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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반전이다. 전라북도 부안의 모항 해변에서 깡소주를 마시는 이자벨 위뻬르. 아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마담 보봐리>에서 사랑을 꿈꾸다 자살하는 엠마, <피아니스트>에서 제자와 불온한 사랑을 나누는 창백한 여인이었던 그녀. 클로드 샤브롤, 미카엘 하네케, 프랑수아 오종, 브느와 자코,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장-뤽 고다르 등등 프랑스 거장들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그녀가 한국의 한 해변 마을로 찾아왔다. 소주병을 들고 홍상수 영화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곳은 참 낯선 곳이다. 그녀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홍상수 감독은 언젠가부터 3이라는 숫자를 즐기는 것 같다. <옥희의 영화>도 3개의 챕터로 구성된 영화였고 <북촌방향>에서도 세 번 도돌이표가 그려지는데 <다른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배경은 같고 등장인물도 같지만 이자벨 위뻬르만 1인 3역을 한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극중 정유미가 가볍게 노트하는 단편영화의 스크립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늘방이라는 펜션에 찾아오는 각기 다른 프랑스 여인이 하루동안 겪는 일이다. 한 번은 전주영화제에 출품한 작품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친구인 한국인 감독 부부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프랑스 감독으로, 다음은 한국의 유명 감독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해변 마을로 불륜여행을 온 유부녀로, 또 다음은 한국인 여자에게 남편을 뺏기고 실연의 아픔을 겪는 프랑스 여인 역할이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쓸 법한 쉬운 영어와 한국어가 반반씩 섞인 대사들은 기존 홍상수 영화들에서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단순하다. 언젠가부터 홍상수 영화가 받아들이기 쉽고 유쾌하고 재미있어졌는데 이 영화는 아마도 그 정점에 있는 것 같다. 나중에는 도올 김용옥이 스님으로 나오면서 이자벨 위뻬르와 선문답을 나누는데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가 선문답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등대를 찾는 안느, 안느는 이름이 예뻐. 비가 내리네, 비가 내리네. 안느는 참 예뻐. 안느는 등대를 찾지." 유준상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이 노래가 영화의 '뜬금없음'과 참 잘 어울린다. 프랑스에서 온 백인 여자가 한국인과 어울리면서 겪는 묘한 긴장과 반전. 다른 걸 덧붙이지 않아도 그 설정 자체가 이미 이미 홍상수 세계와 잘 맞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홍상수 영화를 보고나서는 웬지 영화가 실망스럽다 아니다 이렇게 평가하기 힘들어졌다. 그저 거기에 늘 홍상수 세계가 있어 왔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람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극중에 문성근과 이자벨 위뻬르가 불륜 커플로 나오면서 해변에서 여러번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참 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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