐러리맨들. 그런데 그들의 업무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죽이는 이유와 그들을 고용한 디렉터(시고니 위버)는 영화 결말에 인류 멸망과 함께 그럴듯하게 소개되지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모든 종류의 호러 괴물들을 시스템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좀비들은 물론 <발렌타인>의 흰 마스크를 쓴 아이, <피의 피에로>의 피에로,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의 전기톱을 든 살인마, <이블데드>의 괴물들, 톱날 헤드, 외팔이 소녀, 일본 호러의 혼령 귀신들, 거대한 용, 뱀, 심지어 남자인어(?)까지. 그들은 오두막의 지하에 온갖 사물들을 전시해놓고 희생자들에게 자신이 죽을 방법을 선택하게 한다. 페로몬 향수와 안개는 희생자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또하나의 장치다.



영화는 연구실과 오두막이라는 지하와 지상으로 연결된 전혀 다른 공간을 유머러스하게 교차편집해서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엿보기와 조종, 직원들끼리의 괴물 내기가 벌어지고, 반대편에서는 핏빛 살인이 벌어지는데 두 장면을 오가는 것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신선한 경험이다.


오두막에 놀러온 5명의 젊은이들. 그들은 돌이켜보면 참 특이한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발의 섹시걸, 운동선수, 학자, 바보, 그리고 처녀. 놀러가려면 보통 짝수로 다닐텐데 홀수라는 것도 흥미롭고 이들이 기존 호러영화 캐릭터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면서도 뭔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특이하다. 예를 들어 섹시한 금발의 미녀는 알고보니 염색한 머리카락이었고, 아둔해보이는 운동선수는 사회학 전공에 장학금 받는 우등생이었다. 비열한 캐릭터로 등장하곤 했던 공부 잘하는 친구는 믿음직하기까지한 신사였고, 또 바보인 줄 알았던 대마초광은 무척 똑똑한데다 대마초가 페로몬향을 막아주는 역할까지 해서 정신이 멀쩡한 캐릭터고, 제단에 바쳐질 처녀는 사실 처녀가 아니었다.



이처럼 시작부터 뭔가 다른 <캐빈 인 더 우즈>는 기존 호러영화의 클리셰들을 뒤틀면서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지 기대하게 하는 영화다. 클라이막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온갖 호러 캐릭터들의 파티가 벌어진다. 스플래터 무비에 익숙한 관객들은 다양한 캐릭터들의 근원을 추리해보며 즐길 수 있겠고, 흥건한 빨간색 피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은 과연 이 연구실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며 결말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스플래터 무비 답지 않게 엔딩은 너무 거창하지만 "인류가 멸망하는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시니컬하게 말하며 대마초를 입에 무는 마티는 제법 쿨하다.


[미녀와 뱀파이어] [엔젤], 그리고 <어벤져스>의 조스 훼든이 제작과 각본을 맡고, <클로버필드>, TV시리즈 [로스트]의 대본을 섰던 드류 고다드가 처음으로 연출을 맡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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